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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든 돌하르방
ⓒ 이지훈
▲ 돌하르방 공원 전경
ⓒ 이지훈
제주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표상으로 널리 알려진 돌하르방. 수 없이 만들어지고 도내·외에 세워지고(최근에는 청계천에도 세워졌다) 지금도 토속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돌하르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다. 또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관광상품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 돌하르방이 제주토박이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10월 22일 개장한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돌하르방공원'. 제주에서 나고 자란 30대 젊은 예술가 다섯 명이 합심하여 지난 5년 동안 땀 흘린 1차 결과물이 이곳에 있다.

보통 이 연배의 예술가들이라면 화랑이나 개인작업실에서 고고하게 작품 활동이나 전시회 등을 열고 있음직한데, 이들은 5년 전(99년) 이곳 북촌리 빌레왓(용암지대)에 5명이 의기투합, 망치와 정 등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제주대 미술학과 출신 선후배 3명과 산업디자인학과 출신 2명이 그들이다.

얼핏 보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이들은 우선 4500여 평에 달하는 곶자왈 빌레왓을 손으로 일일이 다듬었다. 또 인근 채석장에서 사온 현무암들을 직접 쪼개며 돌하르방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료조사와 실측에 기초하여 여러 형태의 돌하르방 48기를 원형크기로 재현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돌하르방의 기능을 의미하는 여러 형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돌하르방과의 만남, 세계최대의 돌하르방이다.
ⓒ 이지훈
▲ 칼을 든 수문장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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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하르방 공원의 숲길
ⓒ 이지훈
시대적 반영을 통한 새롭게 재해석되는 창작 돌하르방을 제작 설치함으로서 귀중한 향토문화유산인 돌하르방을 다시금 들여다보자는 것. 이들은 단절된 과거를 잇는 가교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무엇이, 어떤 힘이 이런 험한 작업에 이들을 5년 동안 골몰하게 했을까? 왜 이 젊은 장인들은 옛 제주인의 삶을 되새기며 새롭게 제주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공식 개장한 지 일주일이 지난 29일 오후 돌하르방공원을 찾았다.

우선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에 세워져 있던 돌하르방 48기가 한군데 모여져 있다. 원형크기로 재현해 놓아 돌하르방의 지역적 특색을 한군데서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돌하르방의 기능(수호신, 주술종교, 위치표식, 금표(禁標)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새로운 돌하르방들이 우리를 맞는다. 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돌하르방도 있고 칼을 든 돌하르방도 있다.

▲ 돌하르방공원의 체험학습장과 어린이들
ⓒ 이지훈
각각의 악기를 연주하는 기발한 돌하르방의 형상이 우리를 맞는다. 이어 이 공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반영을 통해 재해석된 돌하르방의 갖가지 모습이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사랑과 평화의 전도자로서의 돌하르방, 꽃을 든 돌하르방, 우리를 포옹해 주는 돌하르방 등이 그것이다. 근엄하게만 여겨졌던 돌하르방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들은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에 주목, 현존하는 돌하르방 형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평화이미지가 투영된 돌하르방의 재해석 작업을 통해 평화이미지를 확산하고 활용해 나가는데 기여하기 위해 이런 돌하르방을 제작했다고 한다. 특히 땅 속에 묻혀진 몸통까지 합치면 키가 15m나 된다는 거대한 돌하르방과의 만남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 공원에서는 자연 속에서 제주의 문화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돋도록 다양한 미술기법을 활용한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남흥 대표(67년생). 90년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그동안 제주도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3회나 수상했다. 제주도 미술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다음은 김남흥 대표와의 인터뷰.

▲ 돌하르방공원의 김남홍 대표
ⓒ 이지훈
- 이런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뭔가?
"(풍경)그림을 그리기 위해 제주지역의 산과 들을 7~8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는 중에 '동자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자석의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대학에 다니며 왜 이런 제주도의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못했을까'라는 자괴감이 생겼죠. 뒤늦게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그 다음으로 돌하르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주의 대표적 상징이자 표상이라 불리어지는 돌하르방이 예상외로 정리가 안 됐더라고요. 사진집조차 제대로 발간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 회화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석공기술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제가 평면작업만 해 왔고 조각경험이 없던 터라 처음에는 석공어른을 찾아뵙고 이 분들을 통해 원형재현 작업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근데 이분들이 일주일을 못 넘기십디다. 그 분들이 그 동안 작업해 왔던 정형화된 틀, 예를 들어 매끈하고 제주목 중심의 돌하르방의 형태는 우리가 추구하던 형태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그분들이 쓰던 연장 등의 장비를 보강하고 크레인 등을 빌려다가 직접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경험도 별로 없고 해서 처음 돌하르방 하나 완성하는데 꼬박 45일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돌하르방을 눕혀서 작업한 것이 아니라 모두 세워서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지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사면(四面)에 대한 공간감(空間感)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노동력은 2배나 더 들었지요. 나중에는 조금 속도가 붙더라고요. 대정현이나 정의현 돌하르방은 제주목 것보다 크기가 작기도 하고요. 어쨌든 힘들었지만 얼굴과 크기가 각각 틀려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깨끗한 다듬질을 거부하고 현무암의 투박한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우리만의 스타일도 고집했습니다.

▲ 평화의 전도사 돌하르방
ⓒ 이지훈
▲ 필자와 김남홍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지훈
- '석공초보'들이어서 많이 다쳤을 것 같은데.
"돌을 자르는 '그라인더'라는 기계작업을 하다보면 물이 수반되는데, 작업에 열중하다보면 이런 부분을 주의하지 못해 감전사고가 부지기수로 났습니다. 또한 정과 망치로 돌을 쪼다가 손이 다치는 것도 다반사였고요. 그래도 병원에 실려 갈 정도의 큰 사고는 없었으니 다행이지요(웃음)."

- 5년 동안 수입이 없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동료들 모두 결혼을 해 가정이 있는 상태라서 힘은 들었지만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불만을 표출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땀으로 뒤범벅 되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웃음)"

김남흥 대표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젊은 예술가들은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의지와 맨몸 하나 만으로 이 북촌 황무지 빌레왓을 새로운 제주의 문화관광자원으로 재창조해낸 셈이다.

그들은 이 공원을 '자연·문화·예술·평화가 공존하는 돌하르방 공원'이라 명명했다. 김남흥 대표는 이 돌하르방공원에서 우리들 유년 기억 속에서 사라진 건강한 원시성을 찾아내고 싶고 향후에는 갤러리 및 문화센터를 공개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방법
돌하르방 공원은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8km지점의 북촌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제주시 방향에서는 함덕~북촌리 일주도로와 함덕우회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500m정도 직진하다 좌회전해서 100m 정도 올라가면 되고, 성산포 방향에서 제주시 방면으로 오는 차량은 북촌초등학교에서 50m 정도 서쪽으로 직진하다 좌회전하여 올라가면 된다.

이지훈 기자는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이글은 제주지역의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jejusori.ne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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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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