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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한계령으로 단풍 구경 갔다 왔는데, 하산할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산에 있을 때 본 오렌지 빛 노을이 한계령 휴게소에 당도했을 때는 어둠으로 바뀌었다. 집이 비록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양양읍이지만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저녁 준비할 기운이 내겐 없었다.

"너희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잘 모르겠어."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이나 콜라, 치킨,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아이들인 만큼 주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뭐 먹을래?"

남편도 특별하게 먹고 싶은 건 없다고 했다. 메뉴 선택은 내 몫으로 돌아왔다.

"할 수 없네. 그때 먹었던 순대볶음 먹으러 가자."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므로 그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의외로 좋아했다. 매콤하면서 쫄깃쫄깃한 곱창과 순대가 아이들의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 맛있는 섭국.
ⓒ 김은주
"섭국 집 맛있는 데 있는데, 한 번 먹어볼래?"

섭국이 뭔지는 모르지만 남편이 몸에 좋다고 적극 추천했다. 메뉴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남편은 섭국이고, 아이들은 순대볶음 인데 내 의견에 따라 메뉴가 정해질 상황이었다.

"양양에서 굉장히 유명한 집이야. 안성기씨도 다녀갔어."

안성기씨가 다녀갔다는 말에 결정적으로 오케이를 했다. 안성기가 누군가,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내 우상이었다. 나의 영원한 '오빠'가 다녀간 음식점인데 한 번 가봐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서 섭국을 먹게 됐다. 내 생전 처음 먹어본 섭국. 자연산 섭국 집은 전국에서도 몇 집 안 된다는 걸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넷서 섭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가 간 '오산횟집'은 전국에서도 섭국으로는 가장 유명한 집이었다. 섭국이 강원도 토속음식이니만큼 양양 동호리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이 집이야말로 원조격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섭국을 제대로 하는 집에서 먹어보게 돼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섭국을 두 그릇 시켰다. 아이들도 생각해서 세 그릇 시켜야 한다고 했더니 주문을 받는 아저씨가 두 그릇만 시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만큼 양이 많다고 두 그릇을 시키게 했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고 싶어 하는 게 장사하는 사람들 마음인데 손님의 입장에서 배려해주는 아저씨가 참 좋아보였다.

두 그릇을 시켜놓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애들이 어디선가 인진쑥차를 가져왔다. 이 집은 커피 대신 인진쑥차를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었다. 약간 쓴 쑥 냄새가 나는 따뜻한 인진쑥차를 마셨더니 갑자기 몸에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벽에는 섭에 대한 안내 글이 액자 안에 끼어 있었다. 섭이 항암효과도 있고, 빈혈에도 좋고, 또 어디 어디에 좋다는 그런 내용의 안내 기사였다.

마침내 섭국 도착. 홍합처럼 생겼는데 홍합살 보다는 단단했다.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고 했다. 잘게 자른 홍합이 들어간 된장국 같았다. 거기에 계란도 풀고 부추도 잔뜩 들어가 바다 음식 특유의 비린내가 없고 담백해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양은 정말 두 그릇을 시켰는데 어른 둘 아이 둘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양이 많았다. 거기다 아저씨는 밥도 네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 집에서는 밥이던 섭국이던 필요하면 리필이 가능했다. 배가 부를 때까지 얼마든지 더 달라고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한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콜라가 리필이 된 적이 있었지만 음식점서는 리필 되는 집은 처음 봤다.

섭국은 함께 나온 부추김치와 궁합이 맞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것저것 아무 거나 다 먹지 못하고 음식에 대해서 꽤 까다로운 사람인데, 처음 먹어본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깨끗하게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났을 때 참 기분이 좋은데 우리를 더 기분 좋게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계산을 끝내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마당 한 구석에 그물이 보였다.

"저 그물로 직접 잡는 가 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당에 서있는데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하얀 색의 귀여운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우리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를 흔든다는 건 반갑다는 뜻이야."

개는 무서워하면서 개에 관한 책은 많이 읽어 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큰애가 잘난 척 했다. 개가 갑자기 우리 앞에서 벌렁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배를 보인다는 건 경계심이 없다는 뜻이야."

이번에는 남편이 아는 척 했다.

"이 개 진짜 성격 좋다."

개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한 경계심을 갖고 짖어대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보이지 않고 반가워하고 살갑게 구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록 개지만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개는 누워서 배를 드러낸 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성격이 좋아도 너무 좋은 개라며 오는 내내 개에 대한 얘기만 나눴다. 즐거운 저녁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인심이 넉넉한 주인, 그리고 결정적으로 살갑게 구는 개가 있어 더욱 행복한 저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섭이란, 자연산 홍합으로 양식 홍합에 비해 껍질이 두껍고 육질이 단단하며 맛이 월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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