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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이번 장계보따리학교는 지난 23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언제나처럼 첫날 저녁에 '화백회의(다수결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서구민주주의가 갖는 문제를 극복하는 우리 조상들의 의사결정 방식을 복원한 새로운 민주주의방식)'를 열어 나흘 동안 뭘 하며 지낼 것인지 결정하는데 분명 이때는 빵 만들어 먹자는 의견이 없었다. 날짜별로 밥 할 사람과 설거지 할 사람, 그리고 놀이 할 것들과 청소 담당을 정하고는 화백회의를 끝냈던 것이다.

@BRI@이틀째 되는 날 목포에서 온 초등학교 4년생인 석훈이가 빵을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자기가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화백회의의 큰 특징은 언제나 더 좋은 새로운 결정을 해 나갈 수 있는 점이다. 모든 아이들이 찬성을 해서 갑자기 우리는 빵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그냥 간단히 찬성해 준 것은 아니다. 석훈이가 아이들의 질문에 충분히 답변을 함으로 해서 보따리학교의 일정 변경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석훈이에게 빵을 만들어 봤느냐, 맛있었느냐, 빵을 만들려면 무엇 무엇이 필요 하느냐, 그럼 재료를 사러 장계읍내까지 농주아저씨('농주'는 필자의 보따리학교 별칭. 보따리학교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호칭에서 차이를 두지 않는다)가 태워다 줄 수 있느냐 등을 확인한 다음에 "그럼 하자!"고 찬성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연필을 꺼내서 한참을 계산을 하더니 한 사람당 500원씩 걷기로 했다. 재료 구입비였다. 나는 면제 해 주었다. 집에 있는 밀가루를 내 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 트럭에 아이들을 다 태우고 장계읍내 농협상점으로 갔다. 여기서 아이들은 석훈이가 열거했던 재료인 건포도와 딸기쨈을 샀다. 이것으로 빵이 만들어져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다시 이틀이 더 걸렸다.

다음날 석훈이가 총 감독이 되어 빵 만들기 공사가 시작되었다. 큰 냄비와 따뜻하게 데운 물을 줬더니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석훈이는 집에서 엄마랑 다른 음식도 많이 만들어 봤다고 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음식 만들기, 설거지하기, 밥하기, 청소하기에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반죽이 아주 훌륭하게 되었는데 석훈이는 이것을 숙성 시켜야 한다면서 방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두어 시간 놀다가 다시 석훈이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건포도를 밀가루 반죽 속에 넣는 공정이 시작되었다. 이제 빵이 만들어지나 했더니 석훈이는 이걸 또 숙성시켜야 한다며 다시 아랫목에 묻었다.

빵이 만들어진 시간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호마이커 상을 펴 놓고 그 위에다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서 빵 모양을 만드는데 처음에는 동글동글한 작은 찐빵처럼 만들더니 어느새 장난기가 발동하여 꽈배기 모양도 만들고 곰돌이라고 동물 모양도 만들어냈다. 속에 쨈을 넣었는데 이렇게 만드는 게 맞는지 어떤지 아무도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고 애들은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는 빵 굽는 도구가 전혀 없는지라 아궁이 숯불에 구울까 어디에 구울까 하다가 너무 춥고 하여 가스레인지 프라이팬에 구울 수밖에 없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빵은 겉은 딱딱하여 바삭바삭 하였고 맛은 뭔가 특별한 듯한 것이 먹을 만했다.

열 몇 개의 손이 다투듯 빵 그릇으로 오가며 순식간에 빵은 동이 나 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올망졸망한 크기의 빵을 다 먹어치우고는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만큼 큰 빵 하나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걸 왜 남기냐고 내가 먹으려고 손을 뻗자 못 먹게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다음날 전체가 전남 장흥에 있는 생약초 체험관으로 가서 4곳의 농가에서 보따리학교를 한 아이들과 만나 사흘을 함께 지내게 되는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에서 먹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다들 손가락을 빨면서 군침을 흘리면서도 그걸 먹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참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보따리학교 내내 아이들은 석훈이처럼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놀이를 만들어 내고 솜씨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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