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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 23일 해수부에 대한 국감에서 이 의원이 오 장관에 대해 인신모독성 발언을 해 비난이 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3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장. 이상배 한나라당 의원이 출석한 오거돈 해수부 장관을 상대로 인신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낸다. 평소 말을 약간씩 더듬는 오 장관의 개인적 특성을 겨냥해 "뭐 우물우물 말이냐"며, "이거 (질의)시간 빼줘야 합니다"하고 면박을 준다. 순간 의원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져나온다.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는 오 장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악을 배우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는데, 그가 느꼈을 모욕감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이 의원은 연거푸 반말로 질의를 했다고 한다.

국감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 기사를 접한 네티즌은 분노하며 '막말' 질의를 성토했다. 해당 국회의원 홈페이지에는 항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반면 장관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격려 글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도를 넘은 질의가 빈축을 사면서 기사화 되어 파문이 커졌지만, 사실 국회의원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폭언을 내뱉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력의 정당성은 국회의원 전유물이 아니다

이렇게 큰소리 치는 국회의원일수록 대개 '국민'을 들먹인다. 자신이 호통을 치는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국민이 보고 있다'고 윽박지른다. 아마도 자신은 국민이 직접 뽑은 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권력의 정당성은 입법부의 전유물인가. 의원내각제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의회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과 달리, 대통령제는 민주적 정당성이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입법부가 견제해야하는 행정부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역시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과거 정권의 정당성이 대단히 취약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는 현실적으로 의회의 민주적 정당성이 보다 우월했다. 허나 87년 헌법체제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대선의 공정성이 점차 확보되면서 행정부 역시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권력을 위임받고 있음은 자명하다. 지방 정부도 민선 지자체장 선출 이후는 관선 시절과는 다르다.

또한 권력의 정당성은 그 성립뿐만 아니라 '존속'에서도 요구된다. 아무리 자유위임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국회가 당선으로 성립된 이후에 행정부보다 얼마나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였을까. 권력 정당성의 또 다른 한 축인 '절차적 정당성'은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더이상 대리만족은 없다

권력분립원칙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의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독점해 자신들만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행정부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견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훼방만 놓는다면 정치 선진화는 어림없다.

또한 무엇보다 돌아가는 카메라에 맞춰 호통치며 욕보이기, 윽박지르기, 꾸짖으며 서류 흔들기 같은 진부한 수법을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정치문화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관행이다.

과거 엄혹한 시절, 정권에 대해 어설픈 비판도 터부시되던 때에는 정권 담당자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환호를 받았다. 그 자체로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주었다. 가령 청문회에서 과거 집권세력을 몰아붙이는 의원이 스타로 탄생한 배경은 대리만족 심리가 컸다.

그런데 지금은 리얼리티쇼만 남은 형국이다. 국감을 마치고 피감기관 관련자와 국회의원들이 술자리를 같이 했다는 보도가 들려온다. 여야도 따로 없다. 낮에 있었던 '역할극'의 뒤풀이 자리에서는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카메라가 없는 룸에서는.

차분하게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힘써야

전문가에 따르면 국감을 실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국정운영에 공백을 초래하는 국감을 폐지하고 대신 국정조사 요건을 완화해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폐지가 아니더라도 정치 공세가 아닌 정책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려면 의원들의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구체적으로 묻고 무엇보다 답을 듣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듣는 국감이 되어야 한다.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해 질의에 답하려는데 말 할 필요 없다고 가로막아 윽박지르는 모습은 추태에 가깝다.

요컨대 공무원을 제물 삼아 폄훼하고 윽박는 3류 연극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국민은 없다. 위신을 깎아내리려는 비난에 더이상 통쾌해 하지 않는다. 단지 영화 속 대사처럼 속으로 되뇔 뿐이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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