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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도어 오픈마인드의 주메이라 모스크
ⓒ 김정은
오일달러의 나라 아랍 에미리트

8월 13일 00시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하면서 난생 처음 타본 두바이행 에미레이트 항공의 기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일달러의 위력 덕분인지 이코노미 클래스인데도 영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좌석마다 모니터가 설치돼 있고 기내식에 대한 재료와 만드는 법 등의 자세한 설명이 담긴 고급스러운 메뉴용지가 각 좌석에 비치돼 있다.

닭이나 육류 내지는 밥이나 국수 등의 간단한 두 단어로 고객들의 순간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승무원들의 이야기에 개의치 않고 내가 원하는 기내식을 미리 인지하고 골라 먹을 수 있어 색달랐다.

이제 5시간쯤이면 도착할 아랍 에미리트의 한 곳 두바이 또한 기내식의 메뉴판처럼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축구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리던 곳, 그도 아니면 숨 가쁜 중동지역 보도를 하는 모 방송국의 특파원이 머무르는 곳 이외에 나에게 두바이라는 명칭이 가져다 준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갑자기 넘쳐나는 오일달러라는 전략적인 이해에 따라 영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급조된 나라 또 외인부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은 아랍 에미리트라는 국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랍 에미리트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7개 토후국들은 오래 전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거쳐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이 주둔군을 설치한 부족국가들이다.

우연히 이곳에서 발굴된 유전 덕분에 돈벼락을 맞게 된 이곳 사람들과 이곳의 오일 주도권을 다른 중동국에 뺏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하기를 원하는 영국에 의해 1971년 아부다비(Abu Dhabi), 아즈만(Ajman), 두바이(Dubai), 푸자이라(Fujairah), 라스알-카이마(Ras Al-Khaimah), 샤자르(Sharjah), 움 알카이 와인(Umm Al Qaiwain) 등 7개 토후국이 모여 급조하듯 만든 나라를 만들었다.

오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졸부가 된 나라,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역사적인 기초 조차 없이 부랴부랴 만들어진 나라가 오일달러의 위력으로 전 세계의 봉 노릇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만 머리 속에 박혀있으니 이곳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곳의 석유 부존양이 끝나는 2020년쯤이 되었을 때 지금 이들이 펑펑 쓰고 있는 오일달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다보면 한심한 생각조차 든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관은 나만의 어리석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옆 좌석에 우연히 두바이에서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이 비행기를 탄 한국분에게서 현재 두바이 상황을 듣게 된 것이다.

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 한국 중고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그는 두바이는 이미 우리가 알게 모르게 중동아시아 물류의 떠오르는 거점기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못지않은 규모의 두바이 공항, 2020년 후 오일달러의 끝을 내다보고 이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중동의 허브국이었다.

열린 마음의 쥬메이라 모스크와 열린 해변

▲ 주메이라 모스크의 여성기도실
ⓒ 김정은
아무리 중동 국가 중에서 개방적인 곳이 두바이라고는 해도 이곳도 엄연히 이슬람 국가다. 거리에서는 검은색 차도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한 여인들을 볼 수 있다. 그네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를 하기 위해 메카 쪽을 향해 땅 위에 머리를 조아린다. 이럴 정도이니 그네들의 사원인 모스크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외 중동의 허브, 관광대국을 꿈꾸는 두바이에서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오픈 도어 오픈 마인드'라며 관광객들에게 개방이 된 사원 '쥬메이라 모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1975년에 짓기 시작해서 1978년에 완성된 비잔틴 양식의 이 모스크는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이 특징이다. 이 사원은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안을 구경할 수 있다.

▲ 돛단배 모습의 버즈알 아랍호텔
ⓒ 김정은
또 이슬람 국가인데도 외국인들이 수영복만 입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있다는 것에서 관광대국을 꿈꾸는 이들의 오픈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그네들이 자랑하는 별 7개짜리 호텔 '버즈알아랍 호텔'이 있는 오픈비치가 바로 그 해변이다.

