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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각 입구입니다. 도로가에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 정상혁
지난 여름, 아는 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 마침 여름휴가를 즐기고 돌아가는 차들 속에 갇히기 실어 점심 전에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밥을 간단하게 일찍 끝낸 탓에 얼마가지 않아 배에서는 자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함께 동행했던 분도 마침 출출하니 어디서 자장면이나 한 그릇 먹고 가자고 하십니다.

처음 와보는 길이라 아는 식당이 있을 리 만무하니 어느 마을 면소재지라도 지나치게 되면 중국집 하나쯤은 있겠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찾은 곳, 바로 로 청룡각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들어서서 식당 안을 한 바퀴 둘러보니 여느 중국집과는 사뭇 다른 그런 분위기입니다. 곳곳에는 몇 십 년은 돼 보임직한 골동품들이 벽마다 장식되어 있습니다. 보석의 무게를 달 때 쓰는 천칭이나 꽤 오래됨직해 보이는 괘종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리면서 잘 가고 있고 또 한쪽 벽에는 갖가지 동식물로 담근 술에 방문 옆에 걸린 "남을 잘 되게 하라"라는 말은 무심코 한 끼 해결하려고 들어온 내게 경책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거기에 어렸을 때 보았던 플라스틱 식초통은 그 시절 향수를 마구 마구 자극해 댑니다.

▲ 옛스런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식당내부 이곳저곳
ⓒ 정상혁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 찬 이곳 청룡각 메뉴판 나이도 언뜻 보아도 다른 물건들에 비해 그리 젊어 뵈진 않습니다.

▲ 시골이어서 일까요? 메뉴판의 음식 가격이 겸손합니다.
ⓒ 정상혁
구경도 구경이지만 얼른 주문을 해야겠지요?

입구부터 '된장짜장면'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소위 이 집에서 밀고 있는 메뉴는 된장자장면인가 봅니다.

자고로 어느 음식점에서건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그 집에서 주력을 삼고 자신있게 권하는 메뉴를 먹는 게 상책입니다.

괜히 곱빼기 시켰다가 맛없으면 돈 날리고 입맛 버리고 할 수 있으니 일단 안전하게 된장자장면을 보통으로 두 개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등장한 된장자장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백 번 들어봐야 소용없습니다. 된장자장 등장이요!
ⓒ 정상혁
식탁 위에 놓여진 된장자장의 자태부터가 도저히 맛이 없을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판단에는 된장자장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 냄새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일반 식당에서는 단가가 비싸서 잘 사용하지 않는 초고버섯(화살표처럼 생긴 버섯)을 사용한 것부터가 이곳은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장면을 비비면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큼직한 해산물들과 주방장님의 손 크기가 짐작될 만큼 넉넉히 쓴 재료들을 보니 곱빼기로 시키지 않은 게 후회되기 시작합니다.

된장을 기름에 볶은 듯 해 보이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는 것이 청양고추의 매콤한 맛이 느끼함을 싹 가시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짝 위에 얹은 채 썬 오이 고명은 개운한 맛을 주고 이제 막 뽑은 뜨끈뜨끈한 면발의 쫄깃함이 된장자장의 맛을 한껏 돋워줬습니다.

말할 사이도 없이 정신없이 그릇에 얼굴을 묻고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보통도 그리 적은 양은 아니더군요.

막상 먹어보니 이 정도 맛의 된장자장면이 4000원이면 정말 겸손한 가격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호기심에 기자정신이 약간 더해져 용기를 내고 오마이뉴스 이름을 내세워 주방에 한 번 들어가 봤습니다. 반찬 나르시는 분 한 분에 달랑 일식집 주방장 옷을 걸친 된장자장면의 주인공인 주방장님이 열심히 짬뽕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된장자장의 비밀을 살짝 여쭈니 비밀은 "된장을 볶는 데 있다"는 말 한 마디뿐 나머지는 비밀이라고 하시네요.

▲ 청룡각 주방장님. 주방에서 일이 없으시면 홀에도 나오셔서 정리부터 청소까지 손을 거들더군요.
ⓒ 정상혁
서울에서 자장면 한 그릇 먹으러 가기는 너무 멀지만 요즘도 시꺼먼 자장면을 볼 때면 그 때 그 구수했던 된장자장면이 그립습니다.

▲ 지나다가 이런 이정표가 보이면 청룡각 근처에 계신 겁니다.
ⓒ 정상혁

덧붙이는 글 | 청룡각: 충북 괴산군 화양계곡 방향 37번도로 부흥사거리(043-832-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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