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이 저기에 있군요. 당신을 만나면 머리 속에서 하얗게 생각이 지워졌어요. 나의 시선은 당신에게서 한 뼘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렇게 당신을 마주하면 그때부터 세상은 없었어요. 그저 그 자리의 당신뿐이었죠.
빛이 부족하여 세상 것들의 형상이 숨을 죽여도 당신을 묻어버릴 수는 없었어요. 당신은 그 모자란 빛 속에서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죠. 내가 찾아내기에 어려움이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과 있을 때, 이상하게 세상이 두려웠어요. 우리를 보는 세상의 눈길이 두려웠어요.
나는 숨고 싶었어요. 세상을 멀리하고 우리 둘만의 세상으로 깊이깊이 숨고 싶었어요. 그건 우리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아마 많은 연인들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죠. 당신과 나는 세상의 우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세상에서 떨어져 숨는다는 것은 당신을 위해 할 짓이 못 되는 거 같았어요. 나는 세상 앞에 섰죠. 코앞의 그 두려운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가야 하는 나는 다리가 후둘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그 앞으로 나섰죠.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 세상에서 도망쳐 숨고 싶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세상으로 가는 경계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때로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라기보다 참 말이 많은 곳이에요. 별별 말이 다 많죠. 못난 얼굴, 뚱뚱한 몸매 그리고 가난한 주머니 등등이 모두 얘깃거리에요. 우리의 사랑도 그 세상의 시끌벅적한 말들 한가운데 놓였어요.
내가 세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죠. 당신이 늘상 그랬죠. 세상이 뭐라 해도 내겐 당신 하나면 돼. 그건 그 무성한 말들의 세상을 멀찌감치 밀어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죠. 나는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도 전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어요.
나를 세상 속에 서게 해준 당신.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 세상에 서서 사실은 세상 속의 당신을 얻었어요. 세상 속에서 나에게로 온 당신을 얻었어요.
그러면서 또 당신은 세상 속에 있어도 나만의 당신이죠.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힘으로 세상으로 가면서 세상 속의 당신과 나만의 당신, 그렇게 둘을 얻은 거예요. 당신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죠. 둘 중 하나로는 그저 당신의 반쪽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당신은 내게 당신의 전부를 주고 싶었던 거죠. 세상 속으로 내 등을 밀은 당신은 사실은 내게 당신의 전부를 주고 싶은 거였어요.
오늘 오래간만에 당신과 마주하고 있어요. 예전에 이렇게 둘이 마주할 때면 세상에서 도망 나와 몸을 숨긴 우리였는데 이제 세상의 한가운데 있는데도 당신과 나, 둘의 시간이 오붓하고 평온하네요. 다, 당신이 내게 준 사랑 덕택이에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 했습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