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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밤,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의 ‘상상스테이지’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05’의 일부로 홍신자의 웃는돌무용단과 동물보호단체 아름품(KARA)의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가 있었다.

퍼포먼스는 시끄러운 트럭의 엔진 소리와 개 울음 소리로 시작되었다. 무대 뒤쪽에 설치된 천막에 동영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천막 위쪽에는 “누렁이는 음식이 아니라 친구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누렁이들이 가득 실린 철망들이 층층이 쌓인 트럭이 보였다.

기자는 트럭 위에 가득 쌓인 사각의 철망 케이지마다 빈틈없이 채워 실려 가는 누렁이들의 사진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설마 그들이 살아있는 채로 그렇게 실려 가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미 죽은 개들의 사체들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 철망 속에 구겨 넣어진 누렁이들
ⓒ 팀 옐로우독
하지만 그 동영상은 그들이 산 채로 구겨진 채 운송되며, 철망에 집어넣어지고 꺼내지며 철망 속에 갇혀 트럭에 싣고 내려지는 순간조차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일말의 존중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20Kg 가까이 나가는 누렁이를 귀를 잡고 꺼내서 역시 귀를 잡은 채로 들어서 다른 철망에 ‘던져’ 넣었다. 이미 다른 누렁이들로 차 있는 철망이라 녀석의 허리를 그냥 접어 넣고 철망의 문을 닫았다. 누렁이들의 살이 삐져나올 정도가 된, 그 철망 케이지는 트럭에 실려질 때 다시 한 번 무자비하게 뒤집혔다.

▲ "우리 시대 개에 대한 단상"을 낭독하는 김은경씨
ⓒ 가림토
그리고는 아름품(KARA)의 회원 김은경씨가 “우리 시대 개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하였다. 평범한 집에서 잔밥처리나 하게 하다가 식용으로 팔아버리려고 키우던 개 ‘두기’의 일생을 이야기 하며, 우리 시대의 개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살다가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 진실을 알리고 개식용을 강력히 반대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불편한 몸의 김씨가 끝내 울음을 참아가며 마지막 부분을 읽어내릴 때는 여기저기 관객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행사를 끝내고 김은경씨는 말한다.

“개는 먹기도 하는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개들이 집에서 키워지다가도 잔인하게 학대를 당하고 무책임하게 버려지는지 모릅니다. 공중화장실에 묶어 놓고 키우며 동네 아저씨들이 걸핏하면 말 그대로 개 패듯 패게 놓아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몸에 딱 맞는 좁은 우리에 한 쌍을 넣어놓고 거적까지 뒤집어 씌워놓아 조그만 구멍으로만 세상을 내다보게 하고, 결국 그 안에서 새끼를 낳게 하고는 그 아비부터 잡아먹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걸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러한 학대는 다 우리 사람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하는 것입니다.”

김씨의 낭독이 끝날 무렵, 무대 위 천막 스크린에는 개들을 식용으로 키우는 농장의 스틸사진들이 음악과 함께 이어졌다. 절망! 무력감! 답답함! 원망! 불안! 공포! 슬픔! 사진 속, 철장에 갇힌 누렁이들의 표정만큼 이런 감정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누가 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줄 권리가 있단 말인가. 사진들의 작품성이 높다보니 누렁이들의 그런 감정들이 더욱 강렬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아름품(KARA)의 전진경씨에 의하면 그 사진들은 ‘팀 옐로우독’이라는, 우리 나라의 개식용 현실을 영상으로 고발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올해 3월부터 6월 말까지 수도권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것이라 한다.

▲ 퍼포먼스에서 상영된 스틸사진 중 '공포에 질려 시선을 회피하는 누렁이'
ⓒ 팀 옐로우독
이제 명징하게 울리는 쇳소리가 들리면서 웃는돌무용단의 수석무용수인 여윤정씨가 작은 사발을 소중하게 들고 조심조심 무대 위로 올랐다. 그녀는 구도자와도 같이 누렁이들의 혼을 달래는 듯한 조용한 몸짓의 독무를 펼치다가, 슬픈 현실을 정화하려는 듯 사발에 담긴 물을 손으로 떠서 무대 아래로 조금씩 뿌렸다.

