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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주 암자 기행문집 <나를 찾는 암자여행> 앞표지
ⓒ 마음향기
발(足)과 마음(心)으로 10년간 암자 순례를 하며 암자 기행문집을 내오던 소설가 정찬주가 마침내 암자 기행문집의 절정을 그려내어 출간하고 대단원을 끌어낸 모양이다.

지난 4일 독자 앞에 나온 <나를 찾는 암자여행>(부제 '암자는 내게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하네')은 <암자로 가는 길>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에 이어지는 암자 기행문집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전화를 등지고 살았던 정찬주, 다행히 요즘엔 전화가 통한다. 지난 11일과 12일, '솔바람으로 귀를 씻어 진리를 이루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남도 산중의 산방(山房) 이불재(耳佛齋)로 전화를 하였다.

캄캄한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지난 3월의 전화 통화가 10년 만의 대화였으며, 서평을 쓸 때마다 짧은 전화 통화를 하였지만 이번에는 본격 인터뷰를 요청하고 이틀에 걸쳐 전화한 것이다. 평온한 억양, 부드러운 음색은 여전했다. 남도 사투리가 조금씩 나오기도 한다. 방문 인터뷰가 적격이나 먼 길 여행과 산을 오르지 못하는 기자의 다리 사정으로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 암자 여행 중의 소설가 정찬주
ⓒ 정찬주

- 속세를 버리고 서울에서 훌쩍 떠나 산중에 묻혀 사는 이유가 있나? 가족과도 떨어져 있지 않은가?
"남은 인생을 더 치열하게 살고 싶어서 그 길을 택했다. 낭만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집사람은 2주에 한 번씩 내려와 사흘 정도 머물다 떠나야 한다. 서울에서 두 아이가 대학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밭일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면 식물들도 살기 위해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잣거리와 멀다고 하여 늦잠 자거나 게으르게 살지 않으려고, 나를 허물어뜨리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 게으르게 사는 것은 나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 자연에서 얻는 깨달음이 많을 듯하다.
"캄캄한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기 때문이 아닌가. 그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또한 잊어버리고 있던 풀과 나무를 다시 만나면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세상은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 이불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고 진돗개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던데?
"진돗개 이름은 문수와 보현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밭농사 지으며 살다 보니 평화로운 두 분이 곧 부처님 같고 관세음보살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많고 많은 자연 중에 왜 이불재 지을 곳을 쌍봉사 근처로 택했는지 궁금하다.
"1977년인가, 동국대 국문학과 복학생 시절에 전남대 영문과 다니던 임철우씨와 국문과 다니던 박효선씨와 쌍봉사를 찾은 일이 있다. 세 사람이 다리 밑에서 코펠로 밥을 해먹기도 했었다. 이후에 이부자리 메고 절로 들어가 습작을 했었다. 그곳이 좋았던 것이다."

▲ 가야산 주봉이 보이는 금강굴 전경
ⓒ 정찬주

▲ 진돗개에도 불성이 있을까?
ⓒ 정찬주

▲ 달빛에 번뇌를 잊는 추월산 보리암 전경
ⓒ 정찬주

파도 치는 '나'로부터 본래의 '나' 찾기

- 속세를 떠나 이불재를 짓고 살면서 암자여행을 함께 했다. 10년 동안 몇 군데 암자를 찾아갔는지? 그곳에서 '나'를 찾는 체험을 독자들에게 좀더 설명해 준다면?
"300여 군데 되지만 감흥이 일어나지 않아 취재하지 않은 곳이 있거나 또 찾아간 곳이 있으니 200군데 될 것이다. 풍광을 즐기기 위해 가는 것보다는 나를 되돌아보려고 간다.

저잣거리에서의 가득한 생각, 세속에 찌든 마음을 비워버리는 장소가 곧 암자다. 기쁨에 집착하여 오래 끌려 다니는 것도 병이요 슬픔에 집착하여 오래 끌려 다니는 것도 병이다.

파도치는 '나'로부터 본래의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편안한 마음, 즉 안심(安心)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곧 속도에 휘둘리지 말고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찾는 일이다."

▲ 꽃향기 감도는 영수암 경내
ⓒ 정찬주

- "암자여행기 네 권의 첫 시작은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조계산 불일암이다. 법정스님과의 인연은?
"불일암에서 청명한 단옷날 아침에 법정스님께 계를 받았다. 법명을 '무염(無染)'이라 지어주셨는데, '저잣거리에 살더라도 물들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좌우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 <암자로 가는 길>의 사진은 사진작가 김홍희씨 작품이지만,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와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그리고 신간 <나를 찾는 암자여행>의 사진들은 작가가 직접 찍었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다. 사진의 구도가 특히 그렇다. 찍는 이의 영혼이 담긴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사람은 도자기를 배우고, 두 아이는 동양화와 디자인, 모두 미술 공부를 한다. 나도 고교 시절엔 미술부 활동을 했었다. 사진 구도가 다행히 잘 나온다는 평가가 나오는 걸 보면 그때 미술 공부를 해서 그런가?"

▲ 백운산 상백운암 앞에서 바라본 자연
ⓒ 정찬주

낙산사 홍련암이 불타지 않은 것은 기적인가?

- <나를 찾는 암자여행>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암자가 많아서 그만큼 사진과 글로 보아도 자연 냄새가 더 많이 난다.
"서른두 군데 암자 중에 서른한 곳은 이 책에 처음 소개하는 암자다. 나머지 한 곳은 이미 소개했던 낙산사 홍련암인데, 낙산사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갔던 것이다.

