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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원에서 가장 중심지이면서 중심상업지역에 저의 사무실과 마트가 있습니다. 10층 이상 되는 빌딩들이 가득 들어 찬 이곳에서 창원대로 쪽을 향해서 조금 내려오면 아직 창원시 소유로 된 빈 땅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빈터에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여기 저기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참깨, 고추, 콩, 들깨, 박, 호박 등 갖가지 채소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텃밭을 보면 괜히 제 마음도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길에 그 텃밭 옆을 지나는데, 요즘 퇴근길은 무척 즐겁기까지 합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텃밭을 지날 때면 유난히 청아한 목소리로 뽐을 내는 풀벌레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합창을 감상하는 행복한 기분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들어 하루가 다르게 텃밭의 풍경이 변화하고 있음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땀 흘려가면서 텃밭을 가꾼 사람들, 이제 곧 추수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처럼, 저 또한 뿌듯한 마음으로 거두어 드릴만한 수확이 과연 있는지, 이제까지 제가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 순박한 미소를 머금고 피어난 박꽃
ⓒ 한명라
아침 출근길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피어 있는 박꽃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찾아 들기도 했습니다.

▲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했을까요? 무척 아름다운 꽃입니다.
ⓒ 한명라

▲ 호박꽃 속에는 등불 하나가 있습니다. 보이죠? 환하게 불을 켠 꼬마 등불이...
ⓒ 한명라
또 황금빛 화려한 웃음을 이제 막 터트리려고 하는 호박꽃을 보는 순간, 어린시절 동생과 함께 우리 집 뒤안에서 빠꼼살이(소꿉놀이)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탱자나무 울타리를 타고 올라 새순을 쭉쭉 뻗쳐가던 호박넝쿨에는 유난히 노란 호박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곤 했습니다. 깨어진 사기그릇 조각이나 조개껍데기를 주워 모아서 동생과 함께 빠꼼살이를 할 때, 엄마 몰래 호박꽃을 따서 호박꽃 속에 들어 있는 꽃대를 꺼내어 작고 예쁜 등불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 키 작은 노란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한명라
어제(14일) 오후에는 우체국에 볼 일이 있습니다. 가끔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지만, 가을을 느껴보고자 걸어서 텃밭이 있는 곳을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길옆에는 울긋불긋 화려한 꽃들이 하나 가득 피어 있어서, 그 꽃을 보는 순간, 마치 제가 사춘기시절의 여학생으로 되돌아간 듯했습니다.

ⓒ 한명라

ⓒ 한명라

▲ 짙은 주황색 꽃과 노란색 꽃이 조화롭습니다.
ⓒ 한명라
코스모스처럼 생겼는데 코스모스는 분명 아니고, 제가 처음 보는 화려한 꽃들이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카메라에 그 꽃들을 부지런히 담다보니, 까맣고 단단하게 꽃씨가 여물어 있었습니다.

▲ 벌써 까맣게 씨앗이 여물었습니다.
ⓒ 한명라
순간 저는 그 씨앗을 받아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씨앗들을 시댁의 대문 옆에 한 무더기 심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씨앗을 뿌려 많은 꽃들이 피어난다면, 그 꽃을 보는 많은 사람들도 저처럼 즐거운 탄성을 지를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 꽃씨를 받는 할머니
ⓒ 한명라
부지런히 꽃씨를 받고 있는 저에게 길을 가던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코스모스인가 했더니 코스모스가 아니네. 꽃이 화사하고 참 예쁘다. 나도 씨 좀 받아가야겠다" 하십니다.

꽃씨를 담을 봉지가 없어서 개춤(호주머니)에 넣어야겠다는 할머니께 제가 가방에서 편지봉투 한 장을 꺼내 드렸더니, "고맙소" 하십니다.

▲ 이 많은 꽃씨들 속에는 알록 달록 예쁜 꽃들이 훗날을 위해 잠을 자고 있습니다.
ⓒ 한명라
사무실에 돌아와서 책상 위에 받아 온 꽃씨를 꺼내 보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꽃씨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 가만 숨을 죽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끔 빗방울이 뿌려지는 흐린 날씨였지만 꽃을 보는 순간, 그리고 꽃씨를 받으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오늘 이 꽃을 보는 분들에게도 그런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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