두바이 남쪽 주메이라 해변에서 280m 떨어진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은 돛단배 모습의 '버즈알아랍 호텔'은 아랍어로 '아랍의 탑'이라는 의미이다. 2004년 타이거 우즈가 이 호텔 헬기 이착륙장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고 있는 사진이 공개돼 유명해졌다. 그러나 호텔의 육중한 모습을 보면서 모양은 색다르고 멋있지만 건물의 효용도는 그리 높아보이지 않았다.

하루 숙박비가 로얄스위트룸의 경우 3500만 원에 이른다. 외부인이 호텔을 구경하려면 입장료 200디르함(한화로 약 7만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높이임에도 객실은 겨우 202개밖에 되지 않는 이 호텔을 이들은 무엇 때문에 지었을까?

바로 호화로운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호화로운 볼거리에 대한 집착은 두바이 건축법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아파트 하나를 짓더라도 개성이 없는 비슷한 디자인의 건물을 지으려면 건축법상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오일달러가 떨어지기 전에 각국 최고 기술자들을 오일달러로 데려와 자신들의 손이 아닌 남의 손으로 세계 최고, 최대, 가장 특이한 건물들만 지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하고 관광객들을 찾아오게 만들어 정작 오일 달러가 떨어졌을 때 그동안 투자했던 관광인프라로 먹고 살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다.

이런 마인드가 매우 독특하고 수긍되는 점이 있지만 과연 석유가 바닥나고 오일달러가 떨어졌을 때 제조업 기반없이 과연 이들이 그동안 투자해온 관광인프라만으로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커다란 돛단배모양의 호텔 앞에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깔려있는 쥬메이라 해변 오픈비치에는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수영복을 입은 서양 사람들이 백사장을 활보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런 와중에도 검은색 차도르를 두르고 백사장에 앉아있는 몇몇 여인의 모습이 몹시 낯설어 보인다.

비키니와 차도르가 함께 공존하는 외국인에게 개방된 모래사장? 아니 어쩌면 차도르를 꼭꼭 여민 채 외국인에게 문을 열기 시작한 두바이의 현재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이 땅에 석유가 나오는 것을 알라신의 은덕으로 여기면서도 알라신의 선물인 석유가 그들에게 치명적인 마약이 되지 않기 위해 석유가 말라버렸을 때 이후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 비키니와 차도르는 생존해 나가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아랍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차도르를 입은 여인과 수영복을 입은 외국인의 모습. 차도르를 꼬꼭 여민 채 외국인에게만 개방하는 현재 두바이의 모습이 아닐까?
ⓒ 김정은
현재 두바이는 공사 중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남개발을 연상시키듯 이들은 여기저기 호화로운 청사진을 걸어놓고 파도 파도 모래밖에 안 나오는 땅을 열심히 파고 또 파면서 어떻게 하면 더 호화롭고 독특하게 건물을 지을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3~4년 후에 이곳을 다시 왔을 때 이 두바이는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어느 정도 확신이 흐른다.

"사람들은 중동이 테러에 노출된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 두바이는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어요. 왠줄 아세요. 오사마 빈 라덴 소유의 건물들이 모두 이곳에 있거든요. 아무리 천하의 오사마 빈 라덴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돈줄인 이곳에 테러를 벌일 일은 없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 이곳 두바이처럼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봐요. 최근 유럽의 부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오일달러를 총 동원하여 서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아랍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중동의 허브국이자 중요한 국제사업 중심지가 되어 오일달러가 떨어질 때를 대비하는 두바이의 야망은 과연 성공할까? 어려운 대답이긴 하지만 그네들의 말을 빌리면 어려울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인샬라, 신의 뜻대로 일테니까.

다음 일정인 금시장을 향해 버스는 출발했다. 견딜만하던 아침 햇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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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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