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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이 : 삐딱아, 너 박노자 교수가 누군지 알지?

삐딱이 : 허! 지금 하는 얘기가 박노자 교수가 쓴 책에 대한 건데 날 무시하는 거야?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바라본 한국사회의 초상'이라고 카피라이터가 뽑은 것만 같은 부제를 달고 나온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나도 보았지.

어룸이 : 이젠 귀화 러시아인이라고 부르기가 미안해질 정도야.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폭력'에 대해 그 뿌리를 100년 전으로 되돌아보게 하고 있잖아. 결국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지.

▲ 박노자의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표지
ⓒ 인물과 사상사
삐딱이 : 박노자 교수가 그간 꾸준히 제시해 왔던 얘기기도 하지.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는 그간 박노자 교수가 제시한 주장들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책이야.

어룸이 : 그렇지. 이 책에서 박노자 교수가 제시하는 얘기의 큰 축은 바로 이래. "100년 전의 '개화'를 출발점으로, 그리고 일제시기를 본격적인 성장기로 하는 한국의 현재 파시스트적 억압의 구도는 단순한 '잔재'라기보다는, 한국의 지배층이 그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선택한 근대성의 한 형태다. 그 형태를 바꾸기 위한 일환으로 진보 사학자들이 '개화'의 주역들의 보수 재산가로서의 진면목, 그 사상의 계급적 성격, '기술적 합리성'의 파괴성, 그리고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내재적 문제점들을 대중에게 이야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 한겨레 21 2003년 9월 6일 제475호 박노자 '파시즘'의 뿌리는 너무나 깊다

삐딱이 : 좋아, 하지만 박노자 교수가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한 건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봐.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지? 난 그 안에서 단지 파시즘적 요소를 솎아내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역사 속에서 주변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아오는 와중에 키워진 민족의식이 그렇게 매도당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있어.

어룸이 : 아직 박노자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했구나. 그 민족의식 또한 지배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심어진' 것이라는 거야. 그것은 한국에서 특이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대 서구사상과 이를 받아들인 중국, 일본의 사회진화론이 당시 지배층이나 엘리트 사회에 깊이 흡수되었다는 것이지.

삐딱이 : 그래서 100년전의 지배층과 개화사상가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구나 그런데 사회진화론은 또 뭐야.

어룸이 : 쉽게 말해서 약육강식의 논리야.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힘을 키워라. 그것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는 속박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 도처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야.

삐딱이 : 잠깐! 그러고 보니 사회진화론은 사회과학이 아닌 다윈의 진화론에서 파생되어 나온 논리잖아. 인종주의, 파시스트 논리지. 우리 사회의 중심담론 중 하나가 그런 맥락에서 닿아 있다는 거야?

어룸이 : 박노자 교수는 그것을 공박하고 있는 거야. 감정으로 이해하기에 벅차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런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철저히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지. 조금만 머리를 돌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지적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틀리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삐딱이 : 하지만 박노자 교수의 이러한 지적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인 뒤 남은 공백은 무엇으로 채우지?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고 주위의 강대국들은 100년 전의 세계처럼 부국강병에 눈이 새빨갛게 매달리면 어찌 해야 되는 거야? 당장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며 자위대를 증강시키는 일본을 봐. 그리고 박노자 교수는 지극히 좌파적인 시각에서만 한국사회를 진단하려고 해. 그러면 민족주의 우파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평형선만 그릴 거 아니야?

어룸이 : 박노자 교수는 민족을 벗어난 시각에서 보라는 것이지. 하긴 우리가 유럽처럼 극단적 민족주의의 추악함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주위의 강대국들을 이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박노자 교수의 다른 책이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좋아. 그리고 의견일치? 그러한 획일주의를 부정하는 게 박노자 교수의 입장인데 그러면 다시 얘기가 돌아가는 셈이잖아.

삐딱이 : 결국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부국강병이라는 취지하에 사회에 만연된 폭력을 되돌아보고 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거군? 그래도 이를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야.

어룸이 : 박노자 교수가 이렇게 지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문이 열려 있다는 거 아닐까? 어찌되었건 논쟁이 될 만한 여지도 이 책에서는 차분히 역사적, 학술적으로 따지며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만 하군.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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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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