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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법원장이 바뀐다고 사법부가 바뀔까?"

이 물음에 대해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그렇다"라고 확고하게 답한다. 이어 그는 "물론 누가 대법원장이 되느냐보다는, 새 대법원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만약 지금의 우리 사법부가 변해야 할 역사적 요청을 받고 있는 사정이라면 새 대법원장은 당연히 무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변호사는 20일 <사법감시> 제25호 '누가 대법원장이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오는 9월이면 임기를 마치는 최종영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인선될 새 대법원장의 자격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새 대법원장은 전통과 관습과 법률에만 얽매여 있지 않고, 새시대의 요구를 유연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무난하고 원만하게 법원을 이끌어갈 능숙한 사법 관료가 아니라 사법부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청사진 한 장면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참신한 일꾼이 취임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는 정당성이 있다. 사법부는 본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더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대법원장이 돼야 한다."

또 차 변호사는 '바람직한 사법부의 모습'에 대해 "밖으로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 신뢰를 얻고, 안으로는 관료화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사법부가 우리의 바람"이라며 "오늘 이 시간까지 끊임없이 변모를 추구해 왔다는 사법부는 과연 그 기준에 부합하는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이어 그는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의 형식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방편으로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다 오히려 국가나 기업이나 금권의 힘 편에 기울어 묵시적 사정판결을 해버린 근본적인 원인은 '법원 내부의 구조적 모순', 즉 '법관인사 제도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왜 대법원장인가

법관에게 있어 '대법관'이란 자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법관 인사의 최상층으로 법관이 마지막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차 변호사는 "같은 해 임관한 동기 중에서 한두 명이 그 자리(대법관)를 차지하고 나면 불운의 탈락자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전통의 미풍을 지킴으로써 한 기수의 사법사를 마감한다"며 "대법관이란 배석 판사로 출발한 사법 관료의 마지막 승리자 몇 사람에게 안겨주는 월계관이 아니고, 그런 양식은 무엇보다 대법원의 정책법원화를 계속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법관'을 관료 법관의 마지막 승진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위해 마련해 둔다면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이룰 수 없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원 밖 법률가를 대거 대법관으로 임명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차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보다 더 한 문제점으로 차 변호사는 현재 법원인사 제도가 전형적인 관료제도의 틀에 옭매여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지적하고 나섰다.

"대법관은 수도 적고 어느 정도 관운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고등부장이란 자리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한 법관 생활의 마지막 승부처"며 "고등부장에 탈락하면 사직이고, 상처를 입고 그만둔 그들에겐 전관예우가 위로의 보상으로 베풀어진다"고 차 변호사는 비판했다.

"법관의 세계는 피라미드... 그 정점에 있는 대법원장이 핵심"

차 변호사는 "여전히 법관의 세계는 피라미드요, 그 정점에 대법원장이 있다"며 "그렇다면 왜 대법원장이 핵심인가, 법관 인사 제도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법원장만의 책임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이에 대한 답을 그는 "놀랍게도 거의 그렇다, 우리 현실은 그렇다"라며 "바로 사법부의 모든 권한이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대법원장은 13인의 대법관 전원에 대한 임명 제청권과, 고등부장판사부터 예비판사까지 전국 법관의 근무 평정·임명·보직 부여·징계에 관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또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5개 주요 국가기관의 구성원 13명에 대한 지명권이나 추천권,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6개 위원회의 50여 명에 이르는 위원 위촉 권한도 대법원장의 몫. 이외에도 대법원의 재판은 물론 전국 법원의 예산과 행정에 관한 권한도 갖고 있어 누가 보더라도 대법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사법부의 인사, 예산, 행정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몰려있는 실태는 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만의 특유 현상이며, 실질적 민주화의 요구에는 물론 지방자치 시대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차 변호사의 비판이다.

대법원장에 적합한 인물은 누구? 또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결국 차 변호사는 새 대법원장에 적합한 인물로 ▲다양하고 다층적인 시대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미래에 대비하는 진취적 인물 ▲현실적으로는 무엇보다 주체할 수 없이 과중한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취적이고 기존의 권한에 연연하지 않을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에서 후보에 해당할 만한 사람은 이미 지금까지 승진의 관료제 습성에 젖어있을 터이기에 법원 안에서보다는 밖에서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며 "혹 좋은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 하더라도, 법원 내부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형성된 인간 관계의 부담 때문에 신념을 충분히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계층의 여론이나 상대적으로 커져버린 여당의 정치 공세에 질려 서둘러 타협해선 안된다"며 "여론도 적당히 무마하고, 국회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성향의 인물 중에서, 사법 개혁의 수행 능력과는 관계없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의중을 잘 헤아려줄 사람을 내심 정해놓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고 충고했다.

끝으로 차 변호사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새 대법원장에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며 "우리 사법 사상 그리고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맞는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고, 마땅히 달라져야 할 부분을 서슴없이 다르게 할 수 있는 대법원장을 기대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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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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