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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동원
당신이 저기에 있군요. 당신을 만나면 머리 속에서 하얗게 생각이 지워졌어요. 나의 시선은 당신에게서 한 뼘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렇게 당신을 마주하면 그때부터 세상은 없었어요. 그저 그 자리의 당신뿐이었죠.

ⓒ 김동원
빛이 부족하여 세상 것들의 형상이 숨을 죽여도 당신을 묻어버릴 수는 없었어요. 당신은 그 모자란 빛 속에서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죠. 내가 찾아내기에 어려움이 없었어요.

ⓒ 김동원
하지만 당신과 있을 때, 이상하게 세상이 두려웠어요. 우리를 보는 세상의 눈길이 두려웠어요.

ⓒ 김동원
나는 숨고 싶었어요. 세상을 멀리하고 우리 둘만의 세상으로 깊이깊이 숨고 싶었어요. 그건 우리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아마 많은 연인들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을 거예요.

ⓒ 김동원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죠. 당신과 나는 세상의 우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세상에서 떨어져 숨는다는 것은 당신을 위해 할 짓이 못 되는 거 같았어요. 나는 세상 앞에 섰죠. 코앞의 그 두려운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가야 하는 나는 다리가 후둘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그 앞으로 나섰죠.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 세상에서 도망쳐 숨고 싶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세상으로 가는 경계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 김동원
때로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라기보다 참 말이 많은 곳이에요. 별별 말이 다 많죠. 못난 얼굴, 뚱뚱한 몸매 그리고 가난한 주머니 등등이 모두 얘깃거리에요. 우리의 사랑도 그 세상의 시끌벅적한 말들 한가운데 놓였어요.

ⓒ 김동원
내가 세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죠. 당신이 늘상 그랬죠. 세상이 뭐라 해도 내겐 당신 하나면 돼. 그건 그 무성한 말들의 세상을 멀찌감치 밀어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죠. 나는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도 전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어요.

ⓒ 김동원
나를 세상 속에 서게 해준 당신.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 세상에 서서 사실은 세상 속의 당신을 얻었어요. 세상 속에서 나에게로 온 당신을 얻었어요.

ⓒ 김동원
그러면서 또 당신은 세상 속에 있어도 나만의 당신이죠.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힘으로 세상으로 가면서 세상 속의 당신과 나만의 당신, 그렇게 둘을 얻은 거예요. 당신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죠. 둘 중 하나로는 그저 당신의 반쪽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당신은 내게 당신의 전부를 주고 싶었던 거죠. 세상 속으로 내 등을 밀은 당신은 사실은 내게 당신의 전부를 주고 싶은 거였어요.

ⓒ 김동원
오늘 오래간만에 당신과 마주하고 있어요. 예전에 이렇게 둘이 마주할 때면 세상에서 도망 나와 몸을 숨긴 우리였는데 이제 세상의 한가운데 있는데도 당신과 나, 둘의 시간이 오붓하고 평온하네요. 다, 당신이 내게 준 사랑 덕택이에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 했습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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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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