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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의 굽이도는 개울은 평이하다.
우리 산하의 굽이도는 개울은 평이하다. ⓒ 염종호

올 여름 가족 휴가는 경기도 마석의 외가로 갔다. 그 곳에는 아직도 큰 이모님이 고향을 굳건히 지키시며 여름만 되면 친지들의 휴가시중을 들어주고 계시다.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낚시 배우기.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낚시 배우기. ⓒ 염종호

"할아버지 제가 물고기를 잡았어요. 이것 보세요."
아버지는 그 곳에서 손자에게 예의 견지낚시 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계셨는데,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가 물자 흥분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낚싯대에 미끼를 끼워준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낚싯대에 미끼를 끼워준다. ⓒ 염종호

아버지께서 이제 갓 잡은 고기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손자와 그 옆에 서서 반은 질투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손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것을 보니, 옛날 내 어릴 적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겨워 보이는지 마치 추억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미끼에 걸려 올라오는 불거지
미끼에 걸려 올라오는 불거지 ⓒ 염종호

아이가 잡은 고기는 요즘에야 올라온다는 불거지였다. 내 어릴 적에 이곳은 불거지, 꺽지, 기름종개, 그리고 일급수에서 만 산다는 쉬리와 가재가 지천이었다. 그러다 90년대를 넘어서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무분별한 폐수 방류로 인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피라미들만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토종들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이모부님의 전언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민물 토종인 불거지
우리나라 민물 토종인 불거지 ⓒ 염종호

그런데 그런 불거지를 잡았으니 자기 자신도 얼마나 대견할 것이며 흥분의 도가니였을까.
아이는 연신 할아버지를 위시하여 할머니 그리고 엄마에게까지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 다시 미끼를 끼어 달라 조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행복해졌다.

그래서 일까, 휴가란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좋은 추억과 얼마나 많은 애틋한 기억들을 만들고 간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이제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 간에 만들어지는 기억들은 이 아이들이 커서도 아주 소중하게 그들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미끼 끼우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손녀 와 할아버지
미끼 끼우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손녀 와 할아버지 ⓒ 염종호

아이가 고기를 잡았다고 외친 뒤 그것을 들으신 어머니까지 내려오시더니 덩달아 옆에서 낚시를 하신다. 손자와 손녀들 사이에서 함께 물살을 맞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장면 또한 여간 따뜻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까지 가세한 견지 낚시
할머니까지 가세한 견지 낚시 ⓒ 염종호

한 쪽에서는 손자, 손녀들이 또 한쪽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란히 낚시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아이들 보다는 일흔을 훨씬 넘기신 아버지와 올해부터 경로권이 나온다며 반색을 하면서도 반은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어머니가 함께 하는 모습에 문득, 그저 오늘 만큼만 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부디, 오늘처럼 두 분이서 오래오래 함께 해로하시기를 간곡히 빌어본다.

다정히 낚시를 즐기시는 내외분.
다정히 낚시를 즐기시는 내외분. ⓒ 염종호

그렇게 한 동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모님이 콩버무리 빵을 한다며 다들 올라오라고 했다. 밀가루에다가 요즘 한창 제 철인 강낭콩을 함께 버무려서는 가마솥에 쪄낸 빵은 미각의 행복까지 덤으로 주는 맛이었다. 어디 가서 가마솥에 이리 정성스레 쪄진 빵을 맛보겠는가. 우리들 모두는 그 부푼 빵에 저마다의 손길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콩버무리 빵을 가마솥에 찌는 모습
콩버무리 빵을 가마솥에 찌는 모습 ⓒ 염종호

그렇게 배를 불리고난 것도 잠시 농약 한번 안 친 오이라며 내 놓으시는 이모부님은 물에 한번 헹군 오이를 뚝 잘라서는 껍질 째 서걱서걱 드시며 우리들을 차로 몰았다.

영문도 모른 채 딸려 간 우리는 그만 논으로 물방개 풀리듯이 풀어졌다. 그 흔하디 흔한 논둑길에 풀린 우리는 벼가 여실히 잘 자라고 있는 것밖에는 다른 특별할 것도 없는 논만 멀뚱멀뚱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자 이모부님은 너희들에게 주는 특별 보너스라며 벼들을 자세히 보라며 일러 주신다. 그제야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새파란 벼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얗게 무슨 곤충이 알을 깐 것 같은 것들을 찾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 아닌 '벼 꽃'이라니.

벼 꽃
벼 꽃 ⓒ 염종호

꽃이 피는 시기도 아주 짧아 지금이 아니면 못 보는 것이라며 이곳에 데려와 주신 이모부님의 정성에 또한 고맙고 감사했다. 나는 민망하게도 벼 꽃이란 것을 이번에 처음 보았다.

이렇게 내 엄마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아직도 소리 없이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분들과 부모님,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낸 휴가는 시원한 여름 보다 더 싸한, 우리들 모두에게 또 다른 소중한 추억을 간직케 해주는 그런 날로 각인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30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외가를 다녀온 글입니다. 잡은 고기들 중 큰 피라미 몇 마리를 제하고 나머지는 모두 놓아 주었습니다. 

‘2005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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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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