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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밴드 노브레인(No-brain)이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흥겨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펑크밴드 노브레인(No-brain)이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흥겨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놀이터. 놀이하는 곳이다. 그리고 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젯 밤 서울 홍대 정문 맞은편 놀이터에는 전태일과 함께 놀아보자는 음악 행사가 열렸다. 매달 한 번씩 홍대앞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음악인들, 라이브 클럽이 만들어가는 '사운드 데이' 행사에 전태일이 등장한 것이다. 이번이 열여덟번째라고 한다.

이번 행사 포스터에는 전태일 사진이 등장하고, '바보, 전태일과 함께 노래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전태일과 함께 놀아보자'는 발상에 어떤 사람들은 '전태일 열사가 너희들 놀이개감이냐', '전태일을 욕보이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혹자는 그 이유가 '대학가 환락의 놀이에서 기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것이 환락의 놀이는 아닐진대, 대학가 환락의 놀이라니…. 잠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가 단란 주점에서 전태일 이름을 내걸고 알몸쇼를 하며 인디 밴드가 그 옆에서 풍악을 울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뿔싸, 많은 사람들(특히 성인 남성)에게 '밴드'란 유흥업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두들 눈이 풀리고 폭탄주가 사방 팔방에 날아다닐 때 피에로의 쓴 웃음을 지으며 옆에 서 있는 그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래도 최근 그 유명한 성기 노출 사건을 떠올리면 조금 이해가 간다. 소위 '초유의 방송사고'라는 그 사건으로 서울 홍대 앞은 순식간에 전국민의 곱지 않는 눈길이 쏠렸던 곳이다. 안타깝지만, 그 후 홍대 앞은 황색 저널리즘의 시각으로 '잠입 르뽀' 를 써내려가야 할 은밀한 퇴폐의 공간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 속에 놓인 홍대앞, 인디음악 여기에 전태일이 등장한다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전태일 사당'이나 '성전'을 지어 놓고 경배해야만 그 이름이 빛을 내는 건 아니다.

퇴폐와 환락의 공간으로 찍혀버린 어느 동네 놀이터에서 사람들이 전태일과 노는 게 가당치도 않는 바보 짓거리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전태일을 장난감으로 다루고, 욕보이게 하는 엄청난 테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누가 전태일을 욕보이려 하겠는가.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힙합 트리오 디에스 커넥션(DS Connexion)이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힙합 트리오 디에스 커넥션(DS Connexion)이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어젯 밤 서울의 한 놀이터에서 전태일과 함께 놀았던 사람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맞은 비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놀았다. 나 역시 홍대 정문 앞 맞은편 놀이터에 차려진 전태일과 함께 노는 놀이마당에 들러 전태일 관련 영상을 보고 록, 힙합 그룹의 음악도 들으며 즐겁게 놀았다.

놀이터 공연에 참여한 음악인들은 무료 공연에 기꺼이 응했고, 이들과 재미나게 놀았던 사람들은 전태일 거리 조성 기금 모금함에 주저하지 않고 주머니를 열었다. 나는 모금함 옆에 놓인 <전태일 평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학 초년 시절 나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가졌던, 깊고 깊은 인상을 주었던 책, 위인전에 등장하는 어떤 위인의 이야기보다 강렬한 이야기가 담겨 있던 책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함께 했다.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 10대 후반부터 20대 시절의 이야기. 당신께서 해주신 이야기라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고 싶은데도 차비를 아끼려고 1시간씩 걸어 다녔다는 것, 아침이면 퉁퉁 부은 발을 억지로 신발에 구겨 넣고 또다시 일터로 걸어 가야 했다는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내 어머니는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청계천 피복 노동자 생활을 했다. 어머니의 재봉틀, 바느질 솜씨가 가히 최고수급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 있던 것이다.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꺼내지 않으시기에 나도 그 때 당신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애써 묻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다음 날 정신을 차리면, "내가 너만할 땐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말씀을 했던 것만 기억난다. 수준급 실력이지만 바느질도 무척이나 싫어했고, 집에 있던 재봉틀도 언젠가 사라졌다.

나는 어제 밤 서울 홍대 앞 놀이터에서 전태일과 밴드와 놀이터의 놀이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놀았다. 청계천에 생기게 될 전태일 거리로 가는 길에 벌어진 신명나는 한판 난장이고 굿판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아셨다면, 애들처럼 철없이 그런 데 가서 놀고 있냐고 혀를 끌끌 찼을 것 같다. 한 후배에게 빌려주고 아직 받지 못한 <전태일 평전>. 다시 한권 사야겠다. 청계천에 전태일 거리가 생길 즈음, 아마도 나의 어머니에게 선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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