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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86년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대는 학생으로 위장한 정보기관의 끄나풀, 이른바 프락치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이들 때문에 소리 소문 없이 체포되고 단체가 와해되곤 했으니 이들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럴 때, 보안대 중사로 의심되는 프락치가 학생들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농과대 기숙사에 있다는 것이었다. 더럭 겁이 났다. 서둘러 농과대 기숙사로 갔다. 프락치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방으로 갔더니 예상했던 것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상태였다. 창문을 검은 천으로 가려 소위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고 후배 학생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보안대 중사로 의심된다는 보고와 함께 조사를 하고 있다며 약간은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맨 먼저 살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두 발과 두 손도 묶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도 엉망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너희들 운동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잔뜩 화난 목소리로 원론적인 질문을 느닷없이 던지자 후배들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중에서 고문당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당장 풀어!”
두 발과 두 손을 묶은 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자는 보안대 중사로…….”
후배 하나가 곤란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주둥아리 닥쳐!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누가 너희들한테 인간을 고문할 권리를 줬는데? 누가 줬어?”
“운동하는 과정에선 충분히 있을 수…….”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후배들과 이렇게밖에는 공감대를 갖지 못하고 있었던가? 자책이 밀려들었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가 운동하는 목적 중의 하나에는, 고문 없는 세상도 있어. 우리가 고문 받고 싶지 않다면 우리 역시도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을, 그 사람이 비록 적이라고 해도 고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운동의 목적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니냐? 사람을 이런 식으로 고문하는 것은 운동의 진정성을 해치는 나쁜 행위야. 우리는 운동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후배들은 이해는 하지만 당장 풀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수배학생들의 수배 해제와 사찰 금지 등의 조처가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 거래를 제안하는 순간, 우리 학교의 학생운동권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프락치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았지만, 그럴 때마다 크게 다치는 것은 학생들이지 경찰이나 안전기획부가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오래지 않아 후배들은 다행히 내 말을 이해했다. 나는 즉시 학교 측에 연락해 대학병원에 입원실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곤 그 사람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줄을 풀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사람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말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가 크게 잘못했습니다.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용서하시고, 치료를 받으세요.”

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장에 나가겠다고 하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문을 당한 채로 밖으로 나가 기자회견이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이 프락치가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만약 프락치라면 학교에서 나가자마자 즉시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방법은 물론이고 대대적인 기획 수사가 벌어질 터였다. 그런데 대학병원으로 가겠다는 것은 프락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아찔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잡아와 가혹한 고문을 가할 수 있다는 의식을 우리가 가졌다는 것이 끔찍했고 절망스러웠다.

심성이 착한 후배를 찾아 이 일을 비밀에 부치고,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간병을 하라고 부탁했다. 그 후배는 흔쾌히 동의했다. 승용차를 빌려 그 사람을 대학병원으로 옮긴 뒤, 돈을 모아 전달했다. 일주일 후 그 사람은 퇴원했고 다시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퍽 흘렀는데, 그 사람은 그 때의 끔찍했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가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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