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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 김익수 일병(대구 북구), 이정훈 일병, 문원훈 일병(경기 시흥), 박광선 상병(전북 부안), 이준우 상병(서울 성북), 이관홍 상병(대전 유성) 부모님 당신의 아들들, 건강히 국방의 의무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김익수 일병(대구 북구), 이정훈 일병, 문원훈 일병(경기 시흥), 박광선 상병(전북 부안), 이준우 상병(서울 성북), 이관홍 상병(대전 유성) 부모님 당신의 아들들, 건강히 국방의 의무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 이승열
아침 일찍 큰언니와 형부가 일산에서 눈곱도 떼지 못하고 달려왔다. 서둘렀는데도 벌써 일곱 시가 넘었다. 토요휴무제에 맞춰 아침 9시부터 면회가 가능하다 했다. 가는 길 어디쯤 시장에 들러 떡과 맛탕과 호두과자를 사면 준비는 완벽하다.

가평을 지날 무렵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고모, 어디야." 다시 춘천 부근에서 전화를 받았다. "고모, 아직 멀었어?" 양구 중앙시장 입구에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떡 없는 면회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떡은 반드시 사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도시락 대신 빵과 떡을 가지고 가서 별명이 빵돌이, 떡돌이었던 조카였다.

양구 시장 진미식당의 화로, 떡도 팔고 순대도 팔고 밥도 팔았다.
양구 시장 진미식당의 화로, 떡도 팔고 순대도 팔고 밥도 팔았다. ⓒ 이승열
양구시장 떡집은 30분쯤 기다려야 떡이 나온다고 했다. 더 이상 떡집이 없는 북쪽으로만 가니 어떻게든 떡을 구해야 하는데, 하나 더 있다는 떡집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큰언니는 어제 절에 갔을 때 불단에 올려졌던 떡을 안타까이 기억했다. 순대와 떡과 음식을 함께 파는 진미식당에는 오래된 화로 위에서 찌개가 끓고 있었다.

방금 쪄낸 듯 가위로 쑥떡 쑥떡 썰어 노란 콩고물을 묻혀 주는 쑥떡에는 쑥의 섬유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도시에서 시금치로 색깔만 내는 쑥떡하고는 질이 달랐다. 쌀을 잘 일지 않았는지 가끔씩 '뿌지직' 소리를 내며 당혹스럽게 만드는 돌을 뺀다면…. 결국 호두과자와 고구마 맛탕을 파는 곳은 양구읍내 중앙시장 아무 곳에도 없었다.

조카아이는 호두과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 실망하고 말았다. 작년 여름, 입대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가 훈련받으면서 얼마나 눈에 아른거렸나를 계속 얘기했다. 천안에 택배라도 부탁해 준비해 갈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군인들은 별게 다 먹고 싶고, 별것에 다 집착한다.

작년 7월 조카에게 전화가 왔을 때, 마침 머리를 감고 있는 중이었다. 입대날인 줄도, 춘천 훈련소 바로 앞인 줄도 모르고 비누거품 때문에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머리를 다 감고 동생의 전화를 받고 그 아이가 춘천에서 부대로 들어가기 직전 전화했음을 알았다.

왼쪽의 정훈과 오른쪽의 원훈은 중,고교 친구로 동반 입대해 이곳까지 함께 왔다 한다.
왼쪽의 정훈과 오른쪽의 원훈은 중,고교 친구로 동반 입대해 이곳까지 함께 왔다 한다. ⓒ 이승열

한참을 달리다 면회 온 수원아가씨를 태우러 다시 방산에 돌아가니 여섯명 모두가 모여있다.
한참을 달리다 면회 온 수원아가씨를 태우러 다시 방산에 돌아가니 여섯명 모두가 모여있다. ⓒ 이승열
약속 장소로 잡은 방산면사무소 앞에 조카는 없었다. 방산면사무소 주위에는 개구리 군복을 입은 군인 아저씨들뿐이다. 식당에도 정류장에도 공중전화에도 군인 아저씨들뿐이다. '혹시 이관홍 상병 아세요'를 외치며 두 팀으로 나눠 식당에도 들어가 보고, 피시방에도 들어가 보고, 여관 예약 확인도 해봤으나 행방이 묘연하다.

금방 전화벨이 울린다. 손바닥만한 거리, 군인 아저씨들뿐인 거리에서 지가 뛰어봤자 벼룩이지. 양구에서 방산면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눈이 빠지게 고모들을 기다리던 조카와 감격적인 해후를 했다. 여름을 지난 조카의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봤으니 1년 반만이다.

