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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전통의 토카프궁전과 유럽 지향의 돌마바흐체궁전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절대권력을 지닌 역대 술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예전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절대권력자 술탄들의 생활상을 엿보기 쉬운 곳은 뭐니뭐니해도 그들이 살던 궁전일 것이다.

이스탄불에는 술탄이 살던 궁전이지만 성향이 완전히 다른 궁전들이 존재한다. 바로 토카프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토카프궁전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전성기 술탄들의 투르크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나오는 곳이라면 돌마바흐체 궁전은 전성기가 지난 말기 술탄들의 유럽화 경향을 볼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혼, 말마라 해가 만나는 아야 소피아 뒤편의 전망 좋은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토카프 궁전은 1478년 술탄 메흐멧이 건축하여 1853년까지 22명의 술탄(왕)들이 실제로 살았던 궁전이다.

바티칸시국 두 배 규모의 토카프궁전

거의 5미터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궁전의 전체 면적은 약 21만평 정도로, 이 크기는 바티칸시국의 두 배이며 모나코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규모라니 머릿속으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토카프 궁전의 볼거리라면 바로 고유한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과 왕궁의 보물을 보는 즐거움이다. 이곳에 다양한 이슬람양식의 건축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역에 자주 발생하는 지진 때문이다. 지진이 나면 궁전 안의 건물들이 파괴되고, 파괴될 때마다 새롭게 복구하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자연스럽게 혼재되어 존재할 수 있었나 보다.

▲ 토카프궁전 제 4정원 내에 있는 할레의식을 하는 방 벽면을 장식한 호화로운 이즈닉 타일
ⓒ 김정은
특히 이 토카프 궁전은 오스만 투르크 전성기에 세워진 건축답게 유럽의 궁전들과는 다른 투르크다운 자부심이 곳곳에 넘쳐 흐른다. 마치 이동식 텐트를 세우듯 거대한 정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건물을 세우는 유목민적인 전통을 살린 건물 구조도 볼거리지만 세계 4대 음식으로 유명한 터키 요리가 시작된 궁전의 부엌,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접견실 '아르즈 오다스', 술탄의 가족들이 살던 구역인 하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소유했던 화려한 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파티흐 쿄슈크"(정복왕의 정자) 등의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하렘에 대한 오해와 진실

특히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장소일 뿐인 하렘을 보면서 늘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은 바로 하렘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은밀하고 음란한 느낌 내지는 호기심이었다. 실제 하렘이란 '종교적으로 금지된'이란 뜻의 아랍어 '하람'에서 기원된 단어로, 술탄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이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금지구역이다. 하렘의 총책임자는 왕후로, 하렘 내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술탄이라 해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할 만큼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의 여인들이 살고 있는 '외부인 금지구역'이란 상황 자체는 도리어 유럽지역 예술가들의 퇴폐적이고 비틀어진 상상력을 자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그들만의 퇴폐적인 상상을 담아낸 작품들의 이미지는 당연히 퇴폐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 번 철저하게 왜곡되어버린 이미지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백지에서 새로 출발하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토카프궁전에는 터키인 모두가 3년간 먹고 살 수 있는 보물이 있다

계속되는 발걸음으로 심신이 지칠 무렵 나타나는 '파티흐 쿄슈크(정복왕의 정자)'는 피곤했던 여행객의 몸과 마음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건물이다. 바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진귀한 보물을 모두 모아 놓은 곳으로, 이곳의 보물만으로 터키 국민 전체를 3년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우스개까지 유행할 정도로 건물 안에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부를 나타내는 정교하게 세공된 각종 보석들로 즐비하다.

