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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질문들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난해하며 또한 그 의도가 한없이 얄팍한 것은 무엇일까. “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 했던 것은 무엇이냐”식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오만가지 경험들 가운데 단 한 가지를 꼽아 뱉어내라는 요구는, 그러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감수해야 할 심적, 물적 비용 없이 엑기스만 뽑아먹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 또한 자명하다. 그 사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는 이상, ‘인생의 베스트’를 찾아 따먹었다 해도 유익할 리 만무한 것 아니던가. 물론 현대소비사회의 촉진시스템은 무언가 크게 변화할 것처럼 떠들어대겠지만.

▲ <내 인생의 영화>
ⓒ 씨네21
<내 인생의 영화>의 기획의도 역시, 앞서 설명한 ‘얄팍한 상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아 보인다. 모두에게 다행인 사실은 이 책의 필자들이 단순한 ‘베스트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내 인생의 영화>는 “이 영화가 말이지…”가 아닌 “내 인생이 말이지…”에 방점이 찍는 전략적 영민함을 통해 일독을 권해볼 만한 책으로 발돋음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들을 갈무리해 엮어낸 책이다. 50명의 필진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자리매김에 성공한 이들이며, 그 범위는 시나리오 작가에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성공한 이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나도 보고 똑같이 성공해야지” 따위의 헛된 망상, 마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을 때와 동일한 기대치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이들의 잡문이 머금고 있는 삶의 단면, 그 순간의 페이소스를 충분히 즐겨볼 만하다.

거듭 확인하자면, <내 인생의 영화>는 손석희가 ‘알파치노의 뜨거운 오후’를, 박찬욱이 ‘복수의 립스틱’을 들고 나와 이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뛰어난지 술회하는 책이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 영화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마치 술자리에서 그러하듯 살갑게 들려줄 뿐이다.

그 형식에의 자유로움을 무한히 허용하는 오지랖은 <내 인생의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날 것 냄새나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화려함 따위가 아닌,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고민할 줄 아는 이들의 속 깊은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잡문으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이들의 영화를 둘러싼 우문현답이다. 이 선문답이 삶의 향기를 양껏 머금고 피어나는 그 순간, 우리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부지불식간에 물려받는다. 그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깨달음이야말로 우리네 인생과 영화가 닮은 점이다.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씨네21북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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