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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겉표지
<미쳐야 미친다> 겉표지 ⓒ 푸른역사
사는 것이 때론 따분하고 재미없다. 그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삶에 대한 허무주의자가 되어버리곤 한다. 때론 지극히 긴장되고 팽팽한 삶의 모습에서 한없는 자유를 갈망하다 제풀에 지쳐가곤 한다.

과연 삶의 그 정체는 뭘까?

정민 저 <미쳐야 미친다>는 그런 삶의 모습에 대한 단상의 흔적들을 조선 후기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며 떠난 이들의 삶을 통해 조명한다. 나아가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우뚝 세워 올린 노력가들, 삶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그 자체로 삶이었던 예술가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워 한 시대의 앙가슴과 만나려 했던 마니아들의 삶 속에 나를 비춰보는 일은, 본받을 만한 사표도, 뚜렷한 지향도 없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건너가는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에서)

아웃사이더 그 삶의 경계를 밟아가다

아웃사이더를 이야기할 때, 우린 묘한 이중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아웃사이더가 가진 뛰어난 재능과 묘한 매력에 반하기도 하지만, 기괴한 행동과 정상의 궤도를 이탈해 질주하는 광적인 무모함에는 질투 섞인 우려와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그런 아웃사이더를 조선 후기 사회에서 찾아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네들의 풍모와 삶의 품격을 넉넉하고 유유한 문체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그런 아웃사이더들의 삶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면들을 들춰내고 있다.

"그 처참한 가난과 신분이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지적 토대,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83쪽에서)

뭔가에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자기를 지켜 나가는 방법은 뭘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주체적인 자기 확립과 확신이다. 그런 굳건한 자기 주체의 확립과 확신이야 말로 정녕 시대에 끌려가지 않고 시대를 앞서 갈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영양실조와 병으로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이덕무의 시에서 저자는 그런 삶의 경지를 읽어 낸다.

"차라리 백 리 걸음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가 없고
비록 사흘을 굶을지언정
기우숙한 쑥은 먹을 수 없네"
(82쪽에서 재인용)


일상을 꿰뚫는 논리와 감성으로 현실의 벽을 뛰어넘다!

기괴한 행동과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때론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행동과 발언은 종종 우리에게 의미 없는 사색의 파편, 때론 진부한 명언이나 경구보다 더 의미 있는 촌철살인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바로 아웃사이드가 가지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촌철살인의 감각과 논리가 일상의 궤적을 벗어나거나 일시적이고 쾌락적인 말장난이나 허무맹랑한 행위로 그친다면 그들에게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시대 정신사와 예술사의 발흥 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한 분야에 이유 없이 미치는 마니아 집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에 뚜렷한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질 때가 더 많다. 하지만 한 시대의 열정이 이런 진짜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우연히 남은 한 도막 글에서 그들의 체취와 만나게 되는 것은 한편 슬프고 또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31쪽에서)

저자는 그와 같은 아웃사이더의 논리와 감성을 중심부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권력 저 바깥에서 혹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우연하게 남은 한 도막 글의 흔적들에서 찾아가고 있다.

굶어 죽은 천재 천문학자 '김영',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는 '김득신', 그 어떤 목적도 없는 오직 독서 그 자체 만에 빠진 '이덕무', 과거 시험의 연이은 급제가 도리어 삶의 화가 되어 버린 조선의 천재 '노긍' 등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질 뻔 한 수많은 천재들을 이 땅위에 다시 살려내어 진정한 아웃사이더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허균, 정약용, 홍대용, 박지원 등 조선후기를 풍미했던 대학자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의 기발함과 천재성을 폭넓은 고전의 습득과 이해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아웃사이더는 존재하는가?

시대를 뛰어넘는 기발함과 우직함, 그리고 천재성으로 한 시대의 뒷면을 장식한 마니아들, 혹은 아웃사이더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강렬한 색채로 다가온다.

우리는 수많은 마니아들이 활동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종종 그 마니아들에게서 돈과 권력 앞에서 무릎 꿇는 자본주의 사회의 천박한 속성을 읽게 된다. 특히 종종 정치판에서 지난날 순수했던 그 열정과 힘으로 똘똘 뭉쳐졌던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잃어가는 이들을 종종 보며 환멸감을 느낀다.

하지만 돈과 권력으로 무장된 이 첨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한 곳에 미친다는 것은 정말로 모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그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면 더 그럴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이런 천박해져 버린 우리 시대의 우울한 초상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아갔던 불우했지만 한편으론 더없이 행복했던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푸른역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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