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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파를 비집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면 능선을 따라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 성곽라인이 매우 인상적이다.
ⓒ 김정은
장성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

만리장성에 오르는 몇 가지 코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코스라는 팔달령에 도착하니 우선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 각처에서 모인 개미같이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원래 중국의 유명한 여행지마다 관광객들이 넘쳐나긴 하지만 특히 이곳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장성에 오르면, 해발 1015m나 되는 팔달령의 험한 산세를 이용해 만든 평균 높이 6~7m 정도 되는 성곽 위에 마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게 조성되었다는 성곽길이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은 정작 마차는 고사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서서히 걷기 힘들 만큼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면서 걸어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예전에 "장성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모택동의 영향이 아직도 중국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까? 만리장성에 오르려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모습을 질리도록 볼 수 있을 만큼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에게도 인기있는 관광지임에 틀림없었다.

수많은 인파를 비집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면 능선을 따라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 성곽 라인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小天下)던 공자의 기개는 아니라 해도 마치 저 아래 장성들이 내 품 안에 모두 들어온 것 같은 맹랑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 팔달령 만리장성,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은 거의 명대에 축조된 것이다.
ⓒ 김정은
이쯤 되면 만리장성과 함께 맨 처음 축조한 인물로 늘 이름이 따라다니는 진시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도 강력한 전제군주제 유지를 위해 수많은 백성들의 고혈과 희생을 담보했던 폭정의 수단이자 상징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물론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진시황과 만리장성에 대한 3가지 오해

첫 번째 오해는 이 모든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모두 진시황이 축조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축조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만리장성을 처음 만든 사람은 진시황제가 아니다. 굳이 만리장성의 기원을 따진다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가 아닌 그 전의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만리장성이라는 말이 문헌에 나타난 것은 전국시대이다. 결국 엄밀히 말하면 진시황은 전국시대 연(燕)·조(趙)·진(秦) 등의 여러 나라가 외적(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미 구축했던 장성들을 통일 이후 연결하고 더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두 번째 오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의 존재가 진시황 때 축조한 장성의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진나라 때 축조된 고대 장성은 세월이 흐르고 여러 왕조의 명멸을 거치는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개 ·보수 및 방치 등을 거쳐 거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은 거의 명대에 축조된 것이다.

명의 영락제 시대 이후부터 진행된 만리장성의 개축은 무려 18차례의 개수를 거쳐 16세기 말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압록강 인접)으로부터 서쪽의 감숙성 가욕관까지 연결된 실제거리 1만2000여리나 되는 오늘날의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

▲ 마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게 조성되었다는 길이 정작 마차는 고사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걷기 힘들 만큼 수 많은 인파에 떠밀리면서 걸어야 할 정도로 지금 만리장성은 만원이다.
ⓒ 김정은
특히 만리장성은 강력한 국가의 상징일 것이라는 일반인의 세 번째 오해와는 달리 실제 역사상 비교적 세력이 약한 한족 왕조 때 더 활발하게 축조되었다.

만리장성의 축조 목적이 북방의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므로 실제 한족국가이면서도 문물이 융성했던 당대나 몽고족이 통치한 원대, 만주족이 통치한 청대에는 만리장성에 대한 개보수나 증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보며 문득 악순환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정정이 불안하고 늘 북방 이민족이라는 위협요소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이 위협요소를 막기 위해 인력과 자금을 투자하여 만리장성이라는 대역사를 하다보니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정정이 불안해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처럼 만리장성의 보수는 역대 왕조의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안하자니 북방 이민족 침입이 걱정되고 하자니 비바람에 허물어진 장성을 보수하기 위해 매번 수십만이 동원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만리장성을 쌓던 수많은 사람이 일을 하다 사고로 죽게 되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악명이 높았던 천덕꾸러기 만리장성도 오늘에 와서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라는 감투도 쓰고 비싼 입장료를 받고 짭짤하게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효자 상품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으니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날 정도이다.

악명도 유산이다

황토를 틀에 넣어 햇빛에 건조시켜 만들었다는 수많은 흙벽돌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만지며 걸으니 손끝을 따라 벽돌 하나에 숨어있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땀과 한숨이 전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제는 중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만리장성과 진시황의 악연, 진시황의 입장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으로 기존의 장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했을 뿐인데 두고두고 백성들의 피와 땀을 강탈해간 폭군으로 회자되는 점은 안된 일이나 그의 악명으로 후세가 두고두고 먹고 살게 되었으니 그 또한 후배들에게 전해준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여행지로 향하기 위해 팔달령을 내려가려니 천만다행으로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어머니와 함께 한 북경여행기 5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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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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