'우리 모두 상생하고 복 짓는 복밭이 되소서'란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 기행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새벽부터 고속도로를 달려보기는 처음이다. 비통한 마음으로 새벽부터 절로 향하기는 처음이다. 강릉에서 양양 가는 도로변의 산은 듬성듬성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또렷하다. (중략)

현장을 뒷수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참배를 온 나그네 같은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한다. 참배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종이잔 커피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그들에게서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읽는다. (중략)

나그네는 장내를 천천히 걸어 내려가 바닷가에 있는 홍련암으로 가본다. 다시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삼십여만 평의 낙산사가 전소되는 가운데 다섯 평짜리 홍련암만은 화마가 비껴갔다니 도대체 믿겨지지 않는다. (중략)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기적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과(因果)를 믿는 이에게 기적이란 말은 부적절하다. (중략) 홍련암에는 일찍이 천년 전 의상대사가 보았고, 최근에는 경봉스님이 보았다는 관음보살이 상주하고 계신 것이다.
- <나를 찾는 암자여행> 82~87쪽


'오월광대' 박효선을 숨겨주었던 국어교사 정찬주

- <한국문학>에 <유다학사>로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가 된 뒤 한동안 소설 발표가 없었던 적이 있다. 무슨 이유가 있었나?
"이제까지 어느 인터뷰에서도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다. 1980년 서울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있을 때였다. 광주민주화항쟁 지도부에 가담했던 친구 박효선이 광주에서 포위망을 뚫고 올라와 나의 집에 보름 동안 숨어 있었다.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여 불순세력의 책동인 걸로 보도했지만 그것을 1%도 믿지 않고 정권야욕에 사로잡힌 신군부 세력의 음모인 걸로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다가 박효선을 통해서 광주 얘기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 그는 당시 시민들을 이끈 강경파 지도부의 홍보부장이었다. 아슬아슬한 일이 있었을 법한데?
"출퇴근길에 전봇대를 보면 박효선의 현상수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나의 집도 안전하지가 않아서 당시 국사를 가르치던 황선희(현재 상명대 사학과 교수, 소설가 황석영 누이) 선생 집으로 옮겨 피신했다가 또다시 다른 데로 피신해 갔다. 그때부터 나는 글쓰기에 무력해졌다.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에 시달리다 직장을 샘터사로 옮겨 직장일에 10년간 몰두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야구장 가버리는 심리처럼 말이다. 그즈음 최수철, 윤정모, 조성기, 현길언 등과 80년대 소설그룹을 결성하고 <현대문학>에서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 '영원한 오월광대'로 불리는 박효선씨 얘기는 공중파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나온 걸로 아는데….
"그 뒤로 박효선은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연극 <금희의 오월>을 미국에서도 공연하는 등 연극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스트레스에 의한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명예회복이 되어 현재 망월동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암자를 찾아다니는 시한부 6개월 암 환자의 6년 삶

▲ 극락으로 드는 듯한 대원사 연지문
ⓒ 정찬주

▲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해맑은 눈 쌓인 문성암
ⓒ 정찬주
암자에 얽힌 삽화 한 토막. 정찬주의 암자에 관한 책을 배낭에 넣고 다니는 암 환자가 아래 절의 암자를 찾았다.

거기서 청량한 풍경소리에 끌리어 찾은 곳이 바로 정찬주의 이불재. 의사에게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암자를 순례하며 6년을 살고 있다고 정찬주에게 고백했고, 그 노신사가 돌아간 뒤 정찬주는 자신에게 좀더 정성이 깃든 암자기행문을 쓰지 못한 것을 나무랐다고 한다.

- 헬리콥터 타고 암자 앞에 당도하는 일이 아닌데도 산길을 걷고 걸어서 암자를 찾는 일은 '나'를 찾아다니는 '나'에 대한 정성이지 싶다. 어느 출판사에서 암자에 관한 책을 더 내자는 제의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만 내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전에 냈던 것보다 더 깊어지고 절절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한 책을 낸다는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경봉스님 일대기 그리는 <멋들어지게 살아라> 연재 중

- 기행문집뿐만 아니라 불교소설 쓰기에도 부지런한 것 같다.
"다산 정약용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500여권의 책을 써냈다. 작가는 끊임없이 써야 한다. 그것이 곧 수행이다. 모임 주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데 익숙치 못하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사교를 멀리하고 사색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산은 산 물은 물>,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그린 <만행>, 백제의 성왕과 왕인을 축으로 한 대하역사소설 <대백제왕>, 지장스님의 생애를 그린 <다불(茶佛)> 이후 연재중이거나 구상중인 소설이 있나?
"현재 영광도서 홈페이지(http://www.ykbook.com)에 경봉스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멋들어지게 살아라>를 연재하고 있다. 올해 11월경에 김영사에서 상하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또한 전라남도 판소리를 소재로,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소설을 구상중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책을 열었을 때 그가 쓴 발문이 초록색으로 다가온다.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영롱하고 아름다운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온몸을 던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경주 남산 칠불암 위쪽 신선암에 있는 마애보살반가상이 풍진 세상을 굽어보는 듯하다.
ⓒ 정찬주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나를 찾는 암자여행 - 암자는 내게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하네

정찬주 지음, 마음향기(책소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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