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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끝내주는’ 공연이었다. 1시간 20분의 열기는 공연을 보고 나온 뒤에도 좀처럼 식지 않고 가슴을 뛰게 했다. 공연을 보고 나온 다른 사람들 역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역시 대단하더라!” “이야, 진짜 재밌지 않냐?” 서로 묻느라 야단이었다.

얼마 전에 끝난 에딘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티켓 판매 1위였다는 우리 뮤지컬 <점프>를 보고 왔다. 해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인지, 일요일(9월 4일)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이었고 공연을 하는 정동 세실극장은 가족과 연인, 친구들끼리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한국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예매를 서두른 나는, 운 좋게도 맨 앞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고 1시간 20분 동안 배우들의 숨소리, 땀방울을 바로 옆에서 느끼면서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예매를 한 뒤, 2003년 7월에 한국에서 초연된 이 공연을 먼저 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일단 봐! 보면 알아!” 였다.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이 이렇게 꼭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진짜다, 일단 보면 안다. 내가 왜 이렇게 즐거운 흥분 상태인지를.

ⓒ (주)예감
내용은 간단하다. 가훈이 ‘평범하게 살자!’인, 전혀 평범하지 않은 한 가족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묶어서 보여 주는 퍼포먼스다. 태껸, 취권, 태권도, 합기도 따위 온갖 무술의 고수인 가족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무예를 보여 주는데, 우리 음악을 적절히 녹여 넣은 편곡과 배우들의 대단한 무공이 놀라운 조화를 보여 주고 있다.

해외 공연을 목표로 한 때문인지 대사가 별로 없었는데, 절제된 대사로도 이야기 얼개를 따라가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았고, 덕분에 배우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 역시 그래서 아무 문제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오늘 공연에도 외국인들이 꽤 여럿 보였는데, 미국에서 왔다는 한 남자는 공연 도중에 무대에 불려 올라가 공연에 함께 참가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내가 가장 즐겁게 본 장면은 에딘버러에서 공연을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대목, 바로 2명의 도둑이 이 집에 도둑질을 하겠다고 덤벼든 뒤부터 시작되는 온갖 슬랩스틱 코미디들이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무대 위에서 멋진 동작들을 보여 주는 배우들의 굉장한 연기를 보는 동안 내내 끝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처럼 쏟아지는 땀에 완전히 젖어 버린 무대복을 몇 번이나 갈아입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정말 굉장했다.

초절정 고수 할아버지, 공처가 아버지, 섹시하고 싶은 어머니, 술 취해 말썽 피는 막무가내 삼촌, 내숭쟁이 딸, 다중인격 사위 후보, 실컷 당하기만 하는 도둑들 모두 캐릭터가 잘 살아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중에서도 삼촌 역을 맡은 이재훈의 귀여운 술주정 취권은 백미였다. 아, 그리고 공연을 안내하는 역을 맡았던 허리 굽은 할아버지가 공연 막바지쯤에 보여 주는 놀라운 변신도 대단하다.

ⓒ (주)예감
공연을 보는 동안, ‘저 사람들, 진짜 배우 맞아?’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그냥 배우들이라고 하기엔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처음 기획할 단계에는 무술 유단자들을 데리고 공연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도저히 연기가 나오질 않아서 결국은 연극 배우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끝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고, 셀 수 없는 부상을 입으면서 지금의 공연 팀이 꾸려진 것이라 했다. 연습하면서 엄청나게들 고생했을 배우들에게 무한한 박수를! 한국에서 초연한 뒤에 몇 번이나 대본을 수정한 것은 물론이다. ‘난타’를 연출했던 최철기의 기획, ‘초록물고기’의 음악을 맡았던 음악 감독 이동준, 기계체조 국가대표의 지도까지, 한 마디로 공연계의 새로운 드림팀이랄 수 있겠다.

고정된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고,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이 공연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나는 굉장히 궁금하다.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이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은 새로운 얼굴과 이야기로 바뀌어갈 거란 사실이 한 번 공연을 본 손님도 계속 공연장으로 불러모을 것이 분명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다리만 달달 떨면서 게임 한다니까 왜 데려왔냐고 투덜대고 찡찡대며 전혀 공연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던 중학생 녀석도 신나게 공연을 본 뒤에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엄마, 연극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백문이불여일견이라니깐.

덧붙이는 글 | *공연은 12월 31일까지, 모든 좌석은 4만 원이다. 
평일 저녁 8시, 토요일 3시, 7시, 일요일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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