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만큼 나무를 많이 올려다보는 계절이 있을까? 새 봄에는 나무의 싹을 보며 희망을 품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생명력에 도취되어 나무를 본다.
정작 나무를 ‘느끼는’ 계절은 가을이 아닌가 싶다. 말없는 가르침으로 숙연한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 그 많던 잎사귀들을 훌훌 떠나보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빈 가지로 서서 다시 휘파람 불며 겨울을 맞는 나무.
그 나무를 사랑하며 한 생애를 나무 곁에서 보낸 나무 친구 '우종영'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자꾸만 나를 불러 세운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면서 세상 속에 나무들의 대변자로 나선 사람 우종영.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 나오는 몇 천 년씩 산다는 은행나무 이야기며 평생에 단 한번 꽃을 피운다는 대나무의 이야기 앞에 서면 아무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인 '휴식'이라는 한자어도 나무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글자이다. 나무 옆에 사람이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휴식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자가 꿈이었던 저자는 삶의 질곡을 헤쳐 나오다 죽음을 준비할 때 들린 나무의 속삭임에 새로운 삶을 설계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 속에 그 장면이 등장할 땐 나도 잠시 나무를 가슴에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말없이 서서 아무런 불평 없이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나무. 내가 사는 이 작은 학교 주변은 사방이 나무이다. 그래서 나는 나무만으로도 부자이다.
멀리 보이는 나무들의 동네에는 벌써 가을바람이 인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가을바람에 갈 길을 재촉하는 낙엽들은 남은 잎사귀들에게 고운 단풍이 들기를 부탁하고 한 줌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뿌리를 향해 돌아간다.
이 가을엔 예민한 귀를 가진 예쁜 우리 아이들에게 나무들이 뭐라고 말하는 지 듣고 오라고 숙제를 내주고 싶다. 내 눈보다 훨씬 밝은 아이들이니 나무들이 말하는 것도 손짓하는 것도 잘 알아들을 테니.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 학교의 도토리 할아버지 나무를 보내기 전에 우종영님에게 우리 나무를 한번쯤 보여 드리고 상담을 받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어디가 아파서였는지, 수명이 다 해서였는지 나무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분에게 속 시원한 얘기라도 들어볼 걸.
도토리 할아버지 나무는 가을이면 가장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서 나와 눈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이젠 그 자리를 키 큰 코스모스들이 겨우 메우고 있다.
우직하게 나무만 보고 살아온 한 사람의 나직한 목소리가 나무들 뒤에서 들리는 책,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스스로는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는 나무의 삶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비유하며 따스한 시선으로 엮어낸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나무들의 언어를 한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무가 보여주는 삶의 지혜를 하나만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나무라는 믿음직한 친구를 심을 수 있는 정원을 꿈꿔본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순간에 고운 단풍이 되었다가 가을바람에 화르르 옷을 벗어버리고서 시원스레 겨울을 보내는 나무라는 멋진 친구의 조용한 노래가 들릴 듯한 이 책의 조용한 울림이 어느 때보다 멋진 가을을 선물했다. 나무의 덕을 한 가지만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