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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처럼 생긴 고마리 초록 잎에서 잠시 쉬는 가을의 전령 고추잠자리
삽처럼 생긴 고마리 초록 잎에서 잠시 쉬는 가을의 전령 고추잠자리 ⓒ 이승열

투명한 흰별이 흩어진 녹색 대지
투명한 흰별이 흩어진 녹색 대지 ⓒ 이승열

ⓒ 이승열

몇 해 전 우리 몸 어딘가에 좋다하여 초토화 될 뻔했다가 근거 없는 낭설임이 밝혀지면서 간신히 멸종의 위기를 면한 '쇠뜨기'란 풀이 있다. 논둑이고 밭이고 틈이 있는 곳이면 지치지도 않고 비집고 튀어나와 김매는 사람에게 온갖 미움을 받는 풀이다. 이름을 몰랐던 어린 시절 논둑에 많아 내가 잘 가지고 놀던 풀이다. 톡. 톡. 별로 힘을 주지 않고 따도 한마디씩 똑. 똑. 떨어지는 줄기가 여간 예쁘지 않았다.

봄철 고개를 땅속 깊숙이 처박고 있다가 김을 매는 아낙이 지나가면 땅 위로 살짝 고개를 내밀며 ' 얘들아, 빨리나와. 김매는 년 벌써 저만큼 지나갔어'라고 할 만큼 극악하게 순식간에 땅을 덮는 풀이다.

아무리 꼼꼼히 김을 매도 고랑 끝에 와서 되돌아보면 벌써 새싹이 땅을 덮기 시작한다. 몸에 좋은 것은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대한민국에서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났으니 조금만 더 소문이 지속됐으면 멸종은 시간문제였다. 초봄 집중적으로 뽑지 않으면 농사고 꽃 가꾸기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뱀 대가리처럼 고개를 빳빳이 든 갈색의 포자 또한 생긴 모양이 얼마나 독한지….

하늘을 향해 활짝 핀 별꽃, 고마리.
하늘을 향해 활짝 핀 별꽃, 고마리. ⓒ 이승열
봄철 쇠뜨기만큼 또 미움을 받는 풀이 '고마리'라는 예쁜 이름의 풀이다. 시궁창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덮은 모양새가 너무 지긋지긋해 '이제 그만 됐다! 고만 가 보거라'했다 하여 '고마리'로 이름 지어진 잡초이다. 작은 도랑이든 개울이든 시궁창이든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 잘 자라는 잡초이다. 여름이 되면 삽처럼 생긴 잎이 무성해지며 온통 물가를 고마리 천지로 만들어 버린다.

봄이 되면 꼭 하루는 짬을 내어 양평 양수리 철길 지나 목왕리에 있는 산귀래 식물원에 풀을 뽑으러 간다. 이 땅의 산야에 흔하디 흔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야생화를 보존하기 위해 수필가 박주수님이 운영하는 식물원이다. 생명력 강한 귀화식물이 모든 땅을 장악해버려 토종의 야생화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으면 이젠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슬픈 현실이다.

봄철 박 선생을 가장 고달프게 하는 잡초 두 가지가 바로 쇠뜨기와 고마리이다. 이른 봄, 연하고 어렸을 때 뽑아 버려야지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대책이 서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땅을 덮는다. 조금만 손을 보지 않으면 그동안의 애씀이 모두 도루아미타불이 되어버린다. 늘 농으로 '고마리가 어디에 엄청 효능이 있다'더라는 소문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난 봄 동생과 하루 종일 수선화 언덕의 국수나무와 고마리를 얼마나 많이 뽑았는지 앞으로 국수나무에게 미안해 국수를 먹지 못할 만큼 한 종족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이 땅 모든 곳에는 아니지만 적어도 산귀래 식물원에서는… 좁쌀 같은 예쁜 꽃을 피우며 좋은 향기를 내는 국수나무는 왜 아무 계곡에서나 자라지 이곳 산귀래 식물원에서 자라 이토록 수난을 당하는지. 인간이고 식물이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지 자리를 벗어나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

다섯 또는 더 많은 별들이 모여 별자리를 만든다.
다섯 또는 더 많은 별들이 모여 별자리를 만든다. ⓒ 이승열

흰별, 분홍별, 점박이별이 흩어진 고마리꽃 군락
흰별, 분홍별, 점박이별이 흩어진 고마리꽃 군락 ⓒ 이승열

이렇게 지천으로 온 산하에 깔린 '고마리'니 굳이 이름을 알 필요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여다보지도 않게 된다. 뻐꾹나리, 금강초롱, 용담, 동자꽃과는 처음부터 비교되지 않는 핏줄, 다른 운명으로 태어난 셈이다. 특히 온통 시궁창 냄새뿐인 도시의 물가에서 자라고 있으니 고마리의 이미지가 지저분한 곳에서 자라는 흔한 잡초쯤으로 굳어졌다. 가을 햇살이 온 들녘의 황금의 색으로 수놓고 있던 추석 연휴의 첫날. 양평 들녘 어디선가 고마리 군락을 만났다.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진 흰 꽃에 점점이 박힌 분홍, 그리고 더 진한 색 분홍만의 투명한 고마리꽃이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왕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달밤의 메밀꽃 풍경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장관이다. 여름철 무성히 잎만 피우다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 흰색, 분홍끝 흰색, 분홍색의 별들이 녹색의 대지 위에 흩뿌려져 가을 들녘을 밝히고 있다.

골짜기를 지나 언덕 위에도 가득 뿌려진 고마리 별꽃
골짜기를 지나 언덕 위에도 가득 뿌려진 고마리 별꽃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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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 그것도 주로 지저분한 시궁창에서 자라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지만 사실 고마리만큼 고마운 풀도 없다. 시궁창의 더러운 물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해 물의 오염정도를 측정할 때 지표로 삼는 풀이기도 하다. 시궁창 물을 1급수로 정화시킨 경우도 학계에 보고 되고 있다고 한다.

시궁창에서 자란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시궁창을 만든 것은 인간이다. 고마리 말고 누가 시궁창 풍경을 녹색으로 바꾸며, 시궁창의 물을 정화시킬 것인가. 고마리는 또한 중금속을 흡수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한다.

ⓒ 이승열
보릿고개가 호랑이보다 무서웠고 궁핍했던 시절, 이른 봄 어린순을 데쳐 나물로 먹기도 했으나 매운맛 때문에 잘 우려야 한다. 독성이 있는 나물조차 식량으로 삼을 만큼 사는 것이 고달팠던 옛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것을 이용할 줄 하는 지혜를 가졌었다. 고마리는 지혈작용이 뛰어나 베인 상처에 바르면 그 효능이 뛰어나다 한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잡초 또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없다. 인간의 편견에 의해 그 자리 매김이 정해질 뿐이다. 나도 당신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이 세상에 골고루 퍼진 소중한 잡초들이다. 초가을 햇살 좋은 날, 벼이삭이 익는 황금 들녘에 나가거든 초록의 잎사귀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고마리꽃과 눈길을 맞춰보자. 그리고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자.

덧붙이는 글 | 꽃이름은 아무리 길어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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