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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표지.
ⓒ 한솔
미시사는 역사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관점이다. 그 시대의 왕조나 큰 사건을 중심으로 훑어가는 거시사적 관점과는 달리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먹고 무엇이 유행이었는지를 고찰한다. 어쩌면 자료에 파묻힌 고루한 작업이 될 수 있는 미시사가 다듬어져 대중 앞으로 다가올 때는 당시의 시대상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다. 미시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책 중 <조선의 뒷골목 풍경>과 <불량직업 잔혹사>가 보여주는 당대 직업의 생활관은 비교해 봄직 하다.

<불량직업 잔혹사>는 영국의 역사를 훑어 내려가며 천하고, 괴롭고, 위험한 직업들에 대해 열거한 책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단지 당시 직업에 대해 얘기한 책은 아니지만 의원, 땡추, 술집장수, 기생, 가축 도살업, 별감 등의 역사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어 <불량직업 잔혹사>와 비교해 봄직 하다.

1. 그들을 보는 관점

<불량직업 잔혹사>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마지막에 이렇게 축약되어 있다.

"우리는 여러 시대에 걸친 최악의 직업들을 담당한 그 모든 얼굴 없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세계를 형성시킨 주인공이다." (359쪽)

그렇다면 <조선의 뒷골목 충경>은 어떨까? <불량직업 잔혹사>와는 달리 앞쪽에 나와 있다.

"이런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이야말로 내가 알고 싶었던 과거 인간들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이런 것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17쪽)

당시 직업은 곧 계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역사 속에서 조명 받지 못한 것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더욱 불합리해 보일 수밖에 없다.

2. 지배층을 뒷받침 한 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한양에서 치외법권 지대를 이루며 가축의 도살을 독점한 반촌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소를 잡는 업으로 천대를 받고 한양 안에서도 격리되었다는 점에서 <불량직업 잔혹사>에서 언급하는 무두장이와 비견할만하다. 하지만 성균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다는 점에서 기사들의 뒷바라지를 한 갑옷담당종자와 비견 할 수도 있다.

단, <불량직업 잔혹사>에서 언급한 무두장이는 혐오스러운 동물의 생가죽을 힘들게 무두질 한다는 점에서 최악의 직업으로 꼽히고 갑옷담당종사자는 불량스럽지 않은 이름의 직업 같아 보이지만 실은 주인이 말을 타며 갑옷 속에 배설해 놓은 대소변을 닦아놓는 게 일이었다. 이렇게 지배층을 뒷바라지한 직업은 이들만이 아니었지만 두 서적에서 이들은 좀 더 극적으로 상세히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살펴볼만 하다.

3. 병을 다루는 직업은 고달프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의 첫 장은 의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대는 의원을 천시한 사회였고 심지어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과 같은 명의에 대해서도 그 기록은 매우 적다. 책에서 지적하듯이 소설과 드라마에서 묘사한 허준의 행적은 상상력의 소산을 뿐이다. 대다수의 의원들은 보잘것없는 약장수로 시작해 이름을 얻어나간 경우도 있고 돌림병을 막기 위해 고생한 의원도 있다. 그럼에도 정약용은 의술을 폄하했고 백성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의술을 비천한 기술로 폄하하는 이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불량직업 잔혹사>에 나오는 영국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평소에는 주로 이발을 하는 것으로 수입을 올렸던 이발외과의, 약제를 공급하기 위한 거머리잡이, 돌팔이 의사의 조수 토드 이터, 흑사병이 창궐한 도시를 다녀야 했던 검시원, 해군 군의관의 조수 등은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병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되는 직업군이었다. 오늘날은 의술이 의학으로 격상되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는 힘들기 짝이 없는 직업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4. 미시사는 역사도서의 미개척 분야

물론 <조선의 뒷골목 풍경>과 <불량직업 잔혹사>는 '풍경'과 '직업'이라는 말로 분명히 차별되는 책이다. 여기서 미시사가 어디까지 얘기될 때 대중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주목된다. 조선이나 영국 빅토리아 왕조시절 농부의 삶을 줄줄이 얘기한다고 하면 누가 이를 흥미롭게 볼 것인가?

결국 두 책 모두 시대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부분을 집중 조명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때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분야에서도 미시사는 사료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재발견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미시사는 '하루 밤에 읽는 무슨 역사'류의 극단적 거시사 관점의 책을 마땅찮게 보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배고픈 소재일 수밖에 없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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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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