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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이 크게 훼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모조 금메달의 앞면.
육영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이 크게 훼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모조 금메달의 앞면. ⓒ 손기정 사이버기념관
분실됐나, 훼손됐나.

고(故)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획득한 마라톤 금메달이 심각하게 훼손됐거나 또는 분실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됨에 따라 지난 26년간 금메달을 보관해온 육영재단이 진품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있다.

많은 언론들이 10일 손기정 금메달의 분실 의혹을 다룬 기사를 내보냈지만, <동아일보>는 "손옹의 메달은 재단 이사장이 별도의 보관실에 보관중"이라는 박용규 육영재단 총무부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같은 의혹이 일자 육영재단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금메달과 월계관 등 중요 물품은 도난과 훼손이 염려돼 별도의 보관실에 보관중"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동아> 기사를 쓴 양종구 기자는 지난해 7월 '금메달 진품' 논란이 일자 육영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금메달을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박근영 이사장 등 몇몇 재단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말 많은 '손기정 금메달'을 직접 본 유일한 사람인 셈이다.

당시 양 기자는 "손기정 선수 타계 2주년(11월 15일)이 다가오는데, 금메달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고있다"며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육영재단에 금메달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박 이사장이 이를 수용했다는 후문.

양 기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육영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금메달의 보관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며 "함께 가지고 있는 월계관도 거의 썩어부스러진 상태"라며 육영재단의 기증품 관리실태에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육영재단은 '관리가 잘못돼서 녹슨 것을 벗겨냈다'고 하지만, 진위를 판가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며 "오늘자 신문에 나간 메달 사진은 그나마 그럴 듯 하게 (처리해서)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에 '손기정 금메달이 크게 손상됐다'는 기사를 쓸 수도 있었지만, 메달의 진위 여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메달 손상' 기사를 쓰기도 힘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금메달과 함께 보관하고 있는 월계관도 봤는데, 월계관이 썩어서 거의 부서진 상태"라며 "작년 독일에서 진공 전시장치를 들여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기정기념재단(www.marathon1936.com) 이사장을 맡고있는 강형구 중앙대 교수는 "(동아일보) 사진만으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다"며 "진품을 봐야하는데, 가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 교수는 이준승(손기정의 외손자)씨와 함께 10일 오후 육영재단을 방문해 "금메달의 보존상태를 확인해야겠다"고 요구했지만, 육영재단 관계자들은 "손 선수의 장남 정인씨가 직접 와야 보여주겠다"며 이같은 요구를 일축했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월계관과 금메달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온도계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공개할 만한 기념관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개를 위해서는 사무국장의 결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육영재단은 "박근영 이사장은 이날 출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손기정 선수도 79년 이후 금메달 한번 밖에 못 봐"
납득할 수 없는 육영재단의 처신

▲ 육영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과학관에 위치한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사이버기념관

1912년 평안도 신의주 출생의 손 선수는 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대회에서 2시간29분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일제의 지배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준 인물.

1970년대 "손기정 기념관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제안을 손 선수가 쾌히 수락, 79년 7월 25일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과학관 1층에 '손기정 올림픽 기념실'(지금의 손기정 기념관)이 문을 열게 됐다.

그후 손 선수는 육영재단이 기증품들을 잘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손 선수가 2002년 타계하기 2∼3년 전부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말년의 손 선수는 금메달과 월계관 등 육영재단 소장품들을 보기 위해 3차례 정도 어린이회관을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기념관이 굳게 닫혀 있어서 소장품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동안 손기정 기념관은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날보다 폐쇄된 날이 더 많았고, 그나마 가장 가치가 높은 금메달과 월계관은 일반인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어린이회관 내에 기념관을 만들면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기증품을 널리 볼 수 있을 것이라던 손 선수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말년의 손 선수는 체육계 관계자들에게 "내가 기증한 물건을 내가 볼 수 없다는 건 너무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는데, 육영재단 측은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기념관을 증개축해서 금메달을 전시하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그러나 재단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육영재단은 2001년 손기정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당시 추진위원들도 금메달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손 선수는 2002년 11월 15일 세상을 떠났는데, 79년 육영재단에 금메달을 제공한 후 98∼99년경 단 한 차례만 금메달을 봤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유족들은 육영재단에 "장례식 때라도 쓸 수 있게 금메달을 잠시 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육영재단은 "메달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물건을 다시 돌려줄지도 믿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손 선수가 죽은 뒤로 육영재단과 유족들 사이의 불신은 더욱 깊어지게 됐고, 유족들도 공공연히 육영재단을 겨냥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손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 동창회는 2004년 5월 14일 서울 만리동 옛 양정고터에 또 다른 손기정기념관을 개관했는데, 손정인(손기정의 장남, 일본 요코하마 거주)씨가 이날 "육영재단이 93년부터 일반에 전혀 공개하고 있지 않은 금메달과 월계관, 상장 등의 기념품들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다. 육영재단은 이때도 "그동안 여러가지 일들이 많아 금메달 전시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며 그해 가을에 기념관을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육영재단이 금메달을 숨기는 상황이 이어지자 유족들사이에서 '금메달이 없어졌다', '메달이 크게 훼손돼 도저히 전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온갖 억측들이 나오는 실정이다.

육영재단은 "서동진 사무국장이 상황을 제대로 몰라 실언한 것"이라며 "금메달은 잘 보관돼 있다"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서 국장이 최근 <국민일보> 취재팀에 "당초 기증 받을 때부터 금메달은 없었다"고 금메달의 행방에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유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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