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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일부터 일주일 간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도시 순회 공연에 들어갈 연극 <대우> 포스터.
오는 4일부터 일주일 간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도시 순회 공연에 들어갈 연극 <대우> 포스터. ⓒ 프랑수아 봉
대우 로렌 공장 문제는 소설로 발간되기 이전에 연극으로 먼저 선보여지기도 했다. 2004년 아비뇽 연극축제에 첫 선을 보인 연극 <대우>는 2005년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 관객상과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프랑수아 봉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9월 이것을 다시 소설로 엮어낸 것이다. 당초 소설 <대우>는 사회문제 연구 전문가용으로 2천 권만 찍어낼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3만여 권이 팔려나간 상태다.

연극 <대우>는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상연됐으며 곧 이탈리아어 판 소설 출판도 이어질 예정이다. 또 연극은 오는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간 파리 재 상연을 시작으로 겨울 내내 릴, 낭트 등 프랑스 대도시를 순회하며 프랑스 관객을 만나게 된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프랑스아 봉을 어렵게 만났다.

"놀랍게도 이 책이 출판됐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쪽은 한국 출판사들이었어요. 몇 군데 출판사와 접촉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 곧 한국 독자들과도 만날 수 있겠죠."

출판사 '파야르'에서 만난 봉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이미 <불을 훔친 사람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등 두 권의 저서가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어 프랑수아 봉은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선 작가는 아니다. 아래 프랑수아 봉과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다.

"왜 르포가 아니라 소설이냐고?"

프랑수아 봉.
프랑수아 봉. ⓒ 박영신
- 이미 여러 차례 연극으로도 공연됐는데 연극 <대우>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연극 <대우>에 몰리는 관객은 단지 대우 사건만을 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은 현실적으로 프랑스를 불안하게 하는 빈곤, 불안한 노동 환경 등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 전 대우 노동자들의 경우 연극 속 인물에서 자신들의 동료를 찾아내기도 한다."

- 이 연극을 소설로도 쓰게 된 배경이 있나.
"연극과 마찬가지로 애초에는 프랑스 정부가 조장한 어마어마한 '낭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싶었다. 로렌의 대우전자는 프랑스의 공적 보조금이 엄청나게 들어간 사업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터키와 폴란드로 이전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격렬히 반발했고 그 폐해도 엄청났다. 대우전자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사회문제를 말하려 한 것이지 단지 대우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 르포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굳이 소설이라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처음 로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노동자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고 필요한 자료도 사라진 상태였다. 대우 공장 철수 당시 그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컴퓨터까지 가져가 버렸다. 공장 건물은 경매에 넘어갔고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만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내가 기댈 것은 기억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실업률이 이혼율, 암 발생률과 비례한다는 상공회의소 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소설의 자유로움을 빌어 실업을 경험한 이들, 그리고 자살한 친구를 둔 이들의 머리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담고 싶었다. 집단의 기억을 더듬고자 했던 것이다. 처음 목적은 이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어서 현장 보다는 인터뷰 위주로 진행됐다. 사회문제로 다가가려 했으나 직장을 잃은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은 가정문제 등 사생활의 복합성까지 연계돼 있어 더 착잡했다.

전 대우 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스크랩한 관련 신문 기사들을 내게 내밀었다. 언론이 주목해 주길 바랐던 이들의 박탈감이랄까. 나는 현장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경험한 한 여성을 소설 속의 인물로 창조해 그의 입으로 김우중씨를 말하고 싶었다. 현실은 이 모든 것을 다 감수할 수 없고 픽션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대우 사건은 재벌과 정치권이 결탁한 사기"

