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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애들하고 살다보면 의외의 짜릿한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가슴에 넣고 알을 품듯 혼자 여미며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어디 그런가요. 아침에 엄마한테 야단 맞고 샐쭉해 있다가도 교실에만 들어오면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떠들어 댑니다. 아이들만큼 쉽게 궂은 일을 잊고 금세 명랑해질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오늘 아침 웃었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예쁜 동요 '섬집아기'. 요즘 배웁니다.

♪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음악시간. 아이의 뛰어난 연주에 금세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 송주현
이런 가사의 F장조(바장조) 노래. 오늘은 이 음악을 리코더로 연주하기입니다. 아침시간에 연습할 기회를 주고 친구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짧은 소절이라 대부분 아이들이 익숙하게 연주를 하는데 한 아이가 여러 번 기회를 줘도 못합니다. 그럼 리코더보다 쉬운 멜로디온으로 해보라 하는데도 두 마디를 채 못 넘어가는 녀석. 일단 방과 후에 보자고 했는데….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 사랑했나봐 잊을 수 없나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아이가 가수 윤도현씨의 노래를 아주 맛깔스럽게 연주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멜로디온으로 말입니다. 담임인 제가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장단을 맞추니 주변 아이들이 슬슬 모여들고 합창이 이어집니다. 녀석은 악보는 못 읽을지언정 음악 감성이 뛰어난 아이인 것입니다.

"명준아, 선생님은 남잔데 왜 자꾸 사랑했나봐라고 하냐? 너도 남자잖아. 깔깔."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녀석이 슬슬 긴장하는 눈치이면서 그만 하려고 하기에 농담으로 어물쩡 넘기니 녀석은 흥이 났는지 다음 곡으로 이어갑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쎄이욧. 여자 마음은…♪

아이들은 백댄서로, 백보컬로 슬렁슬렁합니다. 아이고, 나참.

하긴, 따지고 보면 악보를 못 읽어도 한 번 들으면 그대로 따라서 치는 기타리스트를 제가 모르는게 아니고 손가락 세 개만으로도 블루스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외국의 인기 가수를 알기는 합니다. 유명한 '아랑훼즈 협주곡'을 작곡한 로드리고도 시각장애자였다지요?

▲ 안드레아 보첼리의 'Sacred Arias' 음반 표지. 이 분도 시각장애인이지만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 www.amazon.co.uk
"와! 우리 명준이 정말 끝내주는구나. '섬집아기'보다 백배는 더 어려운 노래를 정말 기가막히게 불지(연주한다는 말의 어린이 말)?"

분위기가 무르익는 김에 마침 가지고 온 CD 중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성가곡을 하나 틀어주었습니다. 비온 뒤 아직 부옇게 흐린 날씨와 딱 맞네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지?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글쎄 시각장애래. 악보를 못 봐도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는구나."

음을 잘 구분하는 귀를 가지고 태어난 저 녀석이 음악 이론까지 무장하면 정말이지 뭐가 되어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다행히 눈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겼으니 차세대 비디오형 가수라고나 할까요? 우선 악보 읽는 것부터 가르쳐 주어야겠지요?

덧붙이는 글 | 어린이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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