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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연재를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1개월이다. 시간에 비해 많은 연재 회수는 기록하지 못했다. 역사의 특성상 한 꼭지 쓰려면 수많은 문헌을 뒤지고 이게 맞나 안 맞나 여러 문헌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은 후 비로소 내 분석에 들어가는 습관 때문이다.

지난 6월 24일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이 열렸다. 그날, 연재 조건(1주일에 한번 이상 무조건 올려야 하는)에 절절 매다가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겨 오전에 겨우 기사를 송고하고 오후 일정을 마무리한 후 40분이나 지각, 포럼에 참석했다. 당연히 조회수나 독자 반응을 볼 시간이 없었다.

다음날인 25일 오전, 잠시 여유를 얻어 포럼이 개최되는 코엑스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인터넷 빈 자리에 앉아 습관처럼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조회수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메인 면에 배치되는 것은 어느 정도 조회수 뜬다는 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면 점쟁이처럼 다 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은 정치면에 우선순위를 두고 들여다보고 사회면으로 가는 게 순서다. 문화면 조회수는 정치와 사회면에 비해 1/10 수준이라면 대략 맞을 것이다. 그런데 뭔 조화인지 예상 밖의 조회수가 나를 놀라게 할 수밖에.

그때만 해도 그냥 즐거웠다. 우후후, 내가 쓴 기사 저렇게 많은 독자들이 봐준다는 거 그냥 무지막지 즐겁기만 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는 사이트를 개편했다. 어쩌다가 새로 개편된 '네티즌편집판'을 들어가 보긴 했어도 별로 실감나지 않았다. 네티즌이 만든 편집판이라? 신선한 발상이네, 이런 생각만. 그런데 그 신선한 발상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25일 이후 내가 8개월 전에 쓴 기사("저 놈의 능만 보면 속이 끓는다") 가 1주일간 계속 메인면을 장식하고 있다는 놀라움이다.

2000년 9월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 사는이야기, 사회, 교육, 문화 골고루 기사를 올려 메인면 톱기사(MT), 메인면 서브기사(MS), 잉걸 다 경험해봤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 기사나 특종인 뉴스의 조회수가 월등 높다거나, 제 아무리 내용이 충실해도 어느 면이냐에 따라 독자의 관심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대충 파악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여우가 다 된 나에게 이런 놀라움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기사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나에겐 하나의 원칙이 있다. 편집부의 권한은 군말 않고 철저하게 인정한다는 것. 불만스럽다 할지라도 편집부의 편집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편집에 의해 독자에게 나타나는 오마이뉴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편집권의 권한은 어느 언론매체든 마찬가지다. 오마이뉴스가 오마이뉴스다울 수 있는 것은 편집부가 기사를 골라 어디에 배치하느냐 하는 고유권한과 뉴스가치가 없는 것은 과감히 잘라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내가 오마이뉴스를 선택한 이상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 동안 150여 꼭지 올리면서 편집부에 불만을 느낀 것은 몇 번 있었지만 이런 계약을 갖고 시작했기에 항의한 적이 없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체로 이의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편집부의 안목에 만족했고, 이런 점은 내가 언론에 몸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잉걸의 승리, <네티즌편집판>

'한성희의 공릉 숲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쓴 '저 놈의 능만 보면 속이 끓는다'는 지난해 10월 12일에 올린 기사였다. 그 기사를 쓰기 위해 숱한 자료를 뒤지고 온몸으로 육화한 뒤에 기사를 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준비했었다.

그리고 이제 내 시선으로 분석해서 쓸 자신이 생기자 쓴 기사인데 불행히도 잉걸에 머물렀다. 그때 잠깐 오마이뉴스에 회의를 품기도 했다. 어떻게 이게 잉걸에 머물 수 있느냐? 그 이전까지 쓴 기사는 전부 심혈을 기울인 기사면 알아차린 듯이 MT에 올라 역시 편집부답다는 감탄을 했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론이냐?

뭐, 그럴 수도 있지. 쓰다보니 흥분 잘하는 기질 때문에 열 받아 쓴 게 걸러지지 않은 문체로 나와 언론매체로서는 껄끄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잉걸이지만 '3000'이 넘는 조회가 나와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그렇지만 잉걸에 머문 건 두고두고 아쉬웠던 글이었다. 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많은 네티즌들이 블러그, 홈페이지, 카페에 많이 퍼다 날라 그래도 "인정받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목릉을 쓰면서 불가피하게 관련기사로 넣은, 속이 끓는 잉걸에 머문 광해군 기사가 이렇게 뒤늦게 독자들에 의해 1주일이나 MT과 MS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은 개편된 오마이뉴스 체제 덕분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동은 백 배가 넘는다.

"그래, 오마이뉴스, 날 배신하지 않았어. 그리고 독자들은 역시 예리하고 정확해!"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좋은기사 원고료'에 독자들이 참여한 것이다. 서 푼도 안 되는 원고료 바라고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는 시민기자는 거의 없다고 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독자가 주는 순수한 원고료는 다르다. 독자가 주는 원고료는 더러 받아봤다. 오마이뉴스에서 나오는 원고료보다 수백 수천 배 값진 돈이다. 단순히 돈의 액수를 떠나서 내가 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받는 순수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그 돈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잉걸에 이만한 조회수 봤어!

7월 1일이 막 접어든 새벽 12시 30분 이 순간, 아직도 네티즌편집판에 "저 놈의 능만 보면 속이 끓는다"는 MT에 있고 조금 있으면 1만7천회를 넘을 걸로 보인다. 잉걸에 이만한 조회수 봤어?

네티즌의 톱기사 추천이 얼마인지 몰라도 이곳 MT에 오른 나는 눈물이 찔끔 나는 청승맞은 감상에 젖는다. 이거 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독자는 다 알아주는구나. 쓴 자와 읽는 자의 교류를 절대적으로 느끼는 찌르르 도는 클라이맥스.

6개월도 넘은 이 기사에 붙은 독자가 주는 원고료가 7건. 내 생애 가장 소중한 돈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격려가 기운을 펄펄 나게 한다. 원고료주기에 처음으로 이메일을 보내 감사를 전했다. 돌아온 답장은?

"정말 우연히 기자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읽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기자님의 좋은 글들로 인해 어제 이곳 사무실에 일하러 나왔다가 하루 종일 완전히 공쳤답니다… 그래도 기자님 글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우리나라 조선 500년사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쓴 글에 동감하는 독자가 지불한 이 감동의 원고료주기 마약에 취해 지금도 웃고 있다. 그래! 독자는 정확하게 잘 보고 있어! 더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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