프랑스 정치권과 외국 재벌 기업의 파렴치한 결탁을 파헤친 소설 <대우> 표지
프랑스 정치권과 외국 재벌 기업의 파렴치한 결탁을 파헤친 소설 <대우> 표지 ⓒ fayard
- 지난 3월 25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로렌의 옛 대우전자 노동자들에 의해 프랑스 검찰에 고소됐다. 이것은 공장 방화 혐의로 체포된 모로코 출신 노동자 카멜 벨카디의 4월 5일 항소심을 앞두고 제기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벨카디는 공장 폐쇄에 불만을 품고 지난 2003년 1월 로렌의 몽 쌩 마르탱 소재 옛 대우 공장 창고에 있던 음극선관들을 불태운 혐의로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제기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우전자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폭력적인 노동 운동이 프랑스 전역을 뒤덮을 때였는데 당시 다른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을 강물에 뿌리거나 공장 기기를 파손하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프랑스 노동 운동의 전통이 아니다. 대우의 경우도 일상생활에서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물론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지금까지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벨카디가 정말 방화범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벨카디의 동료들은 벨카디가 화재 발생 순간 자신의 작업장에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벨카디가 화재 전 '공장이 문을 닫는 걸 보느니 불이나 질러 버렸으면 좋겠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던 것이 문제였고 그는 바로 이 발언 때문에 체포됐다. 내가 만난 노동자들 중에 '불을 질러 버리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 김 전 회장은 지난 6월 14일 5년 8개월의 도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다.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스트라스부르의 한 공장에서 고문으로 일한다는 소식이었다. 사기꾼 김우중씨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프랑스에서 높은 연봉까지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을 또 한 번 분노케 했다. 김우중씨 부인은 여전히 파리에 살고 있으며 한국인의 미술 작품들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 김 전 회장이 안전하게 도피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지 프랑스 정부의 도움도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전 회장은 198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1999년 10월 종적을 감췄다. 지난 2003년 3월 13일자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김 전 회장이 프랑스 집권층의 비호를 받으며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 대한 특별한 기여'를 내세워 국적을 주었으나 80명 직원을 고용한 작은 공장, 그것도 33%의 프랑스 보조금으로 지어진 공장 때문에 국적을 취득한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국적을 수여한 사실 등 프랑스가 김우중이라는 한 인물에게 제공한 모든 특혜는 프랑스 역사에 전무한 일이다. 1996년에 레지옹 도뇌르 3등 훈장을 받기도 했는데 프랑스가 기업가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내리는 것도 역사를 통틀어 드문 일이었다. 프랑스 정부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미스터리다.

대우는 심지어 사업주가 부담하는 사회보장 부담금조차 단 한 번도 지불한 일이 없다. 시라크가 김우중씨 일가에게 프랑스 국적을 주던 당시에도 프랑스 정부는 김우중씨가 한국에서 쫓기는 몸이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상태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사기다. 김우중씨를 도움으로써 일본과 대적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착각에 불과했다. 일본이나 독일의 고속열차가 아닌 프랑스의 '떼제베'가 한국과의 계약을 성사시킨 것에 대해서도 프랑스 노동자들은 프랑스 정부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우 측에 뭔가 제공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떼제베'와의 연관설 또한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을 것이다."

"대우 노동자들은 한국을 원망하지 않는다"

소설을 위해 작가 프랑수아 봉이 찾은 대우 공장 겉모습, 'DAEWOO'라고 적힌 간판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소설을 위해 작가 프랑수아 봉이 찾은 대우 공장 겉모습, 'DAEWOO'라고 적힌 간판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 프랑수아 봉
- 한국에서는 김 전 회장이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경제성장의 공을 인정해 선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어떤가.
"'경제 성장의 공'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도 종종 듣는다. 특히 정치권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데, 이런 저런 비리를 저지르긴 해도 '봐라, 이 사람들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슬픈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벌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용인할 수 없고 타격은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말이다. 야만적 자본주의의 대가는 권력자들이며 또 이들이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시대가 프랑스에도 도래한 것 같다. 이 점에서 프랑스가 줄 수 있는 교훈은 없다. 책을 준비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김 전 회장이 박정희 독재 정권의 비호 아래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또한 슬픈 일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대우자동차가 정리되면서 2001년 2월 한국에서 1725명의 대우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됐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김우중 체포결사대를 만들어 프랑스를 방문하는 등 반발이 심했다. 이들은 로렌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김우중 체포결사대의 방문은 한국에 그토록 강력한 노동 투쟁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결사대를 맞아들인 것은 로렌 공장 노조였는데 많이 놀랐다고 했다. 로렌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도 유럽의 노동운동을 뒤흔든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결사대가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로렌 노동자들은 그들과 닮은 사람들을 본 것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중국 제품 수입에 관한 반발이 극심하지만 나는 로렌 노동자들에게서 반한 정서를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김우중 체포결사대의 영향인 것 같다.