동기 한 명과 함께 올 것이란 말과 달리, 조카를 포함해 여섯 명의 군인 아저씨들이 힘차게 인사한다. "고모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지러워라. 머리 속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른 넷, 군인 아저씨 2명 몫의 음식을 준비했으니 미리 집에서 준비한 것으로는 점심 한끼밖에 되지 않는다.

가지런히 정리된 여섯 켤레의 군화에 그들의 젊음이 묻어 있다.
가지런히 정리된 여섯 켤레의 군화에 그들의 젊음이 묻어 있다. ⓒ 이승열
민박집 신발장에 여섯 켤레의 군화가 가지런히 정리되고 급하게 정육점으로 달려간다. 작년, 마나님을 잃고 중풍을 맞아 불편한 몸으로 혼자 사는 일흔 일곱의 '춘천민박' 노인은 거실 귀퉁이 이부자리에 앉아 우리들의 수선스런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거실 귀퉁이가 노인의 잠자리라 한다. 일주일 내내 정적뿐이었던 민박집의 때 낀 그릇에 윤기가 돌고, 일주일 동안 쓰지 않았던 압력밥솥이 김을 뿜기 시작한다.

조카와 함께 외박 나온 네 명의 군인들은 신세 지는 것이 미안해 따로 2층에 방을 한 개 더 잡았다고 했다. 폐 끼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밥만 조금 얻어먹고 자기들 방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려고 했는데 어디 인생사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여섯 명의 군인이 문 밖에 나오지 않고 뒹굴거리며 오락에 디비디 화면에 열중한다. 방 값으로 귀대해서 맛있는 것 사먹으면 좋을텐데…. 아까운 돈만 날렸다.

10월 19일 준공 18년만에 완공된 평화의 댐. 가을빛이 역력하다.
10월 19일 준공 18년만에 완공된 평화의 댐. 가을빛이 역력하다. ⓒ 이승열
얼마 전 완공됐다는 평화의 댐에 가을빛을 보러 가자고 꼬드겨도 군인들은 모두 싫단다. 그곳에 가서 열심히 삽질을 한 탓인지 그곳 지리를 다 외우고 있단다. 평화의 댐에 다녀오는 사이 민박집 옆방에는 다른 군인들이 들었다. 면회 온 사람 없이 군인들끼리만 방을 잡고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삼겹살 구운 것과 밥을 권하니 쑥스러워 잘 받지를 못한다.

엑스박스로 오락을 전수받는 군인아저씨. 어린 한진호군에게 외박나온 여섯 군인 모두가 전멸!
엑스박스로 오락을 전수받는 군인아저씨. 어린 한진호군에게 외박나온 여섯 군인 모두가 전멸! ⓒ 이승열
이곳 군인들은 늘 돌아가며 외박을 나와 방산면사무소 근처에서 빵도 사먹고, 치킨도 사먹고 족발도 사먹고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란다. 방산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외박일망정 정말 '사제 공기, 사제 밥, 사제 풍경'이 모두 그리운가 보다.

군인들이 서로 모르는 군인을 부를 때 자기들끼리도 '아저씨'하고 부른다고 낄낄거리며 조카가 가르쳐준다. 역시 온 국민의 '군인 아저씨'가 맞다. 서로 뭘 빌릴 때에도, 뭘 물을 때에도 젊은 군인들은 서로를 '아저씨' 그렇게 불렀다. 우리도 조카를 '아저씨'라고 불러본다.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건빵을 가져다주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우리들이 군대 건빵 맛을 궁금해 하니까 그 또한 신기해 하며 얼마나 맛이 없는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7월 즈음 조카는 제대를 한다고 했다. 이층의 방은 그대로 남겨둔 채 같이 밤을 지샌 군인아저씨들의 얼굴에 젊음의 고뇌가 잔뜩 묻어 있다.

오후 '춘천민박'에 그들을 남겨놓고 돌아서는데, 예전처럼 마음이 무겁지 않다. 여섯 명의 군인이 함께 있었고, 아직은 가을이란 것이 많이 위안이 된다. 3년 전 겨울 김화로 제일 큰조카 면회를 갔을 때는 어두워진 거리에 홀로 남겨두고 오는 것이 가슴이 아파 두고두고 뒤를 돌아보며 서울까지 왔었다.

이틀 내내 내 마음을 붙잡은 전방의 젊은 연인들. 그들은 오랜시간 광덕여인숙 툇마루에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이틀 내내 내 마음을 붙잡은 전방의 젊은 연인들. 그들은 오랜시간 광덕여인숙 툇마루에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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