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말의 엄숙성에 딴죽을 겁니다. 그는 묻습니다. 왜 말이 엄숙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며 어려워야 하느냐고. 그의 소설에 따르면, 일견 멋져 보이는 지식이나 지성의 언어도 뒤집어보면 사실 별 것 아닙니다. 왜 '보도방'이라고 하면 되고 '보지 도매'라고 하면 안 될까요? '보도방'이 '보지 도매방'의 줄임말이니 '보도방'이라고 하나 '보지 도매방'이라고 하나 차이가 없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지성의 언어(엄숙한 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리키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른바 '식자'들은 그네들의 입맛에 맞춰 말로 현실을 그럴듯하게 포장합니다. 식자들의 언어 속에서 현실은 왜곡되고 조작됩니다. 식자들은 그 왜곡된 현실 속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언어는 합리화를 위해 고도로 발달한 언어입니다. 그 언어가 그들에게 만들어주는 세계는 가짜 세계입니다. 살 만하고 견딜 만하게 가공된 세계입니다. 합리화를 모르는 언어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만이 진짜 세계를 살아갑니다. 진짜 세계는 늘 팍팍하고 괴롭습니다.
늘 팍팍하고 괴로운 진짜 현실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욕 밖에 없습니다. 하층민들의 언어가 거칠고 막돼먹은 것은 그들이 하루하루 부딪히며 사는 생활 자체가 거칠고 막돼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현실은 지랄 같아서 욕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그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욕은 솔직합니다. 그것이 현실과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욕은 곧 생생한 세계입니다.
이기호는 이것을 압니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 모인 그의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대부분이 문맹자들입니다. 그들은 '글/활자'를 모릅니다. 고상하게 말할 줄 모르고 고상하게 쓸 줄 모르며, 때로는 아예 어떤 말도 못하고 어떤 글도 못 씁니다. 이기호는 이런 식으로 말의 엄숙함에 맞섭니다. 그는 욕-말-글(활자) 순으로 올라가는 상승구조에 시비를 겁니다. 욕은 그대로의 현실을 표현하지만 말은 그것을 한 번 에둘러 표현하고, 글은 그것을 더 꼬아서 표현합니다. 욕은 날 것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말은 거기서 도망가고, 글은 아예 그것을 부정합니다.
이기호가 보기에 식자들의 언어는 현실도피의 언어입니다. 그들은 공중정원에서 저희끼리 아옹다옹 살아갑니다. 때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지만 그뿐입니다. 때로 아래를 향해 뭐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뿐입니다. 이기호는 이게 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욕으로, 일자무식한 사람들의 언어로 소설을 씁니다. 쉬운 말로 무거운 현실을 노래하기도 하고(<버니>), 어려운 말로 우스운 현실을 짐짓 강변하는 척하기도 하면서 말을 가지고 놉니다(<최순덕 성령 충만기>). 말은 엄숙한 무엇이었다가 그의 소설에서는 그냥 놀잇감이 됩니다. '엄숙한 말'의 권위는 이렇게 조롱당합니다. 발가벗겨집니다. '엄숙한 말'들이 우리에게 '엄숙할 것을' 요구했던 이유는, 그들의 텅 빈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음이 벌겋게 드러납니다.
이기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짝 더 나갑니다. 그의 단편소설들에는 유난히 환각이나 환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현실 속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을 보여줍니다. 그 환상들은 그러나 도피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식자들의 엄숙한 말이 만들어내는 '살 만한' 가상 세계와는 다릅니다. 그 환상들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었다가, 마지막에는 꼭 그 징그러운 정체를 드러냅니다. <햄릿 포에버>에서 주인공은 햄릿을 보았다가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봅니다. <머리칼 서신>에서 주인공은 처음에는 여인을 성녀로 보았다가 마지막에는 메두사로 봅니다. <백미러 사나이>는 눈을 감고 뒤를 보면서 즐거웠다가, 눈을 뜨고도 뒤를 보게 되면서 인생을 망칩니다.
이렇듯 이기호가 보여주는 환각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그 '환각'의 세계 속으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도망가려다 좌절하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계는 도망가려 하기 전의 세계보다 훨씬 더 무섭고 솔직합니다. 환각에서 깨어나 다시 보는 세계는 과연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이기호는 그래도 환각을, 환상과 상상을 권합니다. 아프지만 상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실에 익숙해지지도 말고 현실을 벗어나려고도 하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아픈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상상은 '엄숙한 말'의 거짓 권위에 속아서 꾸는 허황된 꿈과는 다릅니다. 그 꿈에 권위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꿈은 욕으로 꾸는 꿈입니다. 솔직해지기 위해 꾸는 꿈입니다. 더러운 것을 인정하기 위해 꾸는 꿈입니다.
우리는 '위를 향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공중정원의 식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 위에 있는 세계도 사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 봤자 팍팍하고 지긋지긋한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사실 어디에도 '행복한 위쪽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피라미드는 가짜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꾸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좌절하게 됩니다. 더 불행해지고 더 처절해집니다.
문제는 저 위의 허공이 아니라 딱딱한 우리의 발밑입니다. 이기호가 보여주는 꿈은 우리에게 발밑을 내려다보게 합니다. 그는 지독한 환각이 우리를 상승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현실을 바로, 그리고 가까이 보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집은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로 끝나고,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가볍지만 충분히 아픈 소설집입니다. 여기에 모인 소설들은 크게 휘두르는 어퍼컷이나 훅이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세기의 잽들입니다. 한 방 크게 맞아야 넘어질 것 같았던 우리는 그러나 잽 몇 방에 무너지고 맙니다. 세계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 | 이기호 작가, 경희대서 독자와 만나다 | | | 두 번째 ‘우수문학도서 작가와의 만남’, 성황리에 치러져 | | | | 이 글은 지난 7월 20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과 문학회생프로그램추진위원회(위원장 신경림)가 주최한 ‘우수문학도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 이후 쓴 글이다.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 두 번째 행사는 <최순덕 성령 충만기>의 작가 이기호씨가 참석한 가운데, 책읽는사회문화재단(상임대표 도정일), 경희대학교 영어학부와 국문학과 주관으로 이 날 오후 네 시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302 강의실에서 치러졌다.
독자들이 강의실을 꽉 메운 가운데 경희대 대학생 랩퍼 '버니' 공연이 있었고 이기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실제 랩으로 시연될 수 있을지는 몰랐다며 즐거워했다. 비록 학생들이지만 프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랩퍼들인지라 공연의 수준은 아주 높았다.
공연탓인지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도 재기발랄한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져 장내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총 네 대의 비디오카메라가 가동되는 등 각 언론사들의 불꽃 튀는 취재경쟁이 벌어져 이 행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우수문학도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는 올 9월까지 여섯 차례 더 있을 예정이다. 이 행사는 문학회생프로그램추진위가 시행하는 '우수문학도서 보급사업'의 일환이며 올해 1·4분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작품의 작가 8명이 참가한다.
이후에도 자전거 하이킹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등 기존 '작가와의 만남' 행사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줄 계획이라 주목받고 있다. 추후 행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이경자 ‘남자를 묻는다’ : 8월 23일 오전 10시 30분 광주일곡도서관
*안학수 ‘낙지네 개흙잔치’ : 8월 24일 오전 10시 김천중앙초교
*고재종 ‘쪽빛 문장’ : 8월 30일 오후 1시 20분 전북임실동중학교
*이재무 ‘푸른 고집’,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 김훈 ‘자전거 여행2’ : 8~9월 중 개최 예정 / 이익재 | | | |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서점 알라딘 서평에도 올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