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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전
개막식에 앞서 북측 김기남 조국통일부위원장 일행의 북측대표단은 분단 60년만에 처음으로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헌화하고 묵념을 올렸다. 예상 밖의 북측의 참배는 어쩌면 북측보다 우위에 있다는 남측을 옹졸하게 만든 상황이기도 해 기분이 씁쓸했다.

그러나 아무렴 누가 먼저면 어떠랴. 서로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냉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에서 단행된 북측의 참배는 진일보하고 우리에게 많은 여운을 준 것만은 틀림없다. 지지난해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렇다.

나는 광복60주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 행사에 합창 단원으로 참가하였다. 내가 5살 때에 어른들이 광복된 그날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든 광경을 분명히 기억한다. 이제 내가 한반도기를 들고 '조국통일'을 경기장에서 외쳐댔다.

8월 14일 아침 10시부터 말복의 무더위는 바람 한 점 없이 더웠다. 개막식과 남북축구대전에 부를 노래를 연습하며 시간을 보냈다. 장엄하고 규모가 큰 상암경기장의 그 많은 좌석이 다 채워질까? 걱정이었지만 개막식이 시작되고 축구가 진행될 때 인파는 만원이었다.

심지어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은 경기장 입구에 마련한 대형스크린 앞에서 응원을 하며 동참했다. 먼저 남북해외대표단 1000여명의 1km 행진을 하여 경기장에 입장하니, 6만8000여 명의 경기장 참석자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조국통일’‘반갑습니다’를 외쳤다.

내 생애에 가장 많이 열정적으로 "통일조국" "우리는 하나"를 외쳤다. 합창단의 임무는 경의선 타고, 통일응원가, 신 아리랑, 고향의 봄 등 몇 곡을 부르는 것. 경기장 내 참석자가 한반도기를 만든 자리에 시종일관 자리를 같이 했다. 찜통 더위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흐뭇하기만 했다.

남북 정부대표와 해외동포가 참석한 가운데 남북해외대표단 대표가 행한 연설이 있을 때 한반도기는 펄럭이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특히 정동영 장관의 평화통일 당위성을 역사적으로 조리 있게 한 연설은 마치 대통령 후보 연설처럼 수차례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벌어진 남북대표팀 축구는 남북대표선수 모두에게 열렬하게 응원을 했지만 실력부족인지 아니면 피로가 덜 풀렸는지 그만 북측이 안타깝게도 3대0으로 지고 말았기에 북측선수와 대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음껏 동포애를 발휘한 축구였다.

어떻게든 북측이 한 골이라도 넣기를 바랐는데 그만 번번이 기회를 잃어 모두 아쉬움을 달랬다. 초청해 놓고 손님을 이겨먹는 비정한 남측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축구가 끝나고 남북선수가 한반도기를 들고 경기장를 한 바퀴 돌 때 사람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고 기를 흔들었다.

오늘 같으면 통일이 어려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남북이 60년만에 연 큰 행사를 별 불상사 없이 원만하게 치러내니 이제 서서히 통일로 다가가는 것 같은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경의선 동해선 기차와 남북 도로가 시운전을 거쳐 연말에 개통된다니 북쪽이 가깝게만 느껴진다.

이번에 순조롭게 진행된 남북축전을 보면서 모든 게 세월이 가니 하나씩 해결되는 것 같아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데 숨은 일꾼들이 있었다.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고 오직 조국의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당위성을 향해 뛴 통일일꾼들이다.

보수 수구 기득권 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항의표시를 하는 시위가 있었다고 하나, 이제는 민족의 과제인 조국통일의 당위성 앞에 많이 수그러든 감이 없지도 않다. 경기장에서 점심을 하던 때였다. 자신이 신림동에 살고 48세라고 주민증까지 보여주며 말한다. “오늘 경기장에서 '통일조국'을 외치며 함께 하니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집에서 <조선> <동아>를 보는데 그러면 또 그 기사가 맞는 것 같다”는 심정을 고백했다.

나는 박씨라는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갈등이 바로 오늘 보수우익의 심정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오늘 그 자리에 와 있는 것 자체가 변화의 모습이었다. 난 넌지시 “분단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살길은 조국통일 평화통일 밖에 없다”라고 말해주었다.

통일교육위원으로 당연한 시민교육을 한 셈이다. 소위 한국을 이끌어 간다는 거대신문들이 펼치고 있는 대북관계의 논조는 비판적이다. 60년을 그렇게 초지일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민족의 제1순위 화두는 당연히 평화통일이 아닌가? 조국과 민족의 역사 앞에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서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60년 전 광복이 환갑을 맞이해서야 '조국통일'을 외치고 있었기에 지난 세월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지난 위정자들이 아니 여론을 이끄는 언론들이 분단의 아픔을 얘기하고 어루만졌다면 지금쯤 많은 조국통일의 장이 열렸을 것이다.

평화통일의 걸림돌을 하나씩 치우고 디딤돌을 놓는 일들이 이번 8·15 광복 60주년 행사를 거행하면서 많았음을 보았다. 내 생애에 조국통일을 노래하고 조국의 하나 됨을 하루 종일 외치는 나의 행보도 평화통일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8월 29일 6자회담 재개를 기대한다. 이로써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왕성하기를 기원하고 북미 간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화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이다. 그 길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북측대표단은 분단민족사에 남을 만한 큰일을 하고 떠났다. 다시 재론하지만 국립현충원 참배와 여의도 국회의사당 오찬, 백범기념관 방문, 그리고 6·15선언 당사자 김대중 전,대통령 문병,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예방이었다. 이제는 거대한 평화통일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60년 긴 세월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60돌 행사만 같은 남북의 하나 되는 모습이 분명 조국통일의 기회를 앞당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내 생애에 통일조국과 평화통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다를 끝없이 열창했다. 8.15 개막식 행사에 합창단으로 참가하여 뜻있는 광복 60주년 행사를 남북과 해외동포들 대표까지 함께하면서 통일을 열망했다.

앞으로 남북은 이번 60주년 남북공동행사처럼 하나가 되어 노력한다면 조국의 평화통일도 머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전주곡은 이미 6.15 선언에서 있었기에 이제는 이를 실천하는 길만이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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