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은화폐를 더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백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한 참석자가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도 1천보은의 청문권을 내 놓으셔야 발언 할 수 있습니다." 단군임금역(회의의장)을 맡은 빛살님이 대답하자 참석자들이 와~ 하고 웃었다.
화백회의 말발로 지급받은 총액 5천 보은화폐 중 질문 한마디에 1천 보은이 나가자 그 참석자는 못내 애석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어느 꾀 많은 교사 한분은 하늘님 자리에서 임금석으로 하세(下世)하면서 손짓발짓으로 자기 자리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일이 생겨나면서 회의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질문을 지정받은 차차웅(경우판정관)인 소걸음님의 설명이 끝나고 농주님이 천 보은을 내 놓으면서 설명을 추가하였다.
"지정받지 않았으면 질문에 답하는 것도 이렇게 천 보은을 내 놔야 합니다. 회의 진행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로 천 보은을 내 놔야 합니다."
이 말에 참석자들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농주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모든 회의 참석자는 최고의 원주권자인 하늘님입니다. 하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상대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인정입니다. 그래서 질문과 답변은 하늘님들의 시간을 빼앗는 죄송스러운 짓이기에 보은화폐를 내 놓는 것입니다."
이때 단군역을 맡은 빛살님이 덧붙였다.
"단군과 차차웅만이 예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서양식 회의는 논리가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최고지만 화백회의는 말 잘 듣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가슴을 돌아 나오는 내 말을 내가 듣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이루어지는 화백회의 시연
8월 17일 저녁, 대안교육연대(www.psae.or.kr)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익산 원불과 중도 수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교사연수회에 '화백회의 팀'이 가서 시연을 하였다. <길동무(gildongmu.org)>에서 빛살님과 농주님. <마리학교(mari.or.kr)>에서 소걸음님과 성국모님. 그리고 좌계학당에서 빈산님이 화백회의를 이끌었다.
화백회의를 복원 해 낸 재야문화인류학자 좌계 김영래 선생은 한*러 친선 유라시아 대장정에 보름간 참석했다가 막 귀국했는지라 이 시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 시연에는 교사연수회에 참석한 70여분의 현직교사들이 참석하였는데 전국 각지에서 온 초.중.고 교사들이었다.
빛살님이 단군을 맡고 소걸음님은 차차웅, 빈산님은 환전과 계수를 맡았다. 농주님과 성국모님은 하늘님으로 회의에 직접 참석하였다. <화백회의>가 천 수 백년의 세월이 지나 처음 복원 된 이후 일곱 번째 시연이었다.
3년 전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서 두 차례. <길동무> 총회에서 두 차례. 마리학교에서 한 차례. <지리산생명평화결사>에서 한 차례 시연을 했었다. 민주노동당 연수원과 녹색대학, 그리고 대구의 어느 시민단체에서 시연에 대한 상담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성사 되지는 않았었다.
정화의식과 서로에 대한 큰 절로 하늘님에 대한 예를 올리다
화백회의 시연이 시작되기 전 회의장 정화의식과 기초교양을 엄숙하게 진행하였다. 성국모님의 사회로 진행된 사전 의식은 시연단의 소개에 이어 쑥불 정화의식과 참석자들의 맞절로 이어졌다.
쑥불 정화의식은 회의장의 삿된 기운을 몰아내고 모든 참석자들이 맑고 깨끗한 마음가짐을 갖고자 하는 의식이다. 소걸음님이 준비 해 온 강화쑥을 사기 화로에 담아 태워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쑥불 연기를 서로 마시며 자기 몸에 끼얹는 순서다. 이 정화의식이 끝나면 원형으로 둘러앉은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서로에게 큰절로 존중과 믿음을 전하는 순서가 있다.
쑥불 정화의식과 맞절을 하고나니 회의장이 매우 정갈해진 느낌이 들었다. 준비한 자기주장에 매몰되어 상대방이 제압의 대상이 되는 서양식 회의하고는 출발부터가 다른 분위기다. 이 맞절은 회의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참석자들은 하늘님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므로 하늘님이 하늘님에게 드리는 경배와도 같은 것이다.
13쪽에 달하는 화백회의 자료집을 나누어 준 다음 소걸음님이 먼저 화백회의의 유래와 의의, 화백회의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했고 빛살님이 화백회의 진행에 대해 설명하였다. 평생 남을 가르치기만 해 왔던 교사들인지라 처음 듣는 용어와 회의절차를 새로 배워야하는 현실 앞에서 알듯 말듯 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러나 역시 교사들은 달랐다.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데 있어 최고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절차와 방식 그리고 <화백회의>가 갖는 폭발적인 화합력에 대해 교사들은 흠뻑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시연 한 어떤 화백회의보다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농주님이 화백회의에서 사용되는 '보은화폐'의 취득과정, 화폐의 용도, 화폐사용의 방법과 국가화폐로의 환전비율 등을 설명 할 때도 교사들은 금방 이해했다. 더구나 환전이 이루어진 국가화폐의 공익적 사용에 대해 설명하자 모두들 소리 내어 감탄하였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상쇄>나 <환전>을 통해 국가화폐인 원화가 쌓여가게 되는데 이것은 원래 공동체 내에서 가난한 사람의 빚을 탕감 해 주거나 공공의 용도로 사용 해 왔던 것이다.
이날은 화백회의 보급과 연구에 사용 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회의를 시작하였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바람직한 연대방안 한 가지 정하기
이날의 의제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바람직한 연대방안 1가지 정하기'였다. 예정된 두 시간을 훨씬 넘기면서 진행되었다. 안건이 네 가지나 나왔다.
