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 : 명.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
미리 일러두자면 나는 음담패설을 꽤 즐긴다. 대화의 깔때기 이론이라는 것이 있어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든 대화는 결국 한 가지 주제로 수렴되는데 나와 친구들의 깔때기는 거의 늘 섹스다.
다양한 성적 경험과 환상들이 오가고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누구누구들을 두고 제멋대로 품평회를 열기도 하며 섹스에 관한 소문들을 확인하기도 한다. 밤이 깊도록 우리의 음담패설 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내 머리 속이 얼마쯤 헐거워지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대체로 음담패설의 순기능을 믿는 편이다. 이를테면 음담패설은 여전히 '임신은 난관의 팽대부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교육을 보완하는 실질적인 정보 교류일 수 있고 정숙 콤플렉스('자고로 여자는 몸가짐이 정숙해야 한다'고 할 때의 정숙)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어떤 사람과 급속히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음담패설에 관한 이몽(異夢)들
"어린 나이에 직장에 들어갔으니 모든 게 낯설고 어렵지 않았겠어. 부장이라는 작자는 술만 마셨다하면 해괴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수작을 걸곤 했지.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은 머리통이라도 한대 갈겨주지 못했던 게 분해." - ㄱ씨(여·50)
"너도 알다시피 나도 야한 이야기 좋아하잖아. 그런데 나와 가깝지도 않은 남자가 친한 척한답시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너무 찜찜하고 싫어." - ㄴ씨(여·26)
"같은 남자인데도 불편할 때가 있지. 분위기 파악도 못하면서 자기가 엄청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떠드는 사람들 정말 싫은데 나도 모르게 신나서 동조하고 있을 때가 있어. 그런 게 남자답다는 인식이 내게도 있는 것 같아." - ㄷ씨(남·28)
"예전에 다니던 회사 이사가 '여사원들이 예쁘면 안 된다'는 거야. 무슨 말인가 했는데 여사원들이 예쁘면 영업 나간 남자 직원들이 일찍 사무실에 들어오려고 한다는 말이었어. 그땐 그 말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고 그냥 웃고 넘겼더랬어. 결국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 - ㄹ씨(여·25)
나 역시 어떤 음담패설은 불쾌하다. 여자를 '구멍'이나 '조개'로 부르며 함부로 말하거나(그럼 당신 앞에 앉아있는 나는 뭔가?), 지나치게 노골적인 표현을 쓰거나, 자신의 성적 경험을 과장해 떠벌리는 경우가 그렇다.
비단 내용뿐만 아니라 상황도 중요하다. 아무리 음담패설을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의 음담패설은 짜증스러울 수 있다.
문제는 음담패설 그 자체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음담패설을 하는가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음담패설은 리비도를 촉진하기도 하고 분노 게이지를 급상승시키기도 하는데 후자의 경우 명백한 성희롱으로 간주되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런 말을 하면 "말 한마디에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며 핀잔을 주거나 "이 정도로 기분 상해서는 사회생활 못 한다"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야말로 "너 나 잘 하세요"다.
당신들이나 잘 하세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말도 하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무심코 뱉은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말은 이유가 될 수 없다. 1997년 시행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은 물론 성적 사실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언어 행위까지도 성희롱에 속한다.
성희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듣는 사람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는가 하는 것으로(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느꼈을 감정을 함께 고려한다) 아무리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명백한 성희롱 행위가 된다.
사람의 감정이라 불쾌함의 기준은 제각각일 수 있다. 그러나 저마다 상이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관계 맺는 것이 사회이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함께 살기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를 실행하는 것은 물론 말처럼 쉽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원칙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농담 한 마디 편히 건네지 못할 만큼 세상이 팍팍해졌다고 푸념하지만 나는 폭력적 언사와 농담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은, 피해자가 성희롱을 문제 삼을 수 있을 만큼은 세상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편견에 기대어 편히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변화조차 야속할지 모르겠으나 다름이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되고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살길 원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부족해보이기만 한다.
인권과 비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질수록 조심해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늘어난다. 이런 변화가 다소 귀찮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