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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그리움의 손짓
억새, 그리움의 손짓 ⓒ 김동식
제주의 가을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 하다. 꽃구경 다니던 꽃동네의 흔적도 지난 봄과 함께 사라졌고, 바닷물에 풍덩 몸을 던지던 여름날의 열정도 추억의 책갈피 속에 몇 장의 사진으로 정리된 느낌이다. 새해 첫날부터 신기루를 좇던 허둥대던 생활도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요즘 나의 마음은 비교적 차분해졌다.

가을속에는 억새가 있었네
가을속에는 억새가 있었네 ⓒ 김동식

들녘의 가을을 부르는 몸짓
들녘의 가을을 부르는 몸짓 ⓒ 김동식

제주도 동쪽의 중산간 마을을 가로지르는 남조로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삶의 탄탄대로를 암시해 주는 곳이다. 제주오름과 산천초목의 정취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면 이 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불과 33km의 짧은 거리이지만 수많은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저 들녘의 가을
저 들녘의 가을 ⓒ 김동식
지금 이 순간 나를 받아주는 것도 남조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 멈춰 서서 자연의 속살을 들여다 볼 때 나는 시간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허겁지겁 지나갔는가.

제주오름과 억새
제주오름과 억새 ⓒ 김동식
남조로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오름이 지켜주는 들녘에는 어느덧 가을의 밑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 넉넉한 자태로 들풀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오후를 즐기고 있다. 정겨운 춤사위에 마냥 신이 난 모습이다.

때로는 꼿꼿하게 서있는 억새
때로는 꼿꼿하게 서있는 억새 ⓒ 김동식
겨울이 끝날 때까지 죽은 채로 새 생명이 움돋을 때까지 사람사는 세상에 그리움을 주는 억새풀, 억새꽃은 오늘 나를 여기로 이끈 주인공이다. 남조로의 상징답게 한들거리며, 때로는 꼿꼿한 부동자세로 들풀세상을 지휘하고 있다.

억새가 그린 가을수채화
억새가 그린 가을수채화 ⓒ 김동식
인간은 단지 관찰자일 뿐 저 생명들에게는 저들만의 질서가 있는 것 같다. 쓰러지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놀라운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 고집스러운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억새에게도 질서가 있다
억새에게도 질서가 있다 ⓒ 김동식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 가를 보아라.

- 류시화 詩 '바람부는 날의 꿈' 전문


누가 그렸을까, 가을수채화
누가 그렸을까, 가을수채화 ⓒ 김동식
남조로 들녘은 온통 가을수채화를 그려 놓은듯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다. 자연이 그린 그림은 언제나 사람보다 한 수 위다. 우리는 그냥 뒤늦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베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불변의 법칙인 것이다.

남조로를 찾는 사람들이 속속히 밀려들 때 자연은 겨울수채화를 미리 준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남조로는 조천에서 남원을 연결하는 횡단도로(1118번)입니다. 제주오름 트레킹과 억새꽃 관광으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독특한 제주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매력입니다.

남조로를 이용하여 가볼 수 있는 유명관광지로는 미니미니랜드, 산굼부리, 신영영화박물관, 서귀포감귤박물관, 쇠소깍, 성읍민속마을, 일출랜드, 제주민속촌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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