하나 하나의 보석 크기와 세공 기술의 호화로움에 절로 감탄사가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술탄 아흐멧 1세가 페르시아 왕에세 선물로 주기 위해 만들었다가 페르시아 왕의 사망 소식으로 주지 못했다는 토카프의 단검과 86캐럿의 다이아몬드 주위에 49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일명 숟가락 다이아몬드, 6666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촛대, 페르시아에서 선물로 보내왔다는 2만 5000개의 진주로 장식한 황금옥좌들인데 이밖에도 세례요한의 뼈와 같은 종교적인 의미의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 토카프궁전 골든혼 테라스 에서 바라본 골든 혼 바다
ⓒ 김정은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보물을 보며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계속 보다보니 익숙해진 까닭인지 별다른 감흥없이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성격도 아닌데 왜 이리 번쩍번쩍하게 보이는 그네들의 보물 잔치에서 부자의 은밀하고 얄팍한 과시 욕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골든혼의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골든 혼 테라스'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니 어디선가 피곤에 지친 땀을 시원하게 닦아주는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머리카락을 간지럽힌다. 그토록 호시탐탐 노렸으나 철옹성이었던 콘스탄티노플 성벽 때문에 그 꿈을 접은 지 몇 차례, 1453년 결국 배를 바다가 아닌 산으로 이동시켜 취약 부분인 골든혼 쪽 성벽 공락에 성공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 정복의 꿈을 이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정복왕 술탄 메흐멧의 야망처럼 넓고 푸른 바다가 내 품으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마네킨 같은 돌마바흐체궁의 경비병

▲ 돌마바흐체궁전 정면
ⓒ 김정은
투르크 만세를 외치던 토카프 궁전을 떠나 또 다른 술탄의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에 다다르니 때마침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키는 경비병의 교대식이 열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마네킨으로 오해할 법하다. 한 치의 움직임도 없는 무표정한 모습이 인상적인 궁전 수비대의 모습을 뒤로 한 채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 보초병의 자세를 교정해주는 모습
ⓒ 김정은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토만 제국의 31대 술탄 압듈메지트의 명령에 의해 1839년 아르메니아 건축가인 카라바트 발얀이 짓기 시작해서 13년 후인 1856년에 완성시킨 궁전으로 최후 6명의 술탄과 칼리프 압듈메지트, 그리고 초대 터키 대통령인 케말 파샤가 사망 직전까지 거주한 곳이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의 버킹검 궁전을 모방해서 세워졌다는 이 궁전의 전체적인 느낌이라면 유럽에 대한 맹목적인 해바라기였다. 투르크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한 토카프 궁전과는 너무도 다른 유럽화 경향을 보며 오스만 투르크 왕조 몰락의 전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돌마바흐체 궁전을 건축 후 초래된 국가 재정의 파탄은 오스만 투르크 왕조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지나친 유럽 지향이 몰락의 원인일까

▲ 유럽풍의 느낌이 물씬 나는 돌마바흐체궁
ⓒ 김정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통 금으로 칠해진 화려한 내부 장식도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펫을 벗기면 금세 '삐거걱' 하는 오래된 나무소리가 들릴 법한 나무 복도와 계단이었다.

대리석이 보통 돌멩이처럼 흔하게 생산되는 터키에서 건축시 대리석이 아닌 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나무 대신 대리석을 사용하는 것과 그리 다를 바 없어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귀한 목재 기둥에 마블기법을 이용해 14톤의 금과 은으로 도배를 했으니 그 호화로움이 여행객의 눈을 즐겁게 만들 수밖에….

그러나 터키 국민은 무엇보다도 터키 초대대통령인 케말 파샤의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한다. 실제로 돌마바흐체 궁전 내에는 케말 파샤가 사망한 시간으로 영원히 멈춰버린 시계가 있다. 거기서 그때 그 시절의 열정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터키인의 간절한 소망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은 유럽, 몸통은 아시아

▲ 돌마바흐체 궁전의 정원
ⓒ 김정은
토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 어쩌면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두 궁전의 모습이 현대 터키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얼굴 모습은 유럽이지만 몸통은 아시아, 마음은 알라신에게 있지만 그들이 향하고 있는 시선은 여전히 유럽인, 딱히 "어떤 것이 터키다운 것이냐"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그들의 고민이 느껴진다.

"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이 두 세계는 결코 만나지 않을 것/땅과 하늘이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대에/언젠가 마주서기까지는/그러나 동도 서도 없고/경계도, 혈통도, 태생도 없다/비록 땅 양 끝으로부터 왔다고 하지만/두 강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설 때에는 - 키플링/ <동과 서의 발라드>

그러나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인정해버리면 이 혼란스러움이야말로 바로 조화와 융합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동서양의 가교로서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터키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터키7박8일여행기 6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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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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