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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봉우리 몇 개를 넘는다. 해발 932미터의 쪽두루봉을 넘는다. 가는 길에 싸리 군락이 또 이어진다. 싸리군락을 만나면 시야가 탁 트여 좋다. 급한 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고 또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자 눈앞에 삼봉이 나타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봉우리 몇 개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 중엔 바위덩어리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새가 봉우리 주변을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난다.

신풍령에서부터 계속 오르막이었다. 날은 더웠고, 물은 많이 마신 상태다. 물 있는 곳을 찾아보지만, 발견할 수는 없었다. 삼봉을 오르는 길은 등에 뙤약볕을 받아내는 고행이다. 머리가 뜨겁고, 땀이 온몸에서 물처럼 줄줄 흐른다. 옷을 몇 번인가 짜내다 포기한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다 땀 닦는 걸 포기한다. 이상기온이다. 너무 덥다.

산에서 걷는 일은, 단순히 걷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산에서 걷는 일은 수없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알아야 하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걸을 수 있다. 걷기 위해서 확인해야 할 게 많다는 말이다. 확인 사항 중 하나가 땀이다.

처음엔 덥다고 물을 많이 마셨다. 계속 물마시고 땀 흘리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 혈액이 묽어져 무기력해진다. 만사가 귀챦고 힘들고 오히려 목이 더 마르기 시작한다. 한번은 몸에 소금기가 다 빠져나한 듯해서 소금을 한 주먹 입안에 탁 털어넣었다. 군대에서 훈련 받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소금이 필요하니 소금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리했다. 그리고 나는 소금 쇼크로 인해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쓰러질 것 같은 쇼크를 경험해야했다. 소금 쇼크라는 걸 그때 경험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묽어진 혈액에 한꺼번에 다량의 소금이 들어가면 혈액이 감당 못해 쇼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금을 먹을 때는 물통에 소금을 짜지 않게, 아주 약한 간간한 맛을 만들어서 물과 함께 조금씩 마셔야 한다. 소금은 먹는 게 아니라 물과 함께 마셔야 한다. 그리고 물은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 마시고,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서 자주 마셔야 한다. 갈증이 나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몸이 갈증이 나면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이 안 된다. 몸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려면 두 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목이 마르기 전에 반드시 마셔야 한다.

땀은 눈을 가린다. 눈에 들어가면 눈을 쓰리게 한다. 머리에 손수건이나 등산용 수건을 질끈 매면 땀이 흐르다 수건에 흡수가 되어 어느 정도는 땀이 눈에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종일 걷는 일이고, 쉴 틈 없이 땀을 흘려야 한다. 수건이 처음엔 바짝 마른 상태였어도 어느 정도 지나면 땀을 감당하지 못한다. 오히려 수건이 땀을 흘린다. 그것도 저장했다가 흘리게 되어 더 곤혹스럽게 된다. 걷는 일은 이러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땀이 나면 온갖 벌레들이 땀 냄새에 덤벼든다. 특히 앵앵파리는 땀 냄새가 나면 얼굴 근처에서 앵앵거리다 눈으로 들어가곤 한다.

걸음은 땀과의 전쟁이다.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땀을 잘 처리하고 땀에 잘 대처해야한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게 되면 그만큼 칼로리 소모가 크다는 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더운날 반대로 땀을 흘리지 않게 되면 체온조절에 실패했다는 말이므로 위험할 수도 있다.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준비하고 꼼꼼하게 살펴야한다. 걷는 일이 어디 땀 하나만 신경 써서 되겠냐? 걷기 위해서는 발, 허리, 배낭, 길 상태, 그날의 날씨, 자신의 현재 체력, 심리상태 등등 확인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다.

나무가 있는 그늘 길이 빨리 나오길 바라지만 삼봉 정상까지는 햇볕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봉우리를 지나 두 번째 봉우리에 도착하자 삼봉산정상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피니 봉우리가 몇 개 더 있다. 말만 삼봉이고 실제로는 봉우리가 5개다.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3봉까지는 평탄한 길인데, 4봉부터는 암릉구간이 이어진다. 마루금을 밟고 가다보니 길이 끊어진다. 암릉지역에서 길이 끝나는 곳은 대게 직벽이거나 가파른 경사도를 가지고 있다. 배낭을 벗어놓고 조심스레 길을 찾는다. 아무래도 직벽을 그냥 내려가려면 조심해야하는데, 너무 위험하다.

질을 찾아보니 좌측으로 빠지는 바위틈이 있다. 나무 지팡이를 바위 밑으로 던진다. 배낭이 바위에 걸리지 않게 조심한다. 팔로 버티고 발이 닿는 곳까지 최대한 발끝을 세워본다. 땀이 비오듯한다. 내려서고 나서 돌아보니 그리 높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바위는 언제나 조심해야한다.

암릉을 피해 우회로 난 길이 있었다. 진작 발견했으면 위험하게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지만 이미 안전하게 내려왔다. 그러면 된 것이다. 지금 안전하면 된 것이다.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내리막이 나온다. 삼봉이 끝났다 보다. 삼봉을 내려서면 소사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소사재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하다. 돌이 깔려있는 내리막길은 경사도가 무척 급하다.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워낙 경사도가 심해 걸음이 자꾸 빨라진다.

내리막에서 속도가 높아지면 위험하다. 게다가 내 몸엔 무거운 배낭이 붙어있으니 나는 내리막의 가속도를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마음은 마구 달려가고 싶지만 몸은 조심을 외친다. 조심조심 그야말로 뛰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게 천천히 간다. 발을 잘 못 디디면 돌이 굴러간다. 물은 이미 떨어졌다. 어디서 물을 보충해야하는데, 산을 내려가면 아마 물이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단독 무지원 연속종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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