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7년간 청계천을 덮고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가 걷히고 수많은 시민들이 들뜬 마음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던 날, 불과 2년전만 하더라고 그 청계천변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 벼룩시장에서 뚝 떨어진 매출에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47년간 청계천을 덮고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가 걷히고 수많은 시민들이 들뜬 마음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던 날, 불과 2년전만 하더라고 그 청계천변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 벼룩시장에서 뚝 떨어진 매출에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강이종행

"서울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청계천은 우리 서울시민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 황영민(45·남)

"우린 노점상 수용소에 있다. 난민보다 더 하다. 청계천에 있을 때와 다르다." - 한 노점상


역사적인 청계천 새물길이 열리는 날인 1일. 청계천 변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나와 서울 도심 한복판 새 명소의 탄생을 환영했다. 그러나 이 날 청계천에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있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청계천 변에서 시민들에게 물건을 팔았던 노점상들이 그들.

이날 분명히 청계천 변은 '축제'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러나 청계천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었다.

전세계적인 축하행렬 "건물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감개무량하다"

물장난을 치던 꼬마가 아빠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물장난을 치던 꼬마가 아빠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일 오후 청계천 산책로에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1일 오후 청계천 산책로에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일 오후, 청계천변은 제대로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의 인파로 넘쳤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이미 청계천 안으로 들어가 물장난에 한창이다. 가족단위로 나온 시민들은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복잡한 청계천 변이었지만 짜증내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청계8가 영도교 앞에서 만난 김영동(70·송파구 잠실)씨는 "청계천이 개통된다고 해서 이렇게 왔다"며 "건물들 사이에 물줄기가 흐르는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밝혔다.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는 황만호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조금 더 친환경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시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오후 6시 서울시의 '새물맞이 축제'로 이어졌다. 축제는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압록강, 두만강, 한강 등 한반도의 대표적 '물'이 청계천에 합수되면서 시작했다.

이어 나온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의 복원은 청계천 변 상인들과 노점상, 경찰, 시의원 등 많은 분들의 성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특히 상인들과 노점상 분들의 도움은 영원히 감사하게 간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엔 노무현 대통령 내외도 착석했다. 노 대통령은 "세계적 도시들 중 서울만큼 숲과 자연환경이 빈약한 곳은 없다, 크고 활력은 있지만 답답하다"며 "이번 청계천의 복원은 서울이 더 푸르러지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품위 있는 도시로 가는 첫 걸음일 것"이라고 청계천 복원을 높이 평가했다.

새물맞이 축하행렬은 여기서 끊이지 않았다. 베를린, 도쿄, 베이징 등의 시장들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청계천의 복원을 축하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경기도지사, 소설가 박경리씨와 서울세계도시시장포럼에 참석한 27개국 27명의 시·부시장 등은 직접 행사장을 찾았다.

"난민보다 더한 노점상... 우리는 자갈이 아니다"

이처럼 청계천 변이 온통 축제분위기일 때, 그 곳에서 약간 떨어진 동대문운동장(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안에는 1천여명의 노점상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청계천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지켰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청계천 식구가 아니다.

12년 동안 구제품을 팔고 있다는 최경식(50·가명)씨는 "고가도로가 없어지고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보니 기분이 묘하더라"며 "우리(노점상)도 외국처럼 청계천에서 합법적으로 세금도 내며 '청계천 명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2003년 12월 서울시에서는 고가도로 철거 공사에 들어가면서 크게 반발하던 노점상들을 위해 동대문운동장에 대체 터를 마련하고 집단 이주시켰다.

최씨는 "사실 여기에 우리를 던져놓고 서울시에서는 우리를 방치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리 차면 이리 굴러가고 저리 차면 저리 굴러가는' 길거리 자갈이 아니다, 서울시는 우리를 이곳으로 차버린 것"라고 항변했다.

1일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 전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매출 감소에 한숨쉬었다.
1일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 전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매출 감소에 한숨쉬었다. ⓒ 강이종행
그는 "여기 들어오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수용소와 같다"며 "(서울시에서) 단속하지 않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 판"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1천여개 점포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데다 좁은 통로, 부족한 출입구 등 때문에 상인도 소비자도 불편하다는 것.

조금 더 걷다보니 안경을 파는 송윤식(가명·45)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청계천에 있을 땐 꼭 사려고 마음먹지 않았더라도 그냥 지나가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이렇게 고립돼 있으니 사람이 많을 리 없다"고 한숨쉬었다. 그에 따르면 2년 전에 비해 많게는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0~80% 매상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송씨는 "서울시에서 여기에 아파트와 녹지공간을 조성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갈 곳이 없어질 것"이라며 "우리같은 힘없는 사람들만 당하고 산다"고 밝혔다.

운동장 구석에는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자치위원회 사무실이 있다. 장용묘 홍보국장은 "서울시가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집회를 연다고 했더니 '남의 잔치에 왜 방해하려 하냐'고 하더라"며 "우리도 청계천의 주인인데 남의 잔치라니"라고 서운해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 안에서 도깨비시장 때의 이미지를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서울시에서는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