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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티 해안의 아늑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1시간 정도 달리니, 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Wellington)이다.

웰링턴의 입지는 뉴질랜드 북섬만을 놓고 보면 남쪽 끝이겠지만 그 아래쪽 남섬까지 고려에 넣는다면 뉴질랜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이 1865년 오클랜드에서 웰링턴으로 수도를 옮기도록 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수도임에도 만년 제2도시인 웰링턴

한 나라의 수도는 대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 있고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인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수도 워싱턴보다 더 앞서 있고 더 규모가 큰 대도시를 여럿 거느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처럼 예외도 있는 법인데, 뉴질랜드가 바로 그렇다.

경제규모의 지표가 되는 인구수로 따질 때, 웰링턴의 인구수는 오클랜드의 3분의 1 수준인 약 40만명에 불과하다.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이긴 해도 오클랜드라는 거대 도시의 그늘에 가려 있는 만년 제2도시인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수도는 그 규모나 순위가 어떻든 간에 '정치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항상 주목을 받게 되고 이것은 어느 나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두번째 방문이 되는 이번 웰링턴 여행에서 우리는 바로 그 정치의 중심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것이 웰링턴을 뉴질랜드의 수도답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표지일 테니까.

▲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벌집 모양의 행정부 건물
ⓒ 정철용
출근 시간이 지나 비교적 한가한 웰링턴 시내의 한 도로변에 차를 주차시키고 우리는 국회의사당 쪽으로 걸어갔다. 국회의사당은 벌집 모양의 행정부 건물 ―그래서 '벌집(Beehive)'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과 동화 속의 성처럼 예쁜 국회도서관 건물을 양옆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국회의사당에 들어서다

육중한 석조건물인 국회의사당은 멀리서 보니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보였다. 우리는 정문을 통과하여 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갔다. 국회의사당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도 아무도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일 텐데 내게는 의외로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아니 감히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회의사당 건물에 이렇게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다니! 하긴 이 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이용하는 시위 현장이 바로 이곳 국회의사당 앞 광장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우리는 건물 1층 로비에 있는 국회의사당 투어 데스크로 가서 11시에 있는 다음 투어의 대기자 명단에 우리 이름을 올렸다. 건물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우리는 카메라와 가방을 데스크에 맡기고 로비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건장한 몸집의 투어 가이드가 나타나 인사를 했고, 국회의사당의 역사를 담은 12분짜리 영상물을 관람한 후에 국회의사당 투어가 시작되었다. 약 1시간 동안 그는 40여명의 관광객들을 이끌고 국회의사당의 이곳저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건물 내 각 공간의 역사와 용도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국회의 구성과 기능하는 방식도 자세히 설명해주어 무척이나 교육적이었다. 복도와 로비 공간 등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품ㆍ그림들과 설치 예술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밖에서 국회의사당을 보면서 미술관을 떠올렸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작품들 하나 하나마다 중요한 의미가 있어 국회의사당 안에 영구 전시를 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 동화 속의 성처럼 예쁜 국회도서관 건물
ⓒ 정철용
이처럼 여러가지 볼거리가 많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말굽 모양으로 국회의원들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본회의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침 회의가 없는 날이어서 우리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내부와 소박한 나무책상과 의자들이 참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고성과 설전이 오가는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오래된 대저택에 있음직한 넓은 서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실제로도 TV 뉴스에 자주 비치는 이곳 본회의장의 풍경은 이러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가끔씩 고성과 야유도 들려오지만 그래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에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반론할 것은 반론하는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이곳의 지배적인 풍경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진 피해 방지를 위하여 건물 지하에 설치한 방진(防振)시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웰링턴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진 단층에서 불과 400m 벗어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국회의사당과 국회도서관 건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두 건물의 기초를 조금씩 절단해 들어가 그 빈 자리를 충격 흡수력이 뛰어난 400여개의 고무 베어링으로 채워놓은 것이다.

지난 1992년에 시작되어 약 4년간 이루어진 이 보강작업으로 국회의사당과 국회도서관 건물은 진도 7.5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는 유연한 기초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내게는 이것이 단지 기술혁신의 모범 사례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운 유연성과 포용력을 갖추기 위하여 국회에서부터 몸소 실천해보인 노력으로 본다면 이는 지나친 비약일까.

정치를 가장 속된 직업 중의 하나로 여기고 정치인을 가장 믿지 못할 직업인들 중의 하나로 멸시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라면 깜빡 기가 죽는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의 직장인 국회의사당은 감히 함부로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성역으로 여긴다. 그러나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우리가 마주친 국회의사당은 전혀 달랐다.

정문은 경비하는 사람도 없이 활짝 열려 있었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햇빛을 즐기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고 출입문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막아서는 설치물도 전혀 없었다. 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바라본 웰링턴의 국회의사당은 행정부와 국회도서관 건물 가운데서 키를 낮추고 앉아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정오의 햇살이 지극히 '민주적'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 국회의사당은 행정부와 국회도서관 가운데서 키를 낮추고 앉아 있었다
ⓒ 정철용

웰링턴 국회의사당 투어 일반정보

o 개관시간
- 평일(월-금) : 첫 투어는 오전 10시, 마지막 투어는 오후 4시임.
- 토요일 및 공휴일 : 첫 투어는 오전 10시, 마지막 투어는 오후 3시임.
- 일요일 : 첫 투어는 정오(12시), 마지막 투어는 오후 3시임.

o 휴관일 : 크리스마스 연휴(12월 25일과 26일), 신년 연휴(1월 1일과 2일), 와이탕이 데이(2월 6일), 부활절 금요일

o 입장료 : 없음(무료)

o 기타 사항
- 투어를 원하는 관광객은 자신이 원하는 투어 시간 전에 국회의사당 1층 로비에 마련된 안내 데스크로 가서 신청하면 됨.
- 10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원할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을 해야 됨.
- 국회의사당 건물 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함. / 정철용


 

덧붙이는 글 | 지난해 4월 뉴질랜드 북섬 남서부 해안을 돌아본 여행기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웰링턴에서 마주친 성과 속(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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