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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춘 박은옥 <평화 그 먼 길 간다>
ⓒ 탁현민
<평화, 그 먼 길 간다> 거리 콘서트가 예정대로 무사히 치러졌습니다.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무거운 하늘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는 9일 오후 7시, 공연장 맞은편 가로수에 '범대위'에서 준비한 공연 플래카드가 걸리고, 공연 준비 스태프들이 트럭에서 장비들을 내리고 교보문고 옆 노상의, 건물에 붙은 녹지 쪽으로 살짝 들어간 공간에 음향 기기들을 설치하고, 판화가 이철수씨가 특별히 디자인한 공연 막을 설치하고 또 특별히 준비한 CD로 아리랑 음악이 힘차게(?) 터져 나오면서 "평화, 그 먼 길 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음악은 힘찰 뿐더러 또 비장하기도 한, 북 장단과 단순한 아리랑 멜로디가 연주되는 곡이었지만 정태춘씨는 이 음악이 마음에 든다고 공연 앞뒤의 시그널 음악으로 계속 준비해 주십사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박은옥씨는 (공연 중에) 이 음악을 들으면서 왠지 너무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고…. 우리가 무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식구들, 범대위(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집행부 분들, 평택대책위와 팽성대책위 분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일부 외국인들과 정태춘 박은옥의 팬카페 회원들이 합류하면서 작은 객석이 보도블록 위에 마련되고, 30여명의 관객들을 위한 첫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클레멘타인' 가사 고친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예쁜 무대 뒷막을 배경으로 잘 준비된 무대에 정태춘씨가 먼저 나와 무반주로 첫 곡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불렀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고향]

(미국 민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멜로디에...)

1. 도두리 벌 가로질러 철조망 지나가고
성조기가 펄럭이고 나팔 소리 울리면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상처 아니 아플꼬
빼앗기고 찢겨지면 상처 어찌 아플꼬

2. 대추리도, 황새울도 한두 푼에 내주고
무너지고 메워지고, 미군의 땅이 되면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어디 가서 만날꼬
빼앗기고 사라지면 어디 가서 만날꼬

3. 작은 놈이 뺏어다가 큰 놈한테 바치고
기어이 대국의 군대 군화발에 밟히면
조선 처녀 조선 처녀 어디 가서 숨을꼬
노리개로 몸 팔리면 누가 다시 품을꼬

4. 넓고 넓은 대륙 끝에 작은 나라 한반도
조상 대대 피 땀 묻은 소박한 사람의 땅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동포여
우리 땅을 빼앗는데 너는 어딜 갔느냐


노래가 끝나고, <수진리의 강> 반주음악이 나오면서 박은옥씨가 입장하고, 노래하고, 노래 중간에 간단하게 인사하고…. 그리고, 약간의 감회를 이야기 하고 정태춘씨의 <시인의 마을> <북한강에서> <봉숭아> 등으로 이어지고 <리철진 동무에게>까지….

특별한 초대 손님들

기획단이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매 공연마다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초대 손님을 모시자, 그 분들이 이 싸움에 이후에도 함께 하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자는 의견이 있었고, 소수의 대상자 명단도 작성되었지만 그래서 이철수씨와 시인 도종환씨의 일정까지 확정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유보되었습니다.

거리 공연이 얼마간의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언론 홍보를 안 하는 관계로 관객들도 아주 작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대단히 썰렁한 공연이 될 터인데 거기에 초대 손님을 모시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 정태춘씨의 입장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척 공연에는 특별한 초대 손님이 없었고 대신에, '팽성대책위'에서 올라오신 분이 소개되고 그 분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들 가운데서>가 생략되고 바로 <마클 일병에게>라는 새 노래가 시 낭송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혹시, 이 시의 견해에 의의가 있으신 분은 공연 뒤에 말씀해 주십사 하는 부탁과 함께….

ⓒ 탁현민

[마클 일병에게]

천안 교도소
숨 막히는 담장은 높기만 높고
15년 징역
아직도 남은 형기는 길기만 긴데
그대,
먼 먼 이역의 땅에 총을 들고 들어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에 대한 적개심,
그저 더플백과 함께 지급 받은,
한 번도 마주쳐 본 적 없는 어느 한 이민족에 대한
공허한 공포와 경멸로
어느 한 절대 권력의 맹목의 총잡이가 되어
아름다운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다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이었겠는가

마클 일병,

금이의 죽음은 너무나 처참하였으나
그는 이제 많은 이들의 애처로운 누이로,
많은 이들의 살가운 자매로 다시 보듬어지고
그의 영혼은 이제
전라도 순창, 고향의 고즈넉한 들판이나
고향집 마당가의 작은 화단에 내려앉는 햇살처럼
기끔씩 그렇게 유년기의 추억들도 더듬으며
평안히 쉬고 있을 것이네