하늘님석에서 안건을 들고 내려 온 임금님들로 임금석이 넘쳤다. 어떤 안건은 보완에 보완이 거듭되어 형님임금과 아우임금이 즐비했다. 그러나 <십자공수>와 <상쇄>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많은 갈래의 의견들이 통합되어 가는 순간 참석자들은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하였다. 회의참석자들인 하늘님들은 보은화폐로 말발을 세워 주기도 하고 빼 버리기도 하면서 개별 임금님의 의견은 끊임없이 사회화 되어 갔다.
결정된 안건에 대한 충실한 동의 과정이 있었다. 단군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 결정사항을 모두가 100%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순서였다. 그리고는 다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결의된 보은화폐(의견신위 議決神位)를 앞에 두고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회의를 끝냈다.
의견그룹간에 어떤 갈등도 만들지 않으면서 만장일치로 가는 화백회의의 묘미에 모든 교사들은 시연이 끝나고 나서도 흩어지지 않고 시연단 주위로 몰려들어 소감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학교 교실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고심어린 질문들이 계속 나왔다. 화백회의에서 말발과 청문권으로 사용하는 보은화폐를 어떻게 확보하는지도 물어왔고 공덕에 따라 나누어지는 보은화폐의 지급 기준도 궁금해 했다. 보은화폐를 제일 많이 가진 학생이 화백회의의 말발을 좌지우지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도 물었고 우리 시연단을 초청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해 했다.
이날의 화백회의 시연에서는 시연단은 3만 보은, 참석자들은 5천보은의 보은화폐를 지급했는데 회의가 진행되면서 국가화폐로의 환전이 이루어졌고 이어 뜻있는 교사들의 성금이 들어왔다. 총액 24만원이었다. 자비를 들여 강화도와 서울, 전남 곡성과 전북 완주에서 참석 한 시연단 단원들의 여비라도 하라는 뜻에 따라 10만원은 시연단의 차비로 지급하고 14만원은 화백회의 기금으로 적립하기로 했다
고대 동아시아 기마민족의 공동체 결속의 수단이었던 화백회의가 신라시대에 맥이 끊긴 이후 다시 이 땅 한반도 남단의 산 속 연수원에서 성공적인 시연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 보람이 있었다.
| | 화백회의에서 말발과 청문권으로 쓰이는 '보은화폐'란? | | | 공동체 내에서의 공덕에 따라 보은화폐가 달리 주어진다 | | | | 화백회의에서는 보은화폐로 발언을 한다. 이 보은화폐는 공동체 내에서 평소 쌓아 올린 공덕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공동체를 위해 큰 공로는 세운 사람은 더 많은 보은화폐를 지급받게 되며 그에 따라 발언권이 많아지는 것. 따라서 평소 공동체를 위해 한 일이 없는 사람은 최소한의 보은화폐만 받게 되어 발언권이 적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보은화폐의 종류
도전(刀錢) : 임금에게 하늘님들이 말발을 실어주는 화폐. 한도 내에서 제한 없이 사용 된다. 한도는 정하기 나름인데 발언권의 독점을 막기 위해(한 회기의 화백회의에서 최대 3만보은까지 소지하기) 등을 정 할 수 있다.
벽옥(碧玉) : 질문. 의사진행발언. 상황설명 등에 쓰이는 화폐이다. 한번 사용에 천 보은이나 백 보은으로 정해 둔다. 그러나 이번 시연에서는 편의를 위해 구분하지 않고 도전을 다 사용하였다.
보은화폐 사용의 원칙
절대 양도하거나 매매할 수 없다. 공덕을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공덕은 오로지 정성과 몸으로 땀 흘려 쌓아야만 한다.
말 발 싣기 : 지지하는 의견을 낸 임금에게 보은화폐를 준다.
말 발 빼기 : 회의가 진행되면서 더 좋은 의견이 나오거나 애초 지지했던 임금이 남을 비난하거나 자기 고집을 부리면 보은화폐를 빼 내 올 수 있다.
이처럼 하늘님은 무슨 짓(?) 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절대권력의 주권자이므로. 그러나 절대 말은 할 수 없다. 말발을 세우거나 빼는 일만 한다. 말을 하고 싶으면 임금석으로 가야한다.
보은화폐의 유래
2002 년 8월.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이 두달여 만에 충북 보은에 당도했을 때 3일간 '보은취회'를 열어 100여 년 전 동학농민군들이 다졌던 결의를 재연했었던 장소에서 화백회의 첫 시연을 했다. 이것이 '보은화폐'라고 불리게 된 유래다. 공덕에 따라 드리는 화폐이니 만큼 이곳의 지명인 '보은'과 너무도 어울린다.
보은화폐 환전과 용도문제
국가화폐로의 환전은 정하기 나름이다. 1:1 에서 10:1까지 다 가능하다. 환전과 <상쇄>를 통하여 모여진 국가화폐는 공동체의 공익적 사업에 쓰이므로 열심히 회의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공헌을 하는 과정이 되게 한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공지하는 것이 좋다. / 전희식 | | | | |
덧붙이는 글 | <화백회의 시연팀 소개>
단군역의 빛살님 - '길동무' 김재형님
농주님 - '길동무'의 전희식님
차차웅역의 소걸음님 - 마리학교 교장 황선진님
환전관역의 빈산님 - 좌계학당의 별자리 연구가 박종일님
진행자역의 성국모님 - 마리학교 영어교사 성국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