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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세월도 쌓이면 역사가 된다. 도피안사 전경
짧은 세월도 쌓이면 역사가 된다. 도피안사 전경 ⓒ 이승열

도피안사. 작고 아담하고 쓸쓸한 곳이다.
도피안사. 작고 아담하고 쓸쓸한 곳이다. ⓒ 이승열
세상사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이며 살진 않지만 가끔 이름이 갖는 의미, 그 운명을 생각한다. 이름을 붙이거나 제목을 정하는 것은 여태까지 해 왔던 모든 과정의 에너지를 모아 응결시키는 작업이다. 종이와 물감과 단순한 색의 조합이었던 용 그림이 비로소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는 '화룡점정'의 의식처럼….

그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이름, 지명을 차창 밖에서 문득 만나는 것은 여행의 크나큰 행운이다. 돌덩이, 기록 같은 유적에만 옛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익산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 만난 '마한전기' 란 간판. 새까맣게 잊혀져 그 존재조차 의심받고 있던 마한이 그곳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가슴속에 수천 년 동안 올곧이 새겨져 있음을 보는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내 운명도 이름 때문에 반쯤은 미리 정해져 버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 반에 영숙이가 넷, 명자가 둘, 순옥이가 세 명씩 있어 큰순옥이 작은순옥이라고 불렀던 시절에 나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는 거의 없었다. 씩씩하고 독립적으로 살지 않으면 이름값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었다. 개인의 이름도 이럴진데 하물며 중생의 염원을 모은 절간의 이름임에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의 '도피안사' 가는 길은 이름 그대로 피안(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검은 돌 위에 한탄강이 범람하면서 기름진 평야가 만들어졌다. 나일강의 범람이 세계 문명을 발생시킨 모태가 되었듯이…. 그 철원평야 위에서 만난 '태봉국 정도 1100주년' 이란 아치 위의 글자. 그것은 군사도시로만 기억했던 철원의 의미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글자 그 이상의 의미였다.

한탄강의 범람으로 충적된 비옥한 철원평야. 차창밖의 풍경만큼 궁예의 흔적도 모호하다.
한탄강의 범람으로 충적된 비옥한 철원평야. 차창밖의 풍경만큼 궁예의 흔적도 모호하다. ⓒ 이승열
수억 년의 세월동안 강이 넘치고 강이 품고 있던 양분을 대지에 뿌리며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다져 너른 들판, 철원평야를 만들었다. 그곳에 살아있는 미륵을 자처한 궁예가 '태봉'을 세웠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원 땅 어느 곳을 둘러봐도 궁예의 흔적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그의 흔적은 비무장지대라 불리는 저 철책선 안에 남아 그의 최후처럼 잊혀지고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중부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호남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강대했던 나라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궁예의 태봉은 잊혀진 곳이다.

철원, 포천, 연천에 그가 쌓은 몇 개의 성이, 최후를 마친 명성산이 그의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궁예를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측근이었던 개성의 호족이었다. 그를 둘러싼 호족들조차 쿠데타로 뒤엎은 미륵불의 나라를 궁예는 진정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믿고 싶었던 것일까?

어지러운 부재들조차 분단의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행자의 지나친 감상.
어지러운 부재들조차 분단의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행자의 지나친 감상. ⓒ 이승열

도피안사 3층석탑. 어쩐지 균형이 맞지 않아 좀 불안하고 위태롭다.
도피안사 3층석탑. 어쩐지 균형이 맞지 않아 좀 불안하고 위태롭다. ⓒ 이승열
그래서 도피안사 가는 길은 더욱 쓸쓸하다. 궁예가 태봉을 세웠던 천백 년 전의 영화는 간 데 없고 곳곳에 분단의 상징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개구리 무늬라 불리는 군복차림의 젊은이들, 전차 저지 구조물, 어지러이 나부끼는 철원읍내 전체를 덮은 플래카드들.

이곳이 천 년 전 한 국가의 도읍임을 알려주는 아무런 상징도 존재하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의 비옥함, 태봉 정도 1100년을 기념하는 아치의 글귀가 잠깐 기억에 궁예가 세운 나라가 태봉이었지 하는 기억을 일깨울 뿐이다.

