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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령이 내려다보인다.
ⓒ 김은주
▲ 단풍구경 나선 차량들로 가득한 44번 국도.
ⓒ 김은주
토요일(15일), 남편이 직장에 안 나가는 날이라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점심 먹여서 등산 데려 가려고 애들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아이들은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작은 애는 토요일 오후에 있는 어린이법회에 나가고 싶다고 하고, 큰 애는 한 주일 동안 텔레비전을 못 봤기 때문에 느긋하게 좋아하는 드라마나 실컷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언제 올 지도 모르는데 애들만 두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처럼 기다린 등산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남편 직장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여성회관 서예교실에서도 요즘은 모두들 등산 얘기만 했다. 대청봉에 안 갔다 온 사람과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며 내 옆자리 아줌마는 자신의 대청봉 정복기를 히말라야 정복기 만큼 거창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아직은 어른의 파워가 더 센 시기였다. 달래다가 도저히 안돼서 협박을 했다. 명분도 없는, 왜 혼내는지 이유도 없는 협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안 따라오면 혼내겠다고 해서 아이들을 겨우 데리고 나섰다.

양양에서 출발해 44번 국도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보이는 기암괴벽과 웅장한 산세에 환호성을 질렀다.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을 향해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정말 감탄할 만 했다. 우리 가족도 여행은 다닐 만큼 다녔는데, 우리나라는 거기가 거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상도에서 본 풍경이나 인천 강화도서 본 풍경이나 특별한 차이점 없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외국 방문객을 유치하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뭘 보여준다는 건지,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한계령을 넘어서면서 그 생각은 순간 사라졌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이었다. 이제 저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가을 정취가 물씬한 설악산.
ⓒ 김은주
▲ 한계령을 오르다
ⓒ 김은주
양양과 인제를 연결하는 한계령 정상에는 한계령 임시 휴게소가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차를 주차시켰다. 단풍구경을 나온 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은 휴게소 앞에서 오색 온천 쪽을 향해 내려다보고 있거나 사진을 찍고 등산의 피로를 커피 한 잔으로 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대여섯 시간 등산을 한 사람도 있을 게고, 몇 박 며칠 동안 설악산을 종주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모두들 고생 후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휴게소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 한계령 휴게소서 사먹은 먹음직한 옥수수
ⓒ 김은주
그 축제의 물결에 들떠 아이들에게 우선 옥수수를 사줬다. 억지로 데려온 만큼 비위를 맞춰줘야 할 것 같아서. 옥수수를 하 개씩 물려주자 아이들은 한계령 휴게소서 올라가는 등산로를 향해 잘 올라갔다. 그런데 내가 좀 이상했다. 등산로 흙길이 시작되기 전 계단을 올라가는데 몸이 무겁고 힘이 들었다. 계단을 몇 개 오르지도 않았는데 힘들어서 못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운동을 너무 안 해서 그런가,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올라갔다.

역시 운동부족이었다. 20분 정도 올라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가벼워지더니 1시간쯤 올라가서는 대청봉까지도 갈 수 있겠다, 하는 호기까지 생길 정도였다.

▲ 설악산을 오르다 발아래서 발견한 예쁜 단풍잎
ⓒ 김은주
올라가고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좀 의아하게 바라봤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 시간에 올라가는 거지, 하는 얼굴들이었다. 거기다 어린애까지 둘 데리고 있고, 또 나는 등산복도 입지 않고 스웨터를 걸친 채 과자 한 봉지 들고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내가 전쟁터에 총도 없이 나온 군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계령에 오르는 길은 길이 좁고 가팔랐다.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었는데 단화를 신고 온 큰 애는 몇 번 미끄러져서 내심 아슬아슬했다.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남들 등산한다니까 거름지고 장에 따라나선 꼴이었다.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었다. 매표소 입구 안내판에 적혀 있던 갖춰야 할 등산장비, 장갑 지팡이 랜턴 등산화와 등산복 중 어느 것 하나 갖추지 않고 올라가고 있었다.

거기다 마음의 준비도 부족했다. 큰 애는 올라가는 내내 그냥 도로 내려가자고 보챘다. 남편은 저만큼 올라가고 있고, 작은 애도 뒤질세라 잘 올라가고 있으며 나 또한 몸이 가벼워져서 올라갈 만하다는 생각인데 큰 애만 등산에 여전히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조르다가 안 되니까 혼자서 내려가겠다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거의 한 시간을 올라왔는데, 그 먼 길을 혼자서 내려가기는 힘들고, 중간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날 지도 모르는데 큰 애는 자기 고집을 보여주고자 하는 건지 내려가고 있었다. 쫓아가서 잡아오고 싶었으나 고집만 피우면 만사 된다는 생각에 길들여질 것 같아 내려가게 내버려두고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봤는데 큰 애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심 걱정이 돼 내려갈까, 하는데 올라오고 있었다.

▲ 정상에는 이미 단풍이 진 자리에 낙엽이 구르고 있다.
ⓒ 김은주
▲ 설악산 고지인 대청봉은 아니지만 멀리까지 시야가 넓어졌다.
ⓒ 김은주
내려오는 사람들한테 정상이 멀었느냐고 물었다. 정상이라니, 도대체 무슨 정상을 묻는 건지 의아해했다. 그들의 정상은 아마도 대청봉이나 그것도 아니면 귀때기청봉을 말하는 것인데, 그저 한 번 올라가보는 우리 가족의 정상은 동해가 보이는 지점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 오합지졸인 우리가족을 이끌고 있는 남편이 생각하는 정상이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던 것이다. 어디쯤 가야 바다가 보이고, 바다가 보이는 곳이 정말 있기나 한지 그 어느 것 하나 모른 채 우린 무모하게 그냥 올라갔다.

▲ 매표소 지붕 뒤로 해가 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 김은주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설악산의 굽이굽이 골짜기와 봉우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이미 날도 저물어가고 큰 애는 계속 그만 가자고 조르고 있으니 남편은 더 이상 올라갈 용기가 없었나 보다. 그곳이 정상이라고 이야기 했다. 거대한 산들이 굽이굽이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설악산 아래쪽은 아직 초록이 대세인데 정상에는 단풍이 지고 차가운 바람에 나뭇잎이 낙엽이 돼 다 떨어져 있어 초겨울 느낌이 들었다. 다녀와야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대청봉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여기까지 올라오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려오는 길은 확실히 가벼웠다. 그냥 내려와졌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싱겁게 내려왔다. 올라갈 때 그렇게 칭얼거리던 큰 애가 조용히 내려오니까 세상이 조용해졌다. 외국인도 보였다. 우리나라는 볼 게 별로 없어, 거기가 거기야 하는 말을 한계령을 오르지 않고 했던 말인데, 우리나라에는 설악산이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히 올만한 곳이야로 바뀌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고 아는 만큼 생각하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 설악산 등산을 안내하는 지도 앞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 아저씨는 설악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알고 있었다. 안 다녀본 능선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길이 특히 아름답고 어느 길로 가면 어디가 보이고, 어느 능선은 애들 데리고 가기에 좋고를 다 알고 있었다.

“공룡능선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기 가면 설악산 전체가 보이고 진짜 멋지긴 한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 갈 것 같아요.”

설악산 종주를 한계령 휴게소에서 마친 아저씨는 등산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생각하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이었다. 우리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그 아저씨의 산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나마 맛본 기분이다. 짧은 등산이었지만 설악산이 내게 이상한 열정을 피웠는지 이런 결심을 하게 했다.

‘내 평생 꼭 한 번 설악산을 종주하리라.’

▲ 설악산은 아름다운 단풍과 기암괴석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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