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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이순신> 배경화면
ⓒ KBS
오랜만에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애정관계를 애련하게 잘 버무려 감각적으로 반역의 비장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다모'도 참 신선했지만 그 내용의 깊이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훌륭한 드라마가 '불멸의 이순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전투 승리의 비결은 군함의 숫자가 아니라 결국 민의 의지를 얼마나 잘 모아내느냐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명랑해전 편은 아직도 외세에 짓눌려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참다운 지도자감인 이순신 장군이 도성으로 쳐들어가 무능한 모리배들을 쓸어버렸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드라마에서 결국 죽음을 택했다. 실제로는 전사인지 자결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드라마만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깊이 생각해보니 이순신 장군의 자결이 이해가 되고 생각할수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도성을 쳐서 설령 역성혁명을 이루어 왕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 후대 정치인들은 더욱 군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선조가 우려했던 것처럼 명장이 나와 군인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이순신 장군의 역성혁명 선례 때문에 더욱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조가 그렇게 이순신을 충신이라고 확신을 하면서도 결국 역도로 몰아 처형할 생각을 한 것은 자신의 선대 이성계의 쿠데타가 머리에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그 이씨왕조들은 내내 자신의 군대를 믿지 못하고 명나라와 청나라, 나중에 가서는 러시아, 일본, 미국의 군대에까지 의존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을 친 것을 보면 이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순신이 살아 돌아가면 그 죄상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부하들까지 선조가 주리를 틀려고 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순신은 깨끗한 자결로 충심을 전달하여 부하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능력 없고 의심 많은 왕의 지배아래 있던 이순신 장군은 그렇게 훌륭한 전과를 올리고도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민족을 위해 그렇게 훌륭한 성과를 남기고도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결국 민주주의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쓰린 것은 그런 아픔이 비단 임진년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가난으로 교육을 받지 못해 영재성이 사장되고 있으며 해방 직후 그 끌끌했던 민족의 인재들을 좌익이니 뭐니 해서 수백, 수천 아니 수백만명을 처형하지 않았던가.

때에 따라서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따르던 가신들도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처단하였던 것이 이 땅 현대사의 진실이 아니던가.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식의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갈 때도 자신만 살자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자금을 적어로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믿음만은 확고하게 표현하였다. 끝까지 믿어주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오랜만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 후보가 언론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지도자, 참다운 인재를 가려볼 줄 아는 지도자, 충신을 믿음으로 대할 줄 아는 지도자, 외세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나라 민과 인재를 키워 자주적으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줄 하는 그런 지도자가 제발 이제는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자주냐 예속이냐의 그 판갈이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분열이다. 통일이냐 그 민족사의 절절한 물음에 이제는 더는 답을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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