니스에 있는 김우중씨의 초호화 별장을 '대우 노동자 소유'라고 쓴 리본으로 둘러싼 김우중 체포결사대의 상징적 행위는 로렌 노동자들에게 전해져 오랫동안 회자됐다.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향한 증오의 감정을 키울 이유가 전혀 없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증오는 시라크와 프랑스 정부를 향한 것이었다."

- 정리해고 대상이 된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나.
"여기저기서 조금씩 정리해고 사례는 있었지만 대우처럼 파렴치한 정치적 결탁에 항의하는 반발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프랑스 북부의 공장 '메탈유럽' 분쟁에서 공장 폐쇄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강물에 화학물질을 방출했다고 주장한 사건 정도인데 그 때에는 그 공장이 필요 없다는 인식도 같이 있었다. 그러나 대우에서 생산하던 TV나 전자렌지는 언제든 필요한 것 아닌가."

"한국의 사기꾼은 한국인들이 맡아 달라"

노동자들이 점거한 대우 공장, 나무 단이나 고무 타이어에 불을 질러 경찰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투쟁방식이다. 로렌의 대우 노동자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장면.
노동자들이 점거한 대우 공장, 나무 단이나 고무 타이어에 불을 질러 경찰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투쟁방식이다. 로렌의 대우 노동자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장면. ⓒ Denis Robert
- 프랑스에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지 궁금하다.
"정리해고 대책,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다. 다른 공장과 비교해 대우가 독특한 예가 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정상적으로 하려면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해고 이전에 결정된다. 화재가 발생한 몽 쌩 마르탱 대우 공장의 경우 문을 닫았기 때문이 아니라 공장이 불에 타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대우가 아닌 프랑스 정부가 책임을 져야 했다.

총 3개 공장 노조 중 CFDT(2공장노조, 프랑스민주노동동맹)와 CGT(1공장노조, 노동총동맹)는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했다. CFDT는 해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므로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 한 반면 CGT는 공장을 점거하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강경하게 주장했다. 세 번째 공장의 경우, 정부 당국에서 해고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줄 대행사를 선정했다.

그러나 대행사가 제안하는 일자리는 주로 슈퍼마켓에서 새벽 5시부터 근무하는 냉동식품 담당이나 애완동물을 돌보는 일이었다.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면 거절할 수 있지만 세 번 거절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구직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구직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마치 일자리를 구한 것처럼 구직 명단에서 빠지게 돼 구직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실직상태이거나 임시계약직에 고용되고 있었는데도 대행사는 이들이 마치 안정된 직장에 취직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정부당국이 지원하는 실업자 보조금을 챙겼다. 공장 폐쇄부터 모든 과정이 대우, 프랑스 정부, 대행사 사기로 일관된 사건이었다."

노동자도, 그들이 생산하던 전자제품도 사라져 버린 공장 내부를 지키는 것은 불어와 영어로 적힌 '시간엄수' 표지판.
노동자도, 그들이 생산하던 전자제품도 사라져 버린 공장 내부를 지키는 것은 불어와 영어로 적힌 '시간엄수' 표지판. ⓒ 프랑수아 봉
- 한국 국적의 공장이라는 특수성, 즉 문화 차이로 인한 마찰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노동 방식이 많이 달랐다.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인 공장장에게 프랑스 방식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며 많이 싸웠다. 공장장이 작업 중인 노동자 바로 뒤에 서서 10여 분 동안 감시하곤 했다는데 그게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전자렌지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질병 등으로 결근을 하고 다음 날 출근하면 사무실에 감금한 채 '아침나절은 여기서 보내면서 정말 결근이 불가피했는지 곰곰 생각해 보라'며 일종의 벌을 내리기도 했다. 소위 '반성'하느라 사무실에서 반나절을 보낸 한 노동자가 다음 날 다시 공장장을 찾아가 '더 생각할 게 있으니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웃음). 그 다음부터는 그런 식으로 벌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들었다."

- 이 사건을 지켜본 작가로서 한국인들에게 혹은 김우중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 노동자와 우리가 함께 나눌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설령 패배한 투쟁이라 해도 투쟁 속에서 우리는 배운다. 그리고 투쟁 속에서 배운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김우중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김우중씨 같은 사기꾼과 공모한 프랑스 정권이다. 우리는 프랑스의 사기꾼들을 맡을 테니 한국의 사기꾼은 여러분이 맡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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