예쁜 꽃이 새겨진 굴뚝, 벌개미초의 보랏빛이 더욱 진해지는 석양 무렵
예쁜 꽃이 새겨진 굴뚝, 벌개미초의 보랏빛이 더욱 진해지는 석양 무렵 ⓒ 이승열

굴뚝의 무늬. 나도 저런 소박한 꽃잎같은 생을 늘 꿈꾼다.
굴뚝의 무늬. 나도 저런 소박한 꽃잎같은 생을 늘 꿈꾼다. ⓒ 이승열
결국 피안을 갈망하고 건설하고자 함은 견뎌내야 할 현실의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희망은, 특히 신앙으로 포장된 희망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가장 효과 좋은 마약일 것이다. 결국 피안을 꿈꾸는 것은 현실 어디에도 피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피안에 이르는 곳, 그곳이 도피안사다.

이름도 그러하지만 땅도 어떤 운명을 갖고 탄생하나 보다. 비옥한 철원평야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 다툼이 치열했던 국토의 허리 부분이다. 그 허리가 댕강 잘려 철책과 총구를 다시 겨누고 있다. 도피안사는 잘린 허리 휴전선 북쪽 민통선 안에 있는 절이었다. 얼마 전까지 땅굴같은 비무장지대를 들어갈 때처럼 미리 신분증을 제시하고 허가를 받아야 밟을 수 있는 금단의 지역이었다.

철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해 철원의 안양사로 향하던 중 사라진 불상. 사방으로 찾아보니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어 그곳에 불상을 모시고 절을 세운 것이 신라 경문왕 5년(865년)이다. 철조불상이 피안(彼岸)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즉 이곳이 바로 피안, 즉 열반의 세계이다.

1898년 불에 탔던 것을 중건, 다시 6·25때 소실되어 완전히 폐허가 된 자리에 불상과 대좌, 석탑이 남아 있어 불심 같은 그곳의 군인이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중창불사가 진행되고 있어 산사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가는 길이 고즈넉하고 쓸쓸하다. 황량한 바람이 불던 용문객잔의 국경 풍경보다 국토의 허리를 가르는 현대의 국경 앞에서 젊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는 풍경이 더 가슴을 저리게 한다.

천년동안 국토의 중심에 서 있었던 비로자나불. 권위적이지 않지만 좀 번쩍거려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
천년동안 국토의 중심에 서 있었던 비로자나불. 권위적이지 않지만 좀 번쩍거려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 ⓒ 이승열

나도 삼배를 하며 부처님께 소원을 한번 빌어볼까. 법당에 스님이 있으면 어쩐지 더 정겨운 풍경이 된다.
나도 삼배를 하며 부처님께 소원을 한번 빌어볼까. 법당에 스님이 있으면 어쩐지 더 정겨운 풍경이 된다. ⓒ 이승열
철원 지방의 신도 1500명의 발원에 의해 조성된 불상답게 부처님의 얼굴이 씩씩한 철원지방 사람들을 닮았고, 또 철책을 지키고 있는 젊은 군인의 얼굴을 닮았다. 9세기에 1500명이 참가해서 불상을 조성했다는 사실은 불교가 서라벌의 귀족불교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퍼지며 대중화되어 누구라도 기댈 수 있는 신앙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보 63호로 지정된 비로자나불은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이 아니라 통일신라시대를 살았던, 불상을 조성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진리의 법신인, 기독교의 메시아쯤으로 해석되는 비로자나불의 성호가 저리 씩씩하고 건장한 걸 보면 아마도 천 년 후 국경이 될, 도성 대신 철책이 설 이 땅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나 보다. 태풍이 저 깊은 바다의 자기 정화 작용이듯, 분단의 비극이 비무장지대 전체를 본래 제 땅의 모습대로 되돌려 놓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분단 때문에 잊혀졌던 궁예의 불국토가 분단을 조금씩 녹이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남북 화해의 움직임으로 곧 공동 조사가 시작될 거란 기대에 차 있다.

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혹은 객기를 부려 걸어서 이 땅을 지나 미륵임을 굳게 믿고 살았던 궁예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달리고 싶다. 바리케이드 쳐진 국경의 군인에게 여권을 보여주면서 걸어서 그 국경을 넘고 싶다.

석간수마저 구멍 뚫린 검은돌 현무암을 통해 나온다. 엄청난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석간수마저 구멍 뚫린 검은돌 현무암을 통해 나온다. 엄청난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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