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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얀 집에 고추장 삼겹살이 가당키나 한 어울림인가?
저 하얀 집에 고추장 삼겹살이 가당키나 한 어울림인가? ⓒ 이승열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에서 마석 넘어가는 고개 못 미쳐, 나무를 툭 툭 분질러 기둥이라 우기고 기와를 척 얹어 놓은 정갈한 절 묘적사 입구로 향한다. 차창으로 스치는 간판들을 유심히 보며 강렬히 필이 꽂힐 집을 열심히 물색한다.

'아르페지오, 고추장 삼겹살', 나 같은 초짜가 봐도 이건 아니다. 아니 '아르페지오'란 간판에 고추장을 잔뜩 뒤집어 쓴 삼겹살이 어울리기나 하나. 개울 건너 숲 속에 그림 같은 하얀 벽을 자랑하는 우아한 집. 유행처럼 번진 서울 근교의 전형적인 카페가 영업이 안되니까 얼렁뚱땅 탈바꿈한 전형적이 모습이다. 이름과 메뉴의 부조화를 들며 여럿이 반대하나 때론 모험도 필요하다는 고수의 말씀!

오래된 영화의 스틸사진으로 장식된 벽면, 상큼하고 시원한 좌석 배치, 온통 건물을 감싸고 있는 초록의 싱그러움,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단아함이 돋보인다. 우선 시원해서 살 것 같다.

하얀 창호지 위에 빨간 삼겹살, 노란 콩나물. 우선 색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하얀 창호지 위에 빨간 삼겹살, 노란 콩나물. 우선 색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 이승열

결론은 예술이었다. 삼겹살도 이토록 우아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삼겹살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프로정신, 무한한 창조력에 경의를 표한다. 연기 자욱히 피우며 침침한 불빛 아래 지글지글 기름이 흐르는 삼겹살이 아니다. 아주 간단하다.

팬 위에 깨끗한 창호지를 깔고 네 변에 빨갛게 화장한 삼겹살로 네모를 만든다. 삼겹살 네모 안에 싱싱하게 양념한 콩나물을 놓은 후 불에 올려 익히기만 하면 된다.

팬 위에 깐 창호지가 삼겹살 기름을 적당히 흡수하고 콩나물이 알맞게 익으면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일반 삼겹살을 먹을 때처럼 상추나 깻잎에 싸먹는 것이 아니다. 맛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창호지는 기름을 빨아 들이고, 삼겹살과 콩나물이 어울어지기 시작하고.
창호지는 기름을 빨아 들이고, 삼겹살과 콩나물이 어울어지기 시작하고. ⓒ 이승열

맛의 포인트는 직접 집에서 담근 깻잎 장아찌들. 양념, 된장, 소금 중에 식성껏 선택하면 끝.
맛의 포인트는 직접 집에서 담근 깻잎 장아찌들. 양념, 된장, 소금 중에 식성껏 선택하면 끝. ⓒ 이승열

사각으로 자른 생 김 위에 우선 삭힌 깻잎이나 무우 쌈을 얹는다(깻잎은 된장에 박은 것, 소금에 삭힌 것, 그냥 양념한 것 세 종류가 있는데 입맛껏 선택하면 된다). 그 위에 비로소 빨간 삼겹살, 삼겹살과 함께 익힌 콩나물, 채친 파, 초절임 마늘을 얹고 쌈을 싼 후 아~~하고 입을 맘껏 벌리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색다른 삼겹살의 맛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양은 주전자에 든 뽀얀 막걸리를 마실 겨를이 없다. 삼겹살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와인 삼겹살, 녹차 삼겹살 온갖 삼겹살을 다 섭렵했어도 이처럼 우아한 삼겹살은 처음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주인 아주머니가 생각해 낸 것이라 한다.

양은 주전자, 뽀얀 막걸리까지 보태졌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양은 주전자, 뽀얀 막걸리까지 보태졌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 이승열

이제 주위가 조금씩 보인다. 기름을 먹은 창호지의 무늬가 <와호장룡>의 무당파 태극무늬 같다. 문득 '아르페지오'의 뜻이 궁금해 물으니 기타를 뜯듯이 치는 주법을 말한단다. 우리는 '아르페지오'의 뜻을 하나 더 만든다. 이태리어 '아르페지오'는 음악용어, 한국어 '아르페지오'는 빨간 삼겹살을 김과 삭힌 깻잎에 싸서 먹는다는 뜻….

덧붙이는 글 | 남양주시 와부읍(덕소) 정갈한 절 묘적사 입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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