▲ 누렁이 사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웃는돌무용단의 여윤정씨
ⓒ 가림토

▲ 웃는돌무용단의 여윤정씨
ⓒ 가림토
▲ 웃는돌무용단의 여윤정씨
ⓒ 가림토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간 여씨는 굵은 동아줄 가닥을 잡고 올라왔고, 배경화면에는 “마지막 산책”이라는 동영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지막 산책”은 ‘팀 옐로우독’이 제작하여 아름품(KARA)이 함께 배포한 영상으로, 풍산개와 누렁이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걸어(산책) 들어가 동아줄에 목 매달려 생을 마감하는 장면들이 참혹하지만 감성적으로 표현된 영상이었다. 긴장감 속에 충격적이고도 슬픈 영상을 관객과 함께 감상한 무용단과 관객 속에 있던 아름품의 회원들은 관객들이 동아줄을 함께 잡게 하며 둥근 원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여씨가 이끄는 대로 관객들도 하나가 되어, 동아줄에 매달리는 누렁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껴보고 그들의 혼을 달래고 풀어주기 위한 동작들을 하였다. 북 장단과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달린 오색천이 분위기를 북돋워 주었다. 수십 미터의 동아줄에는 함께 한 사람 수만큼의 둥근 고리들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다 함께 그 고리들을 힘차게 잡아당겨 풀어버리고, 올가미를 끊은 그 기쁜 마음을 담아 모두 하늘을 향해 ‘아!’ 하고 외쳐댔다.

▲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누렁이
ⓒ 팀 옐로우독

▲ 다 함께 동아줄의 올가미들을 푸는 순간
ⓒ 아름품

▲ 올가미를 끊은 기쁜 마음을 담아
ⓒ 가림토
“맛있기 때문에, 또는 건강에 좋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거리낌 없이 소와 돼지와 닭을 먹습니다. 물론 일부는 개를 먹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또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식탁에서는 날마다 생명소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 어떤 방법으로 죽어 가는지, 오늘 우리는 개들에 대한 참혹한 영상들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혀끝의 미각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영혼의 미각을 일깨웁시다. 그것은 인간과 더불어 지구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좀 더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묵념을 하는 사이에 여씨는 마무리 멘트를 하였는데, 눈을 감은 채 끄덕끄덕하는 사람, 감은 눈 사이로 이슬이 맺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홍신자님과 여윤정님은 아름품에서 준비한 영상들을 여러 번 보며 구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내면으로 정말로 개들의 고통이 전달되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올 때까지 고민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진심으로 타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표출이 되어 나올 때까지 두 분이 함께 의논했다는군요.”

아름품(KARA)의 대표인 강은엽 교수(조각가, 계원조형예술대학의 전 부학장)는 이렇게 전한다. 준비된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에서 ‘걷고 싶은 거리’의 진정한 주인인 젊은이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진지하게 동참하고 묵념을 하였다. 관객으로 퍼포먼스에 함께 참여한 김명집씨는 “인간의 식탐 때문에 희생된 동물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 있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관객으로 동참한 박진아씨 역시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그리고 뜨끔했어요. 고기를 즐겨 먹어온 저 자신이…”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기자는 적어도 그 퍼포먼스가 끝난 자리에서는 ‘전통인데 먹으면 좀 어때’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 동영상 "마지막 산책" 중에 있는 누렁이 모자 사진
ⓒ 팀 옐로우독
아름품(KARA) 회원 김효진씨는 “오늘의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는 처음으로 솔직하고 공격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리의 뜻과 마음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공감한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활동성이 강한 개들을 평생 가두고 잡아먹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까지 잡아먹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기자는 퍼포먼스가 끝난 후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에 늘어선 식당들을 둘러보았지만 고기집 아닌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마포구는 과거 ‘분식 골목’으로 유명하던 길을 넓혀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했지만, 오늘날 그 거리는 고기 굽는 역한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참가자는 누구?

아름품(KARA ;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돼지 생매장에 대한 1인 시위, 무분별한 동물실험이나 복제 반대 등의 동물학대 방지운동, 개식용금지 운동, 채식 권장 등 여러 캠페인과 동물보호법의 올바른 개정 등 동물보호, 생명존중을 위해 노력하는 동물보호단체. withanimal.net

홍신자

세계적인 전위무용가이자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의 하나로, <자유를 위한 변명> 등 다수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구도의 춤꾼’이라 불리는 홍신자씨는 현재 안성 죽산에 터를 잡고 공연 및 명상 워크숍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죽산국제예술제를 11년째 개최해 오고 있다.

웃는돌무용단

1981년에 뉴욕에서 창단되어, 예술, 자연, 인간의 조화를 모토로, 홍신자씨의 예술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27일의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도 ‘예술, 자연, 인간의 조화’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펼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05

새로운 시도와 자유로운 실험이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아시아 독립예술축제로, 올해로 8회째를 맞아 홍대 일원의 공연장, 전시장 및 프린지스트리트(걷고싶은거리)에서 8월 12일부터 28일까지 펼쳐졌다. 프린지(Fringe)의 사전적 의미는 변방 혹은 주변부를 뜻하지만, 문화적 의미로서 프린지란 미래지향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축제공동체를 뜻한다. seoulfringe.net / 유창복

덧붙이는 글 | 유창복 기자는 마포구의 성미산공동체 마을에 9년째 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안교육과 대안문화를 일궈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의 교감 및 감정평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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