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검열 통해 편집권 침해
동덕여대 학보사는 즉각 성명을 내고 "학교 쪽의 사전 검열로 인해 기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10월 10일 제호 없는 신문을 발행했다"며 "그런데 이 같은 학보의 학내 배포를 실세처장들이 물리적으로 막으면서 활극이 벌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는 대학당국의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영 학보사 편집장은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학보를 폐기처분하고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학당국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며 "대학당국의 사전 검열이 없어질 때까지 학내 민주세력과 연대하여 제호 없는 신문 발행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을 지켜 본 하일지 교수는 "기자들은 신문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신문더미 위에 엎드려 울면서 저항했고, 실세들은 소리소리 치며 신문을 탈취하려고 했으니, 그 장면은 동덕 100년사에 남을만 하다"며 "비원칙이고 비상식적인 강권체제에 맞서 싸우는 학보사 기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손봉호 총장은 10일 담화문을 통해 "그간 학교는 왜곡된 학보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편집장 및 관련 기자들과 대화를 하고, 비판 의견뿐 아니라 상반되는 의견도 공정하게 제시하도록 권고했다"며 "그러나 학보는 이를 무시하고 학보형식을 빌어 일방적인 의견만을 대변하는 유인물을 발행하여 배포했다"고 학보의 편파성을 나무랐다.
이에 앞서 손 총장은 지난달 29일 당시 하일지 학보사 주간교수를 불러 ▲수습기자를 임명하면서 보고하지 않은 점 ▲학보가 발표한 여론조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 등을 들어 주간직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30일 학보사 주간을 해임시켰다. 이에 학보사 기자들은 주간교수 해임에 항의하여 지난 10일 제호 없는 신문을 발행하게 된 것.
대학당국 "학보사 여론조사는 명백한 사실 왜곡"
대학당국은 이번 학보 분쟁에 대해 민주화 과정에서 겪는 구성원들간의 단순한 갈등으로 보고 있다. 제왕적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된 체제가 들어서자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생기는 일시적인 진통이라는 설명이다.
이른바 '실세처장'으로 불리는 김병일 교무처장은 "이번 사태는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이해가 다른 구성원들간에 갈등을 겪으며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며 "독재에 몇 십 년간 짓밟힌 대학이 안정을 되찾고 정상화되려면 얼마간의 진통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처장은 "손봉호 총장의 학교 운영과 관련한 지난 학보의 설문조사 결과는 샘플 바이어스(sample bias)에 의한 명백한 사실 왜곡이며 허구"라고 규정했다. 표본추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 학보사는 지난달 26일 설문조사 결과 90여명의 교수 가운데 반 이상이 손봉호 총장의 학교운영에 낙제점을 주었다고 보도하고 사설을 통해 총장 퇴진을 요구했다.
이어 김 처장은 "학보사 보도와 달리 교수집단을 대표하는 정년 트랙에 있는 전임교수 137명 가운데 62%의 교수가 현 총장의 학교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주간교수가 새로 임명되면 학보사 기자들과 의논해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학보 발행을 위해 모든 지원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동대책위 꾸려 대학당국에 '맞짱'
한편 총학생회와 직원노조는 학보사 파행 운영과 관련하여 대학당국에 적극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또 경영학과 김성환 교수는 독재행정 퇴진을 요구하며 12일 오후 1시부터 교내에서 1인시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새해 총학생회장은 "대학당국이 저지른 상식 이하의 행동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학보사 기자들이 홀로 외롭게 투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학생회장은 이를 위해 "학생 여론을 모아 대책위를 꾸리고 '실세'들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노조 김동재 부위원장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우려스런 사태가 학교 안에서 벌어졌다"면서 "직원노조는 학보사 기자들의 기본 입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비합리적인 학교행정에 맞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