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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찬미씨의 인터뷰장면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찬미씨의 인터뷰장면 ⓒ 정종인
전북 정읍이 낳은 국악계의 기린아 김찬미씨가 드디어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소리꾼' 김찬미(31·여·정읍시립국악단 상임단원)씨는 28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내린 제13회 임방울 국악제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차지해 기염을 토했다.

이날 김씨는 판소리 흥보가 중 '흥보가 밥을 얻기 위해 비는 대목'(예선)과 심청가 '심봉사가 눈뜨는 대목'(본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득음의 경지를 연출하며 심사위원들의 극찬속에 명창의 반열에 올라 상금 1500만원과 순금(60돈) 트로피를 수상했다.

정읍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 장순옥(56)씨 손에 이끌려 소리에 입문한 지 20여 년만에 '금자탑'을 이룬 김찬미씨는 "동초제를 전수해 주신 오정숙·박봉선·김명신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며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달리는 말에 채찍이 가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며 '피 토하는 고통'을 참아낸 '명창' 김찬미씨의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본다.

경연에 참가한 김찬미씨가 흥보가를 부르고 있다.
경연에 참가한 김찬미씨가 흥보가를 부르고 있다. ⓒ 정종인
소리는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하는 예술

정상에 서는 순간 '소리꾼' 김찬미씨는 쏟아지는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지난 시간들이 하얀 물거품처럼 그의 뇌리를 흔들어놓았다. 지리산과 내장산 깊은 계곡에서 '산공부'를 통해 득음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 쳤던 순간들은 '빙산'에 불과할 정도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창무극 '정읍사'에서 주인공인 '월하'역으로 열연할 정도로 '팔방미인'인 김찬미씨는 동초제의 거봉인 '인간문화재' 오정숙·박봉선 명창과 김명신명창에게 동초제를 사사했다.

'소리꾼' 김씨는 그동안 흥부가·수궁가·심청가등 남들은 한번도 힘들다는 완창을 3바탕이나 해내는 등 남다른 열정을 쏟아냈다. 2001년 광주국악대전 최우수상과 2002년 고흥 전국판소리대회 일반부 대상, 2004년 서울국악제 최우수상 등은 서곡에 불과했을 정도로 김찬미씨의 진가는 그동안 곳곳에서 검증을 받았다.

고향인 전북 정읍에 돌아온 김찬미씨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담긴 충렬사에서 인터뷰 도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향인 전북 정읍에 돌아온 김찬미씨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담긴 충렬사에서 인터뷰 도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정종인
임방울국악제 명창대회 최고의 권위

전주대사습과 함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13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찬미씨는 수상소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진짜로 상을 받은 건지 얼떨떨하다"며 눈물을 머금을 정도로 감격해 했다.

자신을 '타고난 소리꾼이 아니다'라고 자평할 정도로 겸손함이 묻어나는 김씨는 스승인 오정숙 명창을 처음 찾았을 당시 '퇴자를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명창' 김찬미씨의 국악인생은 말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당시 오정숙 명창은 김씨에게 '달리는 말이 채찍을 맞는다'는 교훈을 주며 3번째만에 내제자로 수락했다.

평소 예절의 중요성과 걸음걸이 하나까지 완벽함을 요구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오 명창에게 김씨는 소리의 진수와 함께 인간으로서 큰 가르침을 받았다.

b>어려운 고통 참아낸 아름다운 결실

고교(정읍서영여고)시절에는 오 명창과 함께 내장산에서 '산공부'를 한 김씨는 당시를 '형극의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국악인의 길을 걸으며 고통이 엄습할 때면 김찬미씨는 찢어진 상처(?)가 있는 춘향전 가사집을 찾는다.

너무 힘든 연습으로 인해 고교시절 국악인의 길을 포기하고 싶다며 남긴 흔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증표'기 때문이다. 매니저를 자처하는 친정 아버지인 김영완씨(62·정읍낚시대표)와 어머니 장순옥씨의 간곡한 설득이 자신감을 잃어가던 김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샘물'이었다.

본선에서 심청가중 심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부르고 있는 김찬미
본선에서 심청가중 심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부르고 있는 김찬미 ⓒ 정종인
<지리산 '산공부' 시기에는 접두사 발음이 헷갈려 피멍이 들도록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도 새롭다. 김씨는 오 명창의 친구이자 동초제의 '산증인'인 박봉선 명창에게서 춘향가를 사사했다.

국립창극단 첫 춘향이라는 화려한 과거를 안고 있는 박 명창에게 동초제 원전 그대로 때묻지 않는 소리를 배워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정읍국악원에서 소리꾼 첫발

'명창' 김찬미씨는 난생 처음 국악원을 찾던 날 거리를 뒤덮고 있던 눈때문이지 유달리 겨울을 좋아한다. 코흘리게 초등학교 4학년시절 김씨는 동네에서 '스타'로 대접받을 만큼 노래에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친구들에 비해 유달리 목소리가 컸던 김찬미씨는 이웃 어른들의 강권(?)에 못 이겨 어머니인 장순옥씨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충렬사 뒤편에 있던 정읍국악원에서 숙명처럼 국악인으로 첫발을 들여 논 후 20여년 만에 정상에 등극했다.

이번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음폭이 넓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 김씨에 대해 국악인들은 "적당히 쉰 듯한 목소리가 고음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호소하는 연기력이 탁월해 판소리의 본래적 특징인 사람을 울리는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찬미씨는 1남1녀를 두고 있는 가정주부이자 정읍시립국악단 상임단원이다.
김찬미씨는 1남1녀를 두고 있는 가정주부이자 정읍시립국악단 상임단원이다. ⓒ 정종인
<꿈을 통해 본 대통령상 예감

이번 대회에 앞서 '명창' 김찬미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길몽(吉夢)'을 접했다. 대회 하루 전날 김씨는 커다란 불이 덮치는 꿈을 꾸었고 시어머니인 김순덕씨는 하얀 함박눈을 보았다. 언니 김찬숙씨는 '팔뚝만한 대하(새우)'를 잡고 기뻐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큰 일' 낼 거라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회장에서도 김씨는 자신이 평소 주특기로 삼고 있던 흥보가 가운데 익숙한 대목을 뽑아 쾌재를 불렀다고 털어놨다. 동초제 정읍시지부를 꾸릴 정도로 국악사랑이 남다른 남편인 손경호(35·문경컴퓨터학원장)씨의 100점짜리 내조에 감사한다는 김씨는 "미뤄놓았던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 대학강단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스승님들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가고 싶다"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남은 적벽가, 춘향가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 손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김씨는 "딸인 희은이(3·여)가 국악태교 때문인지 기초적인 소리를 흥얼거릴 정도로 재주가 남달라 후계자로 키울까 생각중이다"며 미소지었다.

미모의 재원인 김씨는 현재 정읍시립국악단 상임단원과 동초제 정읍지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전북대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심청가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 판소리 다섯바탕을 모두 이수한 '실력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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