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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주인의 말은 분명 설득이었지 결코 위협은 아니었다. 차예량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았다.

'우선 저 자가 뭘 바라는지 알고 볼 일이다.'

차예량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의 공격적인 태도를 버리고 정중한 태도로 바꾸어 말했다.

"먼저 계화를 보내주시오. 아녀자에게 이런 자리는 불편하지 않겠소?"

객잔주인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하인을 향해 손짓을 해 보였다. 하인은 계화가 나가도록 문에서 몸을 비켜 주었다. 계화가 나간 뒤 차예량은 자세를 편히 고친 후 객잔주인에게 따졌다.

"대체 바라는 바가 무엇이오?"

객잔주인은 차를 마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뭘 바라고 이러는 건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라고나 할까… 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질없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인가? 차선달은 의주에 상당한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심양에 가겠다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뭘 어쩌겠단 말이오?"

객잔주인은 차예량의 질문과는 동떨어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조선조정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오랑캐들이 침입해 들어오자 한번 싸워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대신들은 갈팡질팡 거렸고 임금은 홍타이지의 발아래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이런 얘기를 들어보았는가? 영남의 몇몇 유생들은 조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고 하더군."

영남의 유생들은 인조반정이후 서인이 집권하자 중앙관직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차예량으로서는 객잔주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건 그들의 일이고 지금의 일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오?"

차예량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객잔주인은 그런 차예량을 분위기로서 점점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 나라가 이러하다! 그런데 심양에 잡혀간 백성들이 어찌 해서 돌아오면 조정에서 달가워나 할 것 같은가? 청과의 약조를 핑계 삼아 심양으로 돌려보내려 할 것이다. 이는 변란을 우려한 조정의 심정도 있다. 지금의 조정은 썩었고 이를 갈아엎어야 한다!"

차예량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이야 그렇지만 객잔주인은 지금 차예량에게 같이 모반을 꾀하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조정뿐 아니라 도처에 흩어져 있다. 이괄의 난에 가담했던 자도 있으며 김자점 같은 중신도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며 눈치만 보고 있다. 대관집의 노비도 가담해 있고 함경도 산골의 포수도 있다. 나만 해도 본시… 사람들이 항왜(降倭)라고 부르던 자들 중 하나다."

항왜, 즉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항복한 왜인이라는 말이었다. 객잔주인의 말투가 조금 어색했던 것은 이런 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차예량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실 모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고 나처럼 이렇게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는 자는 드물다. 하지만 이번 난리에서만큼은 그들 모두가 바라는 것에 일치를 보았다. 반정으로 일어난 이 조정은 이제 더 이상 아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다. 권세 있는 자들은 당장 세상이 뒤집혀 지기를 바라지는 않고 우리를 이용할 궁리만 하고 있다. 심지어는 궁중에서도 몇몇 이들은 우리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갈 길을 제시할 만한 인재가 없다. 그런 사람이 온다면 당장 그를 좇아가지 내가 여기 있을 리 없겠지. 차선달은 큰 인재가 아니나 우리와 함께 뜻을 할 재목은 된다."

차예량은 긴 침묵에 빠졌다. 객잔주인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차예량이 선택할 길을 객잔주인은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예량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객잔주인은 태도를 바꾸어 을러대었다.

"계속 거절하겠다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차선달이야 굳이 마다하겠다면 내가 윗분들에게 잘 말해서 고이 의주로 돌려보낼 작정이다. 하지만 계집은 여기 잡아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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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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