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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의 금시장 'Gold Souk'. 시장을 아랍어로 '속'(souk)이라고 부른다.
ⓒ 김정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금시장(Gold Souk)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400여개의 도매상과 270여개의 소매상이 모여 있는 이곳에 오면 왜 두바이를 황금의 도시라고도 부르는지 이해가 갈만큼 머리 위에서 발 끝까지 금으로 치렁치렁 치장한 화려한 가게의 쇼윈도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쇼윈도 안에는 도대체 저 목걸이와 팔찌의 수요자는 누구일까 의문이 갈 만큼 크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신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렸다.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손목과 손을 육중한 크기의 팔찌와 반지 등으로 번쩍번쩍 장식한 두바이의 여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박한 차도르와 화려한 금장신구. 얼핏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두바이 여인들은 수수하다 싶은 복장 차도르 안에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은 금장신구 두세 개씩을 과하다 싶을 만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금시장 쇼윈도에 진열된 화려한 세공의 장신구들
ⓒ 김정은
이들은 왜 모든 것을 가리는 차도르 속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번쩍번쩍 빛나는 커다란 금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걸까? 혹 그들은 아직도 금 장신구 착용을 부와 신분의 표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모든 것이 가려진 차도르 속에서라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여인들의 마음의 발로는 아닐까?

▲ 두바이의 수상택시 아브라, 최근 두바이 관광명물로 거듭 나고 있다.
ⓒ 김정은
금 시장을 나와 두바이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그네들의 수상 택시인 '아브라'(abra)를 이용했다. 아브라란 특이한 이름의 배는 동력을 이용하는 목선인데 이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노무자들이다. 오일달러 덕분에 대부분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는 현지인들은 이 아브라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두바이는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오직 두 가지 계층, 오일달러 덕에 풍족하게 사는 현지인과 월 20만원 정도의 박한 노임으로 이 나라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외국인 노무자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무자의 주요 교통수단이던 아브라는, 최근 두바이의 풍물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게 되면서 졸지에 천덕꾸러기 교통수단에서 관광명물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 난공불락의 요새 알 파히디를 개조한 두바이 박물관 전경
ⓒ 김정은
1971년 급조된 나라인데 무슨 역사라는 것이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를 가지며 들어간 두바이 박물관은 원래 1799년에 이웃 종족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난공불락의 요새 '알 파히디 요새'(Al Fahidi Fort)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두바이에서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입구에 버티고 있는 대포와 난공불락의 망루 성체가 이 이곳이 요새였다는 흔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두바이 박물관에는 두바이의 역사보다는 주로 석유가 개발되기 이전의 사회상과 일상모습, 예를 들면 사막생활 내지는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모습, 장사하는 모습 등의 일상적인 아랍인들의 생활모습을 마네킹과 음향, 조명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생동감있게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해 놓았다.

▲ 알구사이스 무덤에서 발굴했다는 3000년 전의 미라
ⓒ 김정은
박물관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3000년 전 알구사이스 무덤에서 발굴했다는 미라였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이 생생한 미라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효과적인 전시도 외국의 디스플레이 전문가를 불러와서 만들 수 있었던 오일달러 덕분이지만 솔직히 별로 볼 것도 없는 것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전시해 놓은 모습을 보니, 크기만 하고 별 감흥이 없는 우리나라의 독립전시관이 불현듯 떠올라 속이 상했다. 물론 독립기념관도 나름대로 마네킹과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 시청각적으로 최신기법을 자랑하지만 그 최신기법이 전시물 하나하나와 어울리지 않고 관객들의 이해를 돕지 못하는 형식적인 것이라면 솔직히 그 전시는 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시청각이 살아 있는 전시란 그 나라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전시물만 보고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12시간 정도의 두바이 시내를 겉핥기 하고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으니 두바이의 변화를 함께 이끌어온 현 아랍에밀리트의 국방장관이자 두바이의 왕세자인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가 했다는 야심찬 말이 생각났다.

그는 "몇 년 있으면 바닥날 석유만 믿고 있을 수 없다. 석유 이외의 것에서 돈을 벌어라. 그것도 신속하고 획기적으로 벌어야 한다"고 선언했던 자신의 포부를 넘어서 이제 "두바이가 세계의 자본가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자본가들이 두바이를 필요로 하도록 만들겠다"는 야심을 실천하는 중이다. 과연 그의 야심대로 두바이는 변화할 수 있을까? 중동의 허브, 금융 중심지를 꿈꾸는 두바이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덧붙이는 글 | 터키 7박8일 여행기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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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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