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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달 전쯤 내가 알고 지내는 분이 일급 호텔 뷔페식당 2인 초대권이 있는데, 내 마누라와 함께 가라며 주었습니다. 공짜니 일단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걸 주머니에 넣고 거의 한 달을 다녔지요. 그런데 초대권도 사용기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근사하게 만들어진 초대권에는 사용기간이 '7월 29일까지'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는 사용기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고, 안 써먹으면 종이 쪽지가 되고 만다고 아침부터 닦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음식을 많이 못 먹으니 둘째 넝쿨이 하고 같이 가서 많이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들놈은 무슨 큰 선심 쓰듯이 나와의 동행을 선선히 따라주었습니다. 아마 둘째 놈하고 단 둘이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밖은 한여름의 찜통 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호텔을 운 좋게 헤매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호텔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웬 외국인이 그렇게 많은지, 아들 녀석도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호텔 뷔페는 최고급 식당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바닷물이 그렇게 깨끗한 줄 처음 알았습니다. 물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습니다. 음식도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보였습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제 접시에 진귀한 음식을 조금씩 담아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음식인데 입에서 살살 녹더군요. 그때였습니다. 여자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살포시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음식을 드시면서 맥주를 한 잔 하시겠어요? 주스를 한 잔 하시겠어요?"
"으음~ 주스로 주세요."
"무슨 주스로 드릴까요?"
"오렌지 주스로 주세요."


내가 아는 주스가 오렌지 주스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속으로 일류 호텔 뷔페식당이어서 그런지 종업원들이 대단히 친절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음식을 먹는 폼이 영 마땅치 않았습니다. 처음 집에서 나올 때는 많이 먹을 것처럼 하더니, 배가 부르다며 먹는 시늉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막 협박(?)을 해가면서 빨리 더 갖다 먹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어지간히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할 때쯤 여자 종업원이 주스를 가지고 왔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주스잔도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어째 공짜로 주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드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더 이상 당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영락없는 촌놈. 아들 녀석.
ⓒ 박철
그때였습니다. 다른 종업원이 수첩같이 생긴 계산서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 둘이서 먹은 것이 자그마치 8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초대권이라서 분명히 돈을 안 받는다고 했는데 이상했습니다. 내가 넝쿨이 보고 "야, 아빠가 돈이 하나도 없는데, 너라도 잡히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니 이 녀석이 약간 쪼그라든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도 촌놈이지만 이 녀석은 진짜 촌놈이거든요. 그깟 것 같고 기가 죽을 게 무에 있겠냐고 계산대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호기 있게 계산서를 내밀었지요.

"사장님, 아까 초대권 가지고 오셨지요?"
"네."
"그러면 됐습니다."


속으로 '휴~' 안심을 하고 나오는데 종업원이 따라 나오면서 하는 말이 "사장님, 아까 주스도 잡수셨어요? 주스 값은 계산하셔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주스 값만 2만5백 원이었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스 값을 냈지요.

그런데 넝쿨이 녀석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저를 잡히겠다는 말에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친 모양입니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시동을 걸고 나서 한참만에 넝쿨이 녀석이 씩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아빠! 어떻게 됐어요?"
"야, 임마! 그래 아빠가 너 잡히고 갈까봐 도망갔다 이제 나타나야? 그건 그렇고 기왕 음식을 먹는 걸 배가 터지게 먹지, 그래 고걸 먹고 마냐?"


지금도 다른 건 다 좋았는데 주스 두 잔에 2만원을 내고 먹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너무 쫀쫀해서 그런 것일까요? 20년을 시골에서 살던 촌놈이 도시에 와서 살다보니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하고 영락없는 촌놈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산은 아침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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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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