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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겁을 집어 먹었군!’

정명수는 이렇게 생각하고서는 얼굴에 한가득 비웃음을 머금었으나 황일호의 행동은 어딘지 이상했다. 그 자리에서 남쪽을 향해 공손히 네 번 절을 하고 방향을 조금 틀어 공손히 절을 올리더니 정명수에게 당당히 소리쳤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이는 임금과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에게 올린 절이었다.

“내 잘못된 점이 있다면 마땅히 관소로 가 얘기를 할 것이다. 어찌 이리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단 말이냐!”
“뭐야!”

정명수는 눈을 치켜들더니 병사에게 명했다.

“저 놈이 꼴에 나라관리였다고 내 앞에서 위세를 세울 모양이다. 죽이지는 말고 혼이 쏙 빠질 정도로 두들겨 주어라!”

병사는 허리춤에 서 몽둥이를 꺼내어 황일호의 온몸을 마구 두들겨대었다. 황일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다가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물을 끼얹어라!”

물벼락을 맞고 깨어난 황일호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신음소리가 배어나왔다.

“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칼을 가져오너라!”

정명수는 정말 황일호를 죽일 양으로 칼을 들이밀었다. 황일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정명수에게 간청했다.

“내 말을 하기 어려우니 지필묵을 주시오.”

정명수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지필묵을 가져오도록 일렀고 황일호는 글을 적어 내려갔다.

‘신은 이제 죽습니다마는 신이 죽은 뒤에 이 나라가 장차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성상께서는 부단히 국력을 기르고 뒤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을 지니소서.’

정명수는 황일호의 짧은 유언을 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결국 사람을 시켜 끌고 나가 목을 찔러 절명케 했다.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분개해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직 끌고 오지 않은 자가 있는가?”

피범벅이 땅을 바라보며 정명수가 소리 지르자 부하가 달려와 정명수에게 일렀다.

“멀지 않은 곳에 차씨 형제가 있는데 그들의 거동이 수상하외다.”
“그놈을 사로잡아 오너라! 물증이 없으니 죽이지는 않겠지만 심양으로 끌고 가야겠다!”

멀리서 이 말을 들은 황일호의 하인이 미친 듯이 차충량의 집으로 달려가 통곡을 하며 참상을 말해주었다.

“어서 피하시옵소서! 곧 그놈들이 이곳으로 옵네다!”

차충량은 침통한 표정으로 차예량을 돌아보았다.

“예량아.”
“예 형님.”
“넌 계화와 함께 명나라로 몸을 피해 후일을 기약하거라.”

차예량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형님! 형님은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우리 둘 다 심양으로 끌려가서는 아니 된다. 내 어떻게든 저들을 설득해 몸을 빼내어 볼 테니 넌 몸을 피해 있거라. 임경업 부윤께 가면 명으로 갈 방도를 마련해 주실 게다. 이미 최종사관이 명나라로 갔으니 같이 일을 도모하면 더욱 수월할 것이다.”

차예량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한시가 급한 일임을 알고 있기에 어금니를 꽉 다물고 일어나 차충량에게 절을 올렸다.

“형님! 몸 건강히 계십시오!”

차예량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명수와 그의 부하들이 차충량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차충량은 시치미를 뗀 채 정명수를 맞이했다.

“이 무슨 일이오?”

정명수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않은 채 차충량을 끌어내어 마당에 꿇어 앉혔다.

“네 놈이 명과 몰래 통교하는 데 관여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바 없소!”
“이놈!”

정명수는 차충량의 뺨을 후려갈겼다. 차충량은 모욕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일부러 겁을 먹은 듯이 대답했다.

“내 잠상인들과 가까이 지낸바 장사를 하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하여 자금을 댄 적은 있소이다.”

뺨 한 대에 기가 죽은 것만 같은 차충량에게 정명수는 한 가득 비웃음을 보내었다.

“진작 그렇게 실토할 것이지! 끌고 가라!”

차충량은 정명수가 자신의 동생까지 찾아내려 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오랏줄에 꽁꽁 묶여 청의 병사들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심양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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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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