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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용철
지난 28일 진행된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문광위)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간에 주고받은 질의응답의 일부다.

유홍준 청장은 청계천의 역사문화 복원에 대한 정 의원의 질의에 대해 제대로 답변도 못한 채 고개만 떨궜다. 문화유산 행정의 총책임자인 문화재청장도 청계천 복원 시 역사문화 복원에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현장이었다.

10월 1일, 동아일보 사옥부터 시작되는 총 연장 5.8㎞인 청계천 복원 통수식이 열렸다. 언론들은 '서울찬가'라 칭해도 될 만큼 칭찬일색이다. 필자도 최근 청계천에 몇 차례 현장조사를 나간 적이 있다. 2급수의 푸른 물이 도심 속에 흐르고 각종 벽화와 분수대 오색찬란한 스포트라이트 등은 시민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기에 손색이 없었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는데 문화재 행정은 흐르는 물에 떠내려갔다."

정청래 의원이 꺼낸 첫 발언이다. 그럼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인가?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놓인 콘크리트 인공 어항일뿐

이명박 서울시장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이었던 '청계천 복원공사', 그가 복원공사의 명분으로 내세우며 홍보했던 것은 '역사문화 생태복원'이었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환영의 입장을 표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청계천 복원공사는 도심 한가운데 놓인 콘크리트 인공어항에 불과했다.

청계천 복원공사시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은 환경이 아니었다. 바로 역사문화 복원이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3만㎡이상의 공사면적일 경우 의무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시발굴 조사 및 보존대책을 수립한 후에야 공사여부를 진행할 수 있다.

서울시는 복원구간 전체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했고 교란층에서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런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복원공사의 시간 등을 감안해 6곳에 대한 시발굴조사만을 실시하도록 허가해주었다.

노태섭 전 문화재청장은 "서울시가 청계천 전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국정감사 질의에 대해 "고발을 해서라도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 후 문화재청장은 유홍준씨로 바뀌었고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지적이 거세지자 문화재청은 지난해 3월 청계천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발굴조사 지역 10m 이내에서는 발굴조사 외의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고 공사 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서울시는 이 또한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역사복원 한다더니

사적으로 지정된 오간수문교지. 문화유산은 원형성과 지역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는 오간수문터를 사적으로 지정하면서도 원형복원이 아니라 청계천복원공사 이후 오간수문을 복원하도록 해줘서 문화유산정책 근간을 훼손했고 국민혈세가 이중으로 낭비되는 꼴을 초래했다.
사적으로 지정된 오간수문교지. 문화유산은 원형성과 지역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는 오간수문터를 사적으로 지정하면서도 원형복원이 아니라 청계천복원공사 이후 오간수문을 복원하도록 해줘서 문화유산정책 근간을 훼손했고 국민혈세가 이중으로 낭비되는 꼴을 초래했다. ⓒ 박신용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청계천 복원공사시 역사문화 복원문제가 대두되자, 서울시 관계자,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청계천문화재보존전문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적분과나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자문위원회의 합의사항은 '복원공사 전체에 대한 문화재지표조사 실시가 아니라 6곳에 대한 조사 실시' '오간수문교, 수표교, 광통교만 사적으로 지정' 이었다.

특히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자문위원회를 통해 사적으로 지정한 세 곳에 대해 '홍수대비 가시설로 한다'는 전제 하에 우선 공사를 진행하고 추후 사적으로 지정된 세 곳의 문화재를 복원할 때 현재 설치된 청계천 구조물을 철거한 뒤 원형복원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는 조건으로 공사를 허가해 주었다.

문화재는 원형성과 지역성 두 가지가 중요하다. 문화재보호법에도 '원형보존'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자문위원회는 이와 배치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계속됐다. 지난해 8월 12일,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원형보존 원칙에 벗어난 '선공사 후 원형복원' 결정을 내리자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일부 위원들은 자문위원회에서 사퇴했다.

조선 영조때 조성된 양안석축. 양안석축 발굴조사과정에서 서울시는 공사를 제지하려 했지만 발굴단의 의지로 원형이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양안석축위에 강압유리를 설치하라고 권고 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오른쪽)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이 현장을 방문해 양안석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 영조때 조성된 양안석축. 양안석축 발굴조사과정에서 서울시는 공사를 제지하려 했지만 발굴단의 의지로 원형이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양안석축위에 강압유리를 설치하라고 권고 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오른쪽)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이 현장을 방문해 양안석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박신용철
그리고도 부족했던 것일까. 문화재청은 지난 8월 12일 '서울시건축물관리계획안'을 승인, 청계천 사적주변의 고도제한을 완화해 주기까지 했다.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 한번도 허가되지 않고 적용된 원칙과 법 규정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통상 문화재주변 반경 20m의 경계로부터 반경 100m 이내 구간에 대해서는 '앙각 27도' 규정을 적용한 서울시 문화재조례의 예외를 인정해주어 최대 90m 높이의 건축이 가능해졌다. 현재 이 주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물이 흐르는 청계천 상류부분에는 양안석축이 복원되어 있다. 발굴기관이었던 중앙문화재연구원은 양안석축 위에 강압유리를 설치해 지상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청계천 복원으로 잃은 것

역사문화는 한 시대를 넘어 우리 민족의 얼과 숨결이 켜켜이 쌓인 지층으로 자긍심과 정체성의 원천이 된다. 특히 한 시대의 문화는 역사로 남고 역사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길잡이가 된다. 선진국의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은 향유할 수 있는 수준과 자질을 갖추었을 때만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이 '원통교'라고 지칭한 광통교. 사적으로 지정된 광통교도 원래 자리에서 155m 벗어난 상류에 이전복원되었다. 그리고 석축공사를 하면서 유구를 우선 설치하고 새로운 돌을 맞춰야 하는데 선후가 바뀌어 유구 일부를 깍아 문화재를 훼손했다.
정청래 의원이 '원통교'라고 지칭한 광통교. 사적으로 지정된 광통교도 원래 자리에서 155m 벗어난 상류에 이전복원되었다. 그리고 석축공사를 하면서 유구를 우선 설치하고 새로운 돌을 맞춰야 하는데 선후가 바뀌어 유구 일부를 깍아 문화재를 훼손했다. ⓒ 박신용철
문화유산과 역사를 정치의 선전도구와 홍보도구로 이용하면서도 철저히 이를 무시하는 행태는 과거 박정희 독재정권이 청계천을 복개할 때나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복원을 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회색빛 빌딩 숲에 숨막혀 있던 서울 도심에 유유히 흐르는 청계천이 복원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청계천복원과정에서 철저히 짓밟히고 뭉개졌던 역사문화에 대해 곱씹어 봐야 한다.

청계천을 방문하는 시민이라면 한번 쯤은 청계천에 흐르는 물속에 문화유산은 떠내려갔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문화유산연대 사무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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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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