마클 일병,
이제 그만 돌아가게
그대 그리운 고향으로, 가족들 품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게
그대의 섬짓한 죄가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듯이
그대에 대한 기나긴 징벌만이 또한 사람들이 할 바
는 아니네
마클 일병,

여기는 콧날이 낮고 키가 작은 사람들의 땅
수많은 시련으로 상처투성이의 역사를 가진 나라
주위의 이민족들과도 그다지 원만한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민족
여기 더 이상
그대들의 총검, 미사일, 전투기,
그것들의 화약고를 품고 있을 수는 없다네

이제 그만 돌아가게
그대 아메리카 형제들 모두와 함께
아메리카로

우린
그대들의 점령지
긴 긴 활주로, 거대한 연병장,
훈련장, 사격장, 탄약고…
거기 살벌한 철조망들을 걷어내고
평화의 나무들을 심을 거라네
거기 또는,
콩을 심거나 우리들 양식을 심을 거라네
또는, 아이들 놀이터를, 공원을
만들거라네

마클 일병,
이제 그만 돌아가게
그대 형제들과 함께,
그대들이 들여온 모든 살인의 무기들을 가지고
이제 그만 그대들의 아름다운 고향으로
또한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바라는 그대들의 가족
들 품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게

이제 그만
돌아가게

(노래)
묻지 마라, 간다 막지 마라, 간다
등때기에 씨앗 큰 자루를 메고
어매 가슴팍 같이 허물어진 동산
울며, 다리 절며 헬기 편대 미친 바람 속
때 절은 모자 차양 너머 붉은 해가 뜨고
철조망 안의 성조기도 불안하게 나부낀다
막지 마라, 간다 다만, 호미 하나 뿐
우리 귀한 양식을 심으러 간다

개망초가 피오, 할미꽃이 피오
창포 원추리 민들레 엉겅퀴 풀밭둑 저 켠
오이 넝쿨 하나도 넘어갈 수 없는
금단의 높은 철조망에 걸려 넘어지며
흙투성이 고무신을 조각밭 이랑에 두고
빼앗긴 땅 긴 긴 활주로 깨진 틈새를 찾아
막지 마라, 간다? 다만 씨앗 한 자루 뿐
너희 귀한 양식을 심으러 간다


"이 공연은요 사실…" 박은옥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달 전쯤에 정태춘씨가 느닷없이 "나는 거리 공연을 해야겠다. 팽성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기한으로 매주마다 겨울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처음엔 좀 반대했고, 타협한 것이, 거리에서 매주 공연을 하되 10월까지로 기한을 정하고 하자. 나도 남편을 돕고 싶었고, 함께 하기로…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아… 객석에 함께 한 이들….

노상의 객석엔 공연하는 동안 인원이 불어 50여명이 앉거나 서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맨 앞줄에 팬카페 회원들 10여명과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정병호 교수 일행(어제까지 대학에서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이 있었고, 그 마지막 문화행사 프로그램에 정, 박 부부와 일본 가수들의 합동 공연이 있었고, 거기 참가했던 일본인 학자, 학생들과 아이누 민족음악가 등 10 여명이 공연에 왔음), 그 뒤로 조희연 교수와 교토 리츠메이칸 대학의 서승 교수 그리고, 민가협 식구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작은 피켓을 든 평통사 식구들 또 여러분들이 촛불을 밝혀 들고 함께….

공연 사고(?)와 감회

그리고 마무리이어서, 반주 음악으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가 시작되고, 박은옥씨의 1절이 끝나고 정태춘씨의 2절이 시작되는데 그만, 전원이 나가고, 기타로 노래는 다시 시작되고, 박수가 나오고….

정태춘씨가 말했습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노래를 하면서 눈을 감고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다시 눈을 뜨면 지금 여기가 여기가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었으면, 다른 어떤 세상이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나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노래한 지 26년이 되어 가는데 그게 다 지금 이런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수)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부르겠습니다. 크게 해 주세요, 하는 박은옥씨의 주문으로 마지막 곡 <사랑하는 이에게>가 불려지고, 앙코르와…. 정태춘씨의 마지막 인사, 장소를 쓰도록 해 준 교보생명 측에도 감사…. 앙코르를 사양하고 인사…. 두루 감사의 악수를 나누고, 무대 막은 내려지고, 음향도 조명도 꺼지고, 아쉬운 마음으로 모두 다시 거리로 흩어지고…. 뒷마무리….

ⓒ 탁현민

덧붙이는 글 | 이 공연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광화문 교보문고앞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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