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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갯벌에 가면 다양한 생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서포 갯벌에 가면 다양한 생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 조경국
누구나 자신만의 숨겨둔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길을 떠나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곳. 어느 곳에 멈춰서도 주위 풍경이 느긋하게 시선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만약 그런 곳이 없다면 아마 그 사람은 길 떠나는 것을 싫어하거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시간과 사람과 돈 때문에 고생을 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멀리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어느 시기에 맞춰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며, 돈이 있어야 떠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풀고 놓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나는 그 곳, 내 마음의 휴식처인 나만의 숨겨둔 여행지 '서포'로 떠난다.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쪽으로 향한다. 진주IC에서 10분쯤 가면 곤양 IC가 나온다. 곤양 IC를 빠져 나와 좌회전하면 서포 가는 길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서포에 간다. 서포는 조용한 곳이다. 처음 찾았던 것이 중학교 1학년 때 였으니 이제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서포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변한 것이라곤 먼지 날리는 자갈길이 반듯한 아스팔트 포장길로 바뀐 것 말곤 정말 예전 그대로 모습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적막감이 더하다. 서포에 오면 항상 돌아보았던 아름다운 남해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비토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이고, 학교 담 주위엔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철조망까지 둘러 놓았다.

서포 중학교 교문 앞에서 만난 아이들. 서포도 이제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
서포 중학교 교문 앞에서 만난 아이들. 서포도 이제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 ⓒ 조경국
넓은 갯벌과 아름다운 남해 풍광 어우러져

사람은 떠났지만 그래도 서포는 온갖 생명붙이가 살고 있다. 푸른 논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의 우아한 걸음걸이. 도로 위를 후다닥 건너가는 꺼병이, 멀리 삼천포가 보이는 사천만을 끼고 있는 갯벌에선 하늘을 보며 집게발을 흔들다 재빨리 구멍으로 숨는 게들을 볼 수 있다. 서포의 주인은 바로 이들이다.

아직은 개발이 덜 된 서포엔 이런 갯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차를 길옆에 세우고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면 고운 진흙이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검은 진흙 사이로 밤하늘에 별을 박아 놓은 듯한 하얀 조개 껍질이 널려있고 갯벌 가장자리에 있던 바다새들은 일제히 군무를 펼치며 바다로 솟아 오른다.

서포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그러나 소중한 풍경들을 한나절만 시간을 내도 모두 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섬들이 아련하게 자리잡고 있는 푸른 바다와 온갖 생명들이 자라고 있는 검은 갯벌, 끝난 푸른 들판. 만약 시간이 넉넉하다면 비토에서 남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보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착 가라앉으며 편안해지는 느낌이 온다.

1박 2일로 이곳을 찾았다면 봉명상 다솔사, 와룡산, 삼천포 대교를 모두 가볼 수 있다. 봉명산 다솔사는 서포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이곳에서 기거했으며, 소설가 김동리 선생도 이곳에서 등신불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절 입구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다. 반드시 소나무 숲 입구에 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가는 게 좋다.

냅다 길을 건너고 있는 꺼병이. 길을 가다보면 꿩을 만나는 것은 다반사다. 아직 서포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
냅다 길을 건너고 있는 꺼병이. 길을 가다보면 꿩을 만나는 것은 다반사다. 아직 서포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 ⓒ 조경국
가족과 조용한 생태여행 즐기기에 안성맞춤

현재 공사중인 서포대교는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어서 서포에서 삼천포로 가려면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곤양 IC에서 진주 쪽으로 사천 IC로 내려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삼천포다. 삼천포 가는 길에 바로 서포와 마주 보이는 곳에 선진리 왜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 였던 이곳엔 왜병들이 쌓았던 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왜성의 입구에는 임진왜란 때 숨진 조선, 명나라 병사들을 모신 조명군총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있던 조선, 명나라 병사들의 귀무덤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왔다면 역사 공부까지 일석이조다.

삼천포에선 뭐니뭐니해도 남해까지 이어진 창선-삼천포 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꼭 봐야 한다. 대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아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듯. 대교의 끝머리 마다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있다. 단 자정이 지나면 다리의 조명도 꺼지기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 이곳을 찾으면 야경을 볼 수 없다.

서포 해안도로를 따라 삼천포, 그리고 남해까지 한 바퀴 도는 것은 1박 2일이면 충분하다. 삼천포 대교까지만 구경한다면 하루 코스다. 아이들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에서 자연 생태 체험을 즐기고, 한적한 해안도로 일주를 해보고 싶다면 서포 한나절 여행을 추천한다.

서포에서 바라본 와룡산. 비가 내릴듯 산꼭대기에 구름이 걸려있다.
서포에서 바라본 와룡산. 비가 내릴듯 산꼭대기에 구름이 걸려있다. ⓒ 조경국

덧붙이는 글 | 먹을 거리

역시 여름에 가장 입맛이 당기는 것은 냉면, 사천읍에 가면 아주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 바로 '제건냉면'. 상당히 양이 많기 때문에 절대 곱빼기를 시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비빔냉면은 상당히 맵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듯. 역시 삼천포에선 회를 안 먹고 갈 수가 없다. 그냥 횟집을 이용하는 것보다 삼천포어시장에서 바로 회를 사서 등대나 노산공원에서 바다를 보며 소주한잔 곁들여 먹는 회 맛은 일품이다. 양념이나 야채는 시장에서 알맞게 구입할 수 있다.

묵을 곳

1박을 할 예정이라면 숙박은 삼천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진주시의 아시아 호텔을 추천한다. 그리고 삼천포에서 묵을 생각이라면 삼천포에서 남해 쪽으로 창선-삼천포 대교를 건너가면 새로 지어진 여관들이 많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사진은 2004년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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