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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국서예포럼이 주최했던 '조선유학자 유묵특별전'(서울역사박물관)에서의 위작(僞作) 의혹 서예작 15점 철수, 장기간 지루하게 끌어온 이중섭 그림 위작 시비에 대한 검찰의 대량 가짜 판정 등 우리 동서양 화단(畵團)이 거듭되는 위작 시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역사박물관과 일본 민예관이 공동 주최한 '반갑다! 우리 민화' 전에 전시 중인 작품 일부에 대해 민화 전문가들이 심각하게 제기한 위작 의혹에 제대로 된 토론의 자리도 마련되지 못한 채 전시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90년대 세간의 이목을 끈 위작 시비였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시비는, 법원의 진품 판정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내 그림을 내가 모르겠느냐, 분명히 내 그림이 아니다"고 거듭 주장했고 그 진실은 아직도 의혹에 묻혀 있다.

천경자 화백의 창작 세계를 파괴했고 끝내 "세태에 환멸을 느낀다"며 작가가 붓을 놓게 한 미인도 위작 시비에서도 보듯이, 위작 논쟁은 결코 한때의 뉴스거리로 넘길 일이 아니며 한 시대의 문화적 양심지수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융합한 독특한 화폭을 그려내던 천경자라는 걸출한 화가를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로 공공연히 거론했던 이 사건은, 예술품의 진위 판정을 법에 맡기는 일의 한계성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일단 법의 판정이 내려지면 예술은 '일사부재리'라는 법적 편의성에 감금된다. 무한 가치의 창작 세계가 졸지에 유한 가치의 법조문 틀에 묶이고 그 후로는 학예적 논의조차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위작 시비의 이러한 문화적 중차대성을 고려할 때 현재 전시 중인 서울역사박물관의 민화 특별기획전 '반갑다! 우리 민화'에 걸린 작품 중, 이태호(명지대) 교수를 비롯해 익명을 요구하는 관계 전문가들에 의해 위작 의혹이 제기된 3~4점의 민화 작품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의 선명한 후속 토론의 자리가 없는 것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위작 주장에 대해 적극적인 학문적 토론의 장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법적 조치'를 검토했다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입장 표명은 심히 유감스럽다.

유묵특별전 당시 위작 의혹이 제기된 작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 끝에 전시 6일만에 15점이라는 많은 작품을 내렸던 것은, 전시 기획 측의 수치가 아니라 전시되는 나머지 작품들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이는 용기 있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렇듯 이번 위작 시비도 민화 전문가 몇 사람의 토론이면 매우 쉽게 판단이 내려지고 세련된 모양으로 마무리 되었을 일이었으나, 서울역사박물관측은 논의 및 취재 자체를 완곡히 사절하는 입장을 보였다.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 문화재전문위원 황평우)에서 세간의 위작 시비에 대해 공식 입장표명을 요청했음에도, 박물관측은 민화가 제작된 연대를 20세기 후까지 후퇴시켜 수정 게시하였으나 그림의 위작 의혹 자체에는 부정하는 답변을 25일 문화연대에 보냈다.

일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품을 비롯한 일본 소재의 민화를 주 전시물로 삼은 것을 의식해 정한 것으로 느껴지는 전시 타이틀인 '반갑다! 우리 민화'가 우리 민화 컬렉션의 진정한 뿌리가 일본에 있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여론이나, 전시회 도록 겉표지에도 일본어로 '기쁘다! 조선민화'라고 표기하여 관람객들에게 일본의 작품 대여에 극진한 문화적 사례를 한 인상을 준다. 이는 마치 우리 민화 또는 민화 이론 연구에 일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없이는 민화를 말하기 곤란하다는 쪽으로 대중 인식을 오도할 우려도 있다.

역사박물관 측은 '한일 (문화)관계'를 언급하며 이 작품들의 진위에 대한 논의 자체에 한일(문화)관계 손상을 염려하고 있으나, 위작 의혹이라는 학예적 문제 제기가 한일(문화) 관계에 손상이 된다는 논리는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나기 컬렉션의 수준이 국내 소장품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아니란 것은 이미 국내 미술사가들의 오랜 중평이다.

▲ 위작 논란이 일고 있는 문자도 信(신)
ⓒ 서울역사박물관
당초 이 전시는 야나기 수집 민화로 전시를 기획했으나 야나기의 수집품만으론 전시장을 채울 수 없어 여타 일본 내 소장품을 일본민예관이 추천하는 형식의 기획 과정에서 민화 작품의 진품 감정, 작품 편년 등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문제가 된 3~4점 특히 3점의 그림에 대해 대부분 민화 관계 전문가들이 위작 의혹에 동의하며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신(信)자 문자도의 경우 기자 정도의 초보적인 안목으로도 위작 의혹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그림으로 전시장에서 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박물관 측은 일본민예관의 진품 의견 회신을 근거로 위작 의혹을 외면하고 있다.

충분한 토론의 자리가 있어야

이번 위작 시비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일반 시민은 위작 시비 중인 작품인지도 모르는 채 전시장을 찾고 있다. 가장 심각한 의혹을 받는 문자도의 경우, 관람객에게 작품 해설을 하고 있는 박물관 문화유산해설사들을 통하여 토론 전에라도 위작 논란 중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교육 차원의 봉사였으나 이런 배려는 없었다.

전시회 개막 인사말에서 역사박물관 스스로 주장하듯 이 전시가 "세계적 도시 서울의 위상에 걸맞게" 기획된 전시라면 미처 예상치 못하게 돌출된 위작 시비에 대한 대처도 세계적 도시의 위상에 맞아야 했다. 일본민예관, 구라시키민예관, 시즈오카시립미술관, 고려미술관, 덴리대(天理大) 참고관 등 일본 내 소장품이라 하여 위작 시비가 '한일(문화) 관계'를 악화시킨다며 위작 의혹을 덮으려는 듯한 서울역사박물관의 태도는 오히려 세계적이지 못하다.

이번 전시는 이달 30일이면 끝난다. 우리 학자들의 심각한 위작 전시 의혹도 전시를 끝으로 잠잠해질 것으로 보이나, 이 위작 시비가 적절한 토론 없이 유야무야 끝난다면 서울역사박물관의 불명예는 물론 박물관이 염려하는 한일(문화) 관계에 긍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한일간의 문화 균형을 깨뜨릴 것이다. 이는 한일간 무역 역조에 버금가는 심각한 문화적 무역역조다.

민화는 근본적으로 우리 민중의 감성을 표현한 우리의 그림이다. 다들 몰라도 어미는 자식을 알아본다. 자식을 보는 어미의 감성으로 우리 민화를 알아보는 우리 학자들의 절절한 민화사랑에서 나온 위작 의혹을 단순히 전시된 그림의 악의적